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가 물에 빠진 괘

박경철
발행날짜: 2004-06-28 09:26:19
  • '시골의사' 박경철 (신세계 연합클리닉 원장)

<고정칼럼 집필자 소개>
인터넷에서 필명'시골의사'로 통하는 박경철 외과전문의는 국내 최고의 사이버애널리스트로 MBN 주식토크쇼를 진행하고 있으며 주식시장에 대한 남다른 철학과 날카로운 분석력을 인정받고 있다.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역에는 64개의 괘가 나오는데 이 가운데 세인의 이목을 끄는 것이 마지막 두괘인 기제( 旣濟)와 미제( 未濟)이다. 기제란 글자 그대로 이미 건넜다는 뜻이고, 미제란 아직 건너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 두괘를 괘상으로 보면 기제는 수화기제 (水火旣濟) 라고해서 위에 물이 있고, 아래에 불이있는 형국인데, 이에 반해 미제는 화수미제 (火水未濟)라고 해서 기제와는 반대로 위에 불이있고, 아래에 물이있는 형상이다.

이 두괘의 의미를 주역 원전에서는 여우가 물을 건너는 형국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기제는 여우가 물을 다 건넌것으로 비유하고 미제는 여우가 물을 거의 다 건넜지만, 마침내 꼬리를 적시고 만것에 비유한다.

여기서 한가지 재미있으면서도 선뜻 그 곡절을 이해하기 힘든 것은, 왜 마지막 64번째로 배당된 괘가 종결을 의미하는 기제가 아니라, 미완을 의미하는 미제일까 하는 점이다.

이를두고 중국에서는 소옹,정이.주희에 왕필까지 이의 해석에 가담하였고, 우리나라에서도 퇴계 이황과 ,정약용을 비롯한 실학파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연유를 알기위해 골몰하였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주역 해석의 아버지인 왕필은 이렇게 적고있다.

"기제의 극에 있으면서 기제의 도가 다하면 미제로가고, 여기서 미제로가면 머리부터 먼저 빠지게 된다, 즉 지나치게 나아가 그침이 없으면 어지러움을 만나므로 머리부터 빠진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오래지 않아 가라앉게 될 것이니 위태함이 이보다 앞서는 것은 없다.. "

또, 점괘상 별로 좋지않은 괘인 미제에 대해서는 " 미제가 극하면 기제로 돌아온다, 기제의 도는 맡은 바에 합당하게 하는 것이다. 맡은 바가 합당하면 믿을 수 있으니, 의심이 없어 편안하다, 그러므로 믿음을 두어 술을 마시니 허물이없다.. 고 한 것이다. .. 하지만 정말로 일이 잘못될까 걱정하지 않고 즐거움만 탐한다면 절도를 잃게 된다." 라고 말한다.

이 위대한 현학자 왕필의 요점없는 현란한 해석에 대해 , 조선 성리학의 히어로 퇴계는 딱 한마디로 정리해버린다.

" 기제와 미제 모두 중심을 잡고 절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물을 건넜다고 안주하지 말고, 아직 건너지 못했다고 해서 의기소침 하지 말라는 뜻이다 . 때문에 주역의 점괘는 그것이 좋던 나쁘던 점괘를 취하는 자의 할 일과 도리에 달린 것이다"

압권이다.

수천년동안 중화권에서 내려오던 주역의 권위에 대해 . " 부질없다 ...! 신성한 학문에 점괘가 왠 말인가..? 모든것은 그저 내 하기 나름이다...." 이렇게 한 마디로 일거에 정리해버리는 그의 내공이 압도적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모 공중파 방송국에서 화려한 쇼맨쉽으로 침방울 튀기며 곡학아세하는 모 돌덩이 선생의 수작이 불쌍해진다.

어쨌거나, 주역 64괘에 담긴 이야기를 여기다 전부 주저리 주저리 옮길 수는 없겠지만, 선천개벽에 후천 개벽이 오고, 정역의 시대에 음양이 뒤집힌다는 역의 세계를 마무리짓는 63, 64괘의 가르침이 기제와 미제라는 사실,,, 다시말해, 도달했다고 안주하지말고, 미달했다고 포기하지 말라는 점괘로 세상사 이치에 획을 긋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큰 암시가 아닐 수없다

이제 이쯤에서 본론으로 돌아가보자,,

요즘 약대 6년제가 핫 이슈이다,

처음 이 문제를 일반 여론이 살피기에는, 남의 학제가 6년이되던 60년이 되건 왜 한의사들이 난리냐고 일축하다가, 그래도 요즘에는 한의사 입장에서 약대 6년제는 한약 조제권을 얻기위한 트로이 목마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이 두 집단의 견해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것에 대해서는 일견 이해를 하는듯하다.

그런데 이 문제로 양단체가 도장찍고 복지부장관과 어깨동무까지 하고 난 뒤에 , 가만있던 의사협회가 난데없이 파업투쟁을 선언하고 나서면 일반인 입장에서는 황당해진다.

첫째, 한의사하고 약사하고 머리터지게 싸울때는 가만있다가 나중에 합의하고 나서 나중에 딴지를 거는 것은 무엇이냐? 아무리 의협회장이 영화 "공공의 적"에 등장하는 이성재처럼 남의 뒤통수 때리기의 전문가지만, 이건 무슨 때 아닌 홍두깨냐는 것이다.

둘째.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한의사야 약사들이 과거 "다이맨"시절 카운타에서 인근 한의원보다 더 한약을 많이 팔던 곳이 종종 있던 시절에대한 피해의식이라고 하지만, 의사들은 왜..? 라는 것이다. (솔직히 주변 의사들조차 추상적으로 만약 그렇게 되면 약사들이 일차진료의 영역을 잠식하려 들 것이라는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

난감한 일이다.

지금 우리의 대표들은 국민속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이 지금 무엇을 해야하는지도 모른다, 그저 일년에 한번쯤 "총력 투쟁"을 외치고, 적당한 시점에서 " 의사 파업 불사" 깃발만 한번 흔들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기가막힌 일이다, 어이가 없고,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다.

대명천지에 멀쩡히 가만있다가, 심지어 의협회장이 발행인으로 있는, 의협신문에서 조차 "약대 6년제로 한의사와 약사의 충돌"에 대한 기사만 보였지, 우리는 어떻게 반대하고 있는지. 대국민.대언론 홍보는 어떻게 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이문제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차 제대로 알리지 않다가,,, 갑자기 파업을 이야기한다..

필자는 이글을 쓰다가 숨이 턱에 막혀 더 이상 글을 이을 수가 없다,

약대 6년제라는 ,," 우리가 파업을 불사해야 할 정도로 엄청난 이슈가,," 우리는 말도 한마디 못해 본 채 현실화가 되었다, 또 이 과정에서 우리의 대표들은 말할것도 없고, 우리 민초들조차 "어.."소리 한번 내보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결정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조만간 병원 문걸어 닫고 파업을 해서 이 결정을 뒤집어 엎자고 한다..

필자는 이쯤에서 김재정 회장의 사주를 알고 싶어진다, 필자가 그리 용한 전문 역학자는 아닐지 몰라도, 그래도 연월일주을 알려주면 상을 짚어는 볼 생각이다,

왜냐면 지금 그분의 행태는 미제에 해당하는..머리만 쳐들고 꼬리를 적신 여우의 괘이거나,, 만약 그것이 아니라 , 기제에 해당한다면 이미 강을 건넜다고 주지육림에 빠져 배에 심지를 꽂힌 채 , 낙양성의 밤을 밝혔던 동탁의 사주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래저래 틀릴 리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이쯤에서 만해가 독자에게 보낸 시 한구절을 감상하자...

그때에는 나의 시를 읽는것이 느진봄의 꼿숩풀에 안저서 마른 국화를
비벼서 코에 대히는것과 가틀는지 모르것슴니다 - 만해 -

가을을 한참 지난 "느즌봄"에 "꽃숩풀에 안저서" 기억하는 지난해 가을국화의 개화는 애처롭다. 향기마져 가물해 이제는 "코에대히어" 간신히 잔향을 느끼려는 시인의 추억은 참혹하다...하지만 시인은 마른 국화를 "코에 대히"며 지난 가을이라는 평화로웠던 추엌을 체험한다.

이렇게 "느진봄의 꽃숩풀에 안저서" 지난 가을의 국화를 기억하고 재생해 내려는 이 참혹한 몸짓속에 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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