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박지성처럼" 의사 축구광들

발행날짜: 2010-06-15 11:50:24
  • 축구로 의기투합, '의사월드컵' 겨냥 구슬땀

지난 13일 여의도 고등학교 운동장. 비가 내리는 짓궂은 날씨에도 아랑 곳 없이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른 아침을 깨우는 구호와 함성 소리. 선수들은 땀으로 범벅이 된다.

올해로 벌써 10년째를 맞는 FC메디컬스의 조기 축구회 현장엔 ‘하얀 가운’을 입은 박지성들이 ‘의사들의 월드컵’으로 불리는 World Medical Football Federation 참가를 위해 분주히 연습 중이다.

세계의사축구대회를 앞두고 훈련 중인 선수들의 모습
이번 개최지는 오스트리아. 열흘간 병원 문을 닫고 국가대표로 참가하는 의사들 가운데 축구 사랑이 부족한 사람이 있을까 만은, 유독 이 세 명은 그 축구 사랑이 유별나기로 유명하다.

그 주인공은 바로 이원석, 심재호, 남윤석 씨. 면면을 살펴보면 각각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한의학을 전공했단다. 전공도 다르고 사는 곳도 다르지만 공통점 하나는 ‘축구’다.

바로 ‘축구’에 빠진 의사들이라는 공통분모가 이들을 하나로 똘똘 뭉치게 한 구심점이 됐다. 이들에게 축구는 ‘취미’자 ‘삶’이요, ‘기쁨’이자 의사 생활의 고단함을 풀어주는 ‘청량제’란다. 축구 사랑 불치병에 걸린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45년 축구 인생 "즐기는 게 남는 것, 20년 후에도 축구할 것"

이원석씨의 축구 경력은 자그마치 45년. 초등학교부터 경희대 의과대 시절에도 축구팀에서 활약했다. 당시 오사카 시립대와의 정기전을 가지기도 했다. 일요 조기 축구회 참여는 2001년부터 했다. 벌써 10년째다.

올해 53세인 그는 의사 월드컵 출전자 중 이윤석 씨와 함께 최고령자. 체력 등 힘든 점은 없을까. 그는 지속적인 운동으로 다부져진 몸이라 그리 힘든 점은 없다고 말한다. 지천명을 넘긴 나이에 체력에 대한 자신감이 대단하다.

이번 오스트리아 의사 월드컵에 맏형으로서 부담감을 없을까. 그는 그저 즐길 뿐이란다. “큰 부담감은 없어요. 첫 출전엔 승부 욕심도 많이 났었지만, 이젠 각국의 의사들과 동질감을 느끼며 서로 즐긴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즐기지 못하면 더 성적이 나쁘더라고요.”

경기에서 개인 성적 욕심은 조금 있단다. 하지만 ‘국가대표’로서, 팀의 영광을 위해서 꾹 참을 생각이란다. 의욕은 영락없는 20대 주전급이다.

그도 축구를 하며 정형외과 의사로서 덕을 톡톡히 봤다. 94년에 무릎인대가 나갔지만, 치료와 진단을 적절히 한 끝에 수술을 면했다.

워낙 자기관리가 철저하다보니 가족들도 걱정을 줄였다. 축구하느라 술을 안 먹으니 가족들도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는 “향후 10년이건 20년이건 못 뛰는 그날까지 축구를 계속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오늘도 골프 약속이 있었지만, 축구를 선택했다는 그.

“좋아하는 걸 하기 때문에 힘든 줄 모르겠다”는 그의 축구 사랑엔 나이도 체력도 아무런 장애가 아니었다.


축구하다 부상당해 온몸이 '종합병동'…"부상 덕에 의술 더 늘어"

심재호씨는 늦깎이 나이에 축구 사랑에 빠졌다. 그는 40대 초반까지 농구만을 쭉 해오다, 문득 축구에 매료돼, 농구에서 축구로 ‘전향’한 케이스.

2003년부터 FC메디컬스 축구회에 참여한게 올해로 벌써 8년째를 맞았다. 대구보건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지만 매주 서울로 올라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축구 사랑에 빠지면서부터 '축구의 일상화'를 실천하고 있다. 평소 자기관리를 위해 회진 볼 때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지 않는다. 또 앉아서도 틈틈이 스트레칭도 하고 일주일에 두 번 이상 헬스장에 들러 체력을 기른다.

축구를 하며 그간 많은 부상도 입었다. 광대뼈가 부서졌고, 코뼈도 두 번이나 부러졌다. 어깨 인대도, 무릎 연골도 파열돼 성한 곳이 없다. 온몸이 종합병동인 셈.

후유증에 시달리면서도 오히려 “부상을 당해 환자 입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며 부상을 통해 의술 개발에 도움을 준 축구가 그저 좋단다. 게다가 재활의학과다 보니 부상당하는 순간 자가 진단에, 응급 처치도 직접 한다. 축구를 하면서 직업을 살린 좋은 경우인 셈.

축구 용품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 유니폼만 수십 벌에 운동화도 10여 켤레가 넘는다.

축구를 하며 얻은 교훈도 있다.

“축구와 병원은 닮은꼴입니다. 얼핏 상관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자 서로의 파트를 맡아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료사회, 혹은 병원 조직과 닮은꼴이에요. 병원도 각자 의사들이 자신의 전담 영역에서 최선의 플레이를 할 때 좋은 결과가 생기잖아요? 축구 역시 마찬가집니다.”


주치의에서 축구선수로 변신…"축구 위해 마라톤까지 했어요"

이번 ‘의사 월드컵’에 유일한 한의사로 출전하게 된 남윤석씨. 참가를 위해 2~3주 전부터 FC메디컬스와 호흡을 맞추기 시작, 벌써 이곳 소속 회원들과 농까지 주고받을 정도로 친해졌다.

그는 “어색할 법도 한데 이곳에서 훈련하는 동안 낯설기보다 친숙함을 느꼈다”며 “아마 축구라는 공통분모가 크게 작용한 것 같다”며 웃었다.

그의 첫 축구 사랑도 조금 늦게 찾아왔다. 40대 초반 무렵, 한 실업팀 선수를 치료하게 된 것이 계기. 이후 인천 유나이티드와 인연을 맺고 한방의료지원단장을 맡아 주치의를 자청하며 선수들을 돌봤다.

단순히 선수들 주치의 수준에서 머무른 것은 아니다. 축구가 좋아 7년 동안 경기만 따라다닌 적도 있다. 원정 경기뿐만 아니라 전지훈련까지 따라 갔다. 이러다보니 직접 선수로 뛰고 싶어졌다.

연예인 축구팀인 일레븐에서 축구 선수 인생을 시작했다. 늦게 배운 축구가 더 무서운 법. 그는 축구를 위해 마라톤까지 했다. “늦게 축구를 시작했기 때문에 마음만 앞섰지 체력이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축구를 위해 마라톤을 시작했죠.”

선수 주치의를 해서일까? 선수가 된 지금, 그는 시간 날 때마다 꼼꼼히 축구 경기를 시청하며 부상당하지 않는 노하우도 터득했단다.

이번 의사 월드컵 출전에서 개인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사실 한국 팀 중 69년생이 가장 젊을 정도로 다른 나라 팀에 비해선 고령자 팀입니다. 성적에 연연하다 보면 즐기지 못할 거 같아요. 경기를 즐긴다는 생각으로 임하겠습니다. 그리고 한의사이기 때문에 동양의 의술에 관심이 많은 다른 나라 의사들에게 한국의 전통 의술을 많이 알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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