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말아요 그대, 지나간 것은 그런 의미가 있죠"

발행날짜: 2016-07-04 05:00:57
  • 창간 기획 인터뷰 방상혁 전 의사협회 기획이사

"여기 맞아?" 그를 만나기 쉽지 않았다.

먼저 물리적 거리. 제주도에 개원했다는 말만 들었지 이런 시골일 줄은 생각치 못했다. 제주공항에 내려 한 시간이나 내달렸다. 점차 건물들의 키가 낮아지더니 3층 이상 건물은 보기 어려워졌다. 제신약방, 동양철물, 경성 쌀 상회, 명성떡집을 지나자 목적지 도착 안내가 나온다.

"여기 맞아?" 두 서 차례 네비게이션을 확인한 이후에야 목적지를 찾았다. '해비치의원'이라는 간판보다 "올바른 의료, 행복한 진료"라는 문구가 먼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방상혁 전 의사협회 기획이사. 두문불출하던 그가 최근 SNS에 얼굴을 비췄다. 의협 대의원총회 결과를 부정했다는 이유로 일선에서 물러난 그는 잘 살고 있을까. 순전한 호기심이 제주도행 비행기로 이끌었다. 지금 쯤 한번 만나보는 것도 '어떤 의미'가 있으리라. 누군가에게 희망이었고 누군가에게 돈키호테였던 그, 2년간 종적을 감춘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입구에 들어서자 진료실 너머로 들국화의 노래 가사가 들려온다. 슬쩍 안을 들여다보니 방 원장이 환자의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낯설다. 엄숙한 진료실 풍경만 봐 온 까닭이다. 격의없는 분위기 속엔 웃음이 가득했다. 이런 식이다. "저번에 5일장에서 봤다"고.

방 원장이 "달달한 거 먹지 말라고 했지. 당 수치 좀 봐. 나를 명의로 만들어줘"라고 말하자 환자 역시 "알았어. 살살 해줘"라고 대답한다. 한 할머니는 진료실에 들어서자마자 하이파이브를 한다. 환자들이 사들고온 빵과 우유는 덤.

밀려드는 환자에 얼굴을 맞대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근황을 묻자 대뜸 명함을 내민다.

"환자분에게 필요한 좋은 약도 보험기준 때문에 의사가 처방하기 힘든 현실을 아시는지요? 최선의 진료가 가능한 건강보험제도,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까요?"

명함 뒷면의 문구가 대답을 대신했다. 방 원장은 '올바른 의료, 행복한 진료'를 다짐하며 명함을 새로 팠다.

"의료현실이 어렵다고 주저 앉아 있으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우선 의료현실을 환자분들께 있는대로 말해주는 게 중요합니다. 다들 본인을 위한 최선의 진료가 가능한 의료 환경을 바랄테니까요."

실제로 그랬다. 진료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 기준의 문제점에 대한 설명을 곁들이곤 했다. 이런 작은 시도들이 국민인 환자들뿐 아니라 의사들을 움직여 의료개혁의 단초를 만든다는 신념 때문이다.

먼저 역류성식도염 환자. 방 원장은 "증세가 심한 경우라 이 약은 하루 두 번 먹어야 좋은데 심평원 고시에선 한 번밖에 인정이 안 된다"며 "그냥 하루에 두 번 드시라"고 넌지시 귀띔했다.

방 원장은 진료는 진단과 처방이라기 보다 설명과 설득에 가까웠다. 곧이어 두 번째 환자. 기준에 대한 아쉬움이 소신진료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진다.

"이건 처음부터 쓰면 보험이 안돼요. 하루라도 다른 싼약을 쓴 이후에야 보험이 인정되지만 그냥 무시하고 처방할 겁니다. 나중에 심평원이 삭감을 하고 저에게 약값을 물어내라고 할지도 몰라요. 하하하."

듣고있던 환자가 역정을 낸다.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딨냐"고. 삭감될 돈을 자신이 내겠다고 지갑을 꺼내다가 방 원장과 한참을 실랑이를 벌인다.

방 원장에게 진료실은 진료의 공간이자 환자 설득의 공간. 매번 이런 설명이 힘들지 않냐고 묻자 "사랑스러운 환자들을 신나게 진료하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우문이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슬쩍 의협 집행부 시절을 물었다. 아쉽지는 않을까. 제37대만큼 말도, 탈도 많은 집행부는 없었다. 방송 매체의 스포트라이트는 줄곧 의협의 행보에 고정되기 일쑤였다. 그 역시 "의권 확립"을 외치며 삭발한 모습으로 대중 앞에 섰다. 10년 넘게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게 된 것도 그 무렵.

"협회에서 일할 때 올바른 의료의 토대를 만드려고 목숨을 바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도 오해를 많이 받고 외부가 아닌 내부의 요인에 의해서 물러나게 됐죠. 그분들이 밉지는 않지만, 참 많이 아쉽죠."

37대 집행부에 대해선 이제야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됐다.

"공과에 대한 해석이 많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합니다. 의약분업 이후 의협 역사상 가장 언론에서 주목을 했었고 이슈 선점을 했던 집행부였다고."

진료실의 유쾌한 모습과는 달리 침묵이 많았졌다. 그는 "지금도 의료계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암울하고 답답하다"고 했다.

불신임 이후 그를 이태원의 카페에서 만난 적이 있다. 당시 그는 하루 한끼로 연명했다. 지금도 마찬가지. 몸무게는 무려 10kg이 빠져있었다. 본의 아니게 의협을 떠난 것에 대한 트라우마는 현재 진행형.

오해를 풀고 싶다 했다. 당시 집행부가 주장한 "환자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말에는 함축된 의미가 있었다. 환자가 최선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곧 의권 확립의 시작이라는 논리였지만 회원들은 "의사의 권리가 우선이다"고 집행부를 흔들었다.

그는 "여전히 환자를 위한 최선의 진료가 우선시돼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며 "환자가 먼저 불합리한 삭감 기준이나 부실한 건강보험 재정의 문제에 대해 인식해야만 의사들의 편이 돼 준다"고 강조했다.

트라우마에 대한 그의 처방은 "시간이 필요하다"였다. 인터뷰 말미에 들어온 환자에게 그는 주사를 놓아주며 이렇게 말했다. "아프지? 아픈만큼 좋아지는 거야."

그는 요즘 누구보다 바쁘다. 의원 건물 3층에 사랑방 공사를 직접하고, 약물중독 강사, 의료혁신투쟁위원회 감사, 의료희망연구소 연구원으로도 활동한다. 최근엔 요양병원 촉탁의로 번 돈을 다 기부하기도 했다. 촉탁의마저 촉탁의 월급이 개선돼야 한다는 점을 병원에 알리기 위해 수락한 일.

당연시되는 병의원의 주 6일제 근무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적정 근무'라는 실험도 시작했다. 손실은 당연할 터. 줄인 진료시간을 메꾸기 위해 주식에 손을 댔다가 쓴웃음만 지었다.

종적을 감췄다고, 혹은 내쫓았다고 비웃을지 모를 사람들을 위해 그가 준비한 카운터 펀치는 다음과 같다. "의료계를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고 있다"고.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진료실에 다시 노래가 울려퍼진다. 여전히 들국화의 '걱정말아요 그대'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 그런 의미가 있죠
떠난 이에게 노래 하세요 / 후회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귀한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방상혁 전 이사는 성금을 내 준 한 분 한 분의 이름을 담아 액자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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