건정심 의료계와 협의 후 결정키로…내달 재상정 가능성 높아
개원가 재정 투입 촉구 "필수의료 명목 진료과 갈라치기 말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에서 처리할 것으로 예상됐던 의원급 환산지수 개편이 일단 보류되면서 정부가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하지만 의료계는 여전히 통과 가능성이 크다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28일 열린 보건복지부 건정심에 의료계 우려가 큰 의원급 환산지수가 안건으로 상정됐지만, 추후 의료계와 협의해 추진하는 것으로 결론 났다. 의료계 반발에 정부가 한발 물러선 모습이다.
애초 복지부는 지난 23일 건정심 심의 위원들에게 공지를 보내고 27일까지 의원급 환산지수에 대한 서면 결의서를 요구한 바 있다. 이에 의료계는 즉각 반발했는데, 정부가 지난 6월 열린 건정심에서 논의된 사안을 어기고 일방적으로 서면 결의하려고 한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건정심에서 의원급 환산지수는 대한의사협회와 협의해 결정하기로 논의된 바 있다. 특히 의협은 이날 건정심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를 규탄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음 달 7일 건정심이 예정되면서 의원급 환산지수가 재상정될 확률이 높다. 필수의료 대책 일환으로 이미 방향성이 결정됐기 때문에 의결될 가능성도 크다.
결국 의료계 입장에선, 현장 반발을 고려해 일정을 늦추는 것일 뿐인 조삼모사인 셈이다. 이에 일선 개원의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검사 수가 동결에 타격 큰 내과계 "갈라치기 말라"
특히 의원급 환산지수에서 검체·기능·영상 검사가 동결되면서 검사량이 많은 내과 개원가 우려가 큰 상황이다. 이 같은 정부 방향성은 1.6%의 수가 인상률 안에서도 진료과를 갈라치기 하려는 속셈에 불과하다는 것.
대한내과의사회는 이처럼 수가와 관련된 환산지수에 상대가치 개념을 적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미 상대가치 안에 진료행위별 가치가 차등적용 돼 있음에도, 또다시 환산지수 안에 항목별 차등을 두는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 내과의사회 박근태 회장은 "물가상승률이 5%가 넘는 상황에서 환산지수 항목을 동결하겠다는 것은 수가를 인하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며 "초진료가 조금 올라가겠지만 이런 식으로 접근할 사안이 아니다. 더욱이 환산지수를 차등 적용하는 전례가 생겨버리면 향후 같은 문제가 재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발하는 것은 내과만이 아니다. 수술·처치·입원 수가 인상으로 수혜가 예상되는 외과 개원가 역시 재정 순증 없는 필수의료 대책은 무의미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수술·처치·입원 수가를 인상한다고 해도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을 내기 위해선 박리다매식 운영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외과 개원가는 이 같은 방식이 어려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다.
대한외과의사회는 이 같은 정부 방향이 진료과와 종별 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함으로 보인다면서도, 재정 투입이 없다면 그 목적으로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균형 맞추긴 필요하지만…"근본 대책은 재정 순증"
이와 관련 외과의사회 이세라 회장은 "필수의료 분야를 살리기 위해 수가를 상급종합병원으로 몰아주는 고육지책이지 않을까 싶다. 균형을 맞춰가는 과도기로 이 과정이 필요하지만 저울을 잘못 맞추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재정을 투입하지 않으면서 이 같은 정책을 쓰는 것은 정부의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은 재정 투입 없이 필수의료를 유지하려고 하는 데 있다. 무엇보다 외과 영역 수가를 조금 올려주는 정도로는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며 "외과계 개원가를 살리는 정책의 일환이었던 수술 전후 관리 교육상담도 활성화되지 않고 전공의 모집도 안 된다. 결국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수의료 대책의 중심에 있어 가장 큰 지원이 이뤄지는 소아청소년과 역시, 다른 진료과에 손해를 끼치는 방식으론 지원을 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와 관련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성명서를 통해 "역대 최저 인상폭 내에서 기존의 수가들을 빼내 필수의료 확충과 기본진료료 조정에 투입한다는 것은 조삼모사식 기만"이라며 "소아청소년과는 타 전문과의 수가를 빼앗아 조금이라도 이익을 취하고픈 생각이 없으며 이를 전면 거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종별가산 폐지에 연쇄 피해 "자동차 보험과 뭔 상관이냐"
예기치 않게 피해를 보는 곳도 있다. 3차 상대가치점수에서의 검체·영상 검사 종별가산 폐지가 그대로 자동차보험에 적용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에 자보 진료를 하는 외과계 중소병원이 우려를 표하는 상황이다. 자보 환자는 신속하게 치료를 종결하는 것이 중요해 수술보단 검사 비중이 더 크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보의 경우 특수성이 적용돼 국민건강보험보다 높은 종별가산율이 적용되고 있었다. 건보와 마찬가지로 자보 종별가산이 폐지된다면 체감 삭감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또 자보에선 과잉 진료 방지를 위해 영상 검사 등에 규제가 적용되고 있다는 점도 난점으로 꼽힌다.
이와 관련 한 정형외과 원장은 "건보 종별가산 폐지는 필수의료 대책을 위함이라고 해도 자보 가산 폐지는 무슨 목적인지 모르겠다. 이를 통해 이익을 얻는 것은 보험사밖에 없다"며 "이는 최상의 치료로 환자를 최대한 빨리 일상으로 복귀시키는 자보의 목적과도 맞지 않으므로 재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