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박싱]예상보다 큰 종양에도 수술 강행, 상장간동맥 손상 과실
북부지법, 손해배상 책임 인정…감정의 견해 주요 작용
복부에 생긴 종양을 떼기 위해 배를 열었더니, 예상보다 큰 종양이 나왔다. 의료진은 종양 제거술을 강행했고 수술 과정에서 소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중요 혈관을 손상시켰다.
환자에게는 단장증후군, 면역억제제 지속 투여 등의 영구적 후유 장애가 남았다.
서울북부지방법원 제12민사부(재판장 남기주)는 최근 환자 측이 S대학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복부종양절제술 과정에서 의료진의 과실이 있다고 봤고, 설명의무도 위반했다고 판단한 것.
법원은 병원 측이 환자와 가족에게 위자료를 포함한 총 5억9895만원을 배상하라는 판단을 내렸다. 환자와 병원은 모두 1심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고 항소한 상황이다.
■복부종양절제술 과정에서 무슨 일이?
환자 M씨는 배에 단단한 덩어리가 만져지는 듯한 불편감을 호소하면서 2018년 1월 S대학병원을 찾았다. 의료진은 복부CT 결과 약 7.7cm의 종양을 관찰했고, 위장관기질종양(GIST) 진단을 내렸다. 그리고 복부종양절제술을 하기로 했다.
수술 당일, 복강을 열면서 의료진의 예상과 다른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종양의 크기가 예상과 달리 12cm나 됐고 상부 공장(proximal jejunum) 및 횡행결장(transverse colon), 장간막 뿌리(mesentery root)까지 광범위하게 침범하고 있었다.
의료진은 종양 절제 과정에서 소장 대부분과 상행결장 일부에 혈액을 공급하는 동맥인 상장간동맥(Superior Mesenteric Artery, SMA)을 손상시켰다. 이에 성형외과 의료진을 수술에 참여시켜 프로렌 10-0을 이용해 손상된 동맥 혈관에 대한 문합술을 했지만 소장에 허혈성 변화가 보여 다음 달 2차 수술을 하기로 했다. 장장 10시간에 걸친 수술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의료진은 다음날 2차 수술에서 남아있는 소장 및 상행결장의 일부를 절제하고 배액을 위한 위루형성술 및 십이지장루형성술을 했다. 1차 수술에서 동맥이 손상된 소장의 허혈이 더 진행되면 장 괴사에 빠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환자에게 남아있는 소장 부위는 십이지장 및 공장의 시작 부위뿐이다. 환자 M씨는 약 3개월 후 다른 병원에서 소장이식술(이식된 소장 길이는 2m)을 받았다.
M씨는 일련의 수술 때문에 생존기간 동안 단장증후군을 앓게 됐고, 지속적으로 면역억제제를 투여해야 한다. 정기적인 합병증 감시 검사를 받아야 하며, 간헐적으로 경정맥 영양공급을 받아야 하는 등 영구적인 후유 장애가 생겼다.
통계적으로 소장 이식 후 생존율은 5년 후 61%, 10년 후 42%로 알려져 있으며 평균 생존기간은 7년 내외다.
환자 측은 복부종양절제술 과정에서 과실이 있었고, 설명의무도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 판단은? "의료과실 맞다"
법원은 상장간동맥 손상은 과실이었으며 이 때문에 환자의 소장 등 주요 장기가 더욱 괴사됐다고 인정했다. 의료진이 손상시킨 상장간동맥은 비교적 굵은 동맥으로 수술도구 때문에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이 같은 판단에는 의료 감정의 소견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S대학병원 병원 수술기록지에는 복부종양절제술 도중 상장간동맥 분지(branch)가 절단됐다고 기재돼 있었다.
감정의는 "수술 이후 경과를 봤을 때 상장간동맥 분지가 아니라 보다 근위부가 손상됐을 가능성이 있다"라며 "일반적으로 종양 절제 과정에서 상장간동맥 손상이 우려될 정도의 종양이라면 수술 도중이더라도 절제 자체를 재고하고 수술 중단을 고려해 보는 편이 나을 수 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이어 "상장간동맥 근위부 손상은 소장 전체의 허혈 및 괴사 위험을 유발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해당 부위 손상을 감수하고 제거해야만 하는 종양은 사실상 없다"라며 "수술자가 혈관을 손상시키지 않고 절제가 가능하다고 생각해 박리를 진행하다가 손상을 입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복부종양절제술 시 설명의무 범위는 어디까지?
S대학병원 의료진은 수술 전 환자 M씨에게 복부종양 절제를 위한 시험적 개복술 목적 및 필요성, 수술 과정 및 방법, 발현 가능한 합병증 내용 및 정도 등은 설명했다.
환자 M씨 측은 복부종양절제술을 하기로 했다면 ▲환자의 이상 소견 ▲진단명 ▲가능한 치료방법 ▲수술을 하지 않을 때와 할 때의 구체적인 위험성과 예후상 차이점 ▲상대적으로 덜 침습적인 치료방법의 종류 ▲다른 치료방법 사이의 장단점 ▲수술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소정 전체 및 대장 절제술, 장루 수술, 소장이식술 시행 가능성 ▲소장 이식술 후 면역억제제 복용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종양의 크기가 예상보다 크면 소장 일부 또는 전체 절제, 그에 따른 소장 등 장기이식 가능성에 대해 설명했다고 볼 자료가 없다"라고 밝혔다.
또 "복부종양절제술 외에 다른 치료방법에 대한 설명을 했다고 인정할 만한 아무런 증거가 없다"라며 "환자가 수술에 따른 예후나 다른 치료방법에 대해 설명을 들었더라도 수술에 동의했을 것이라는 점이 명백히 예상됐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