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이름을 세우라'

조형철
발행날짜: 2005-02-14 06:46:33
  • '시골의사' 박경철 (신세계 연합클리닉 원장)

공자가 이나라에 있을 때 자로가 물었다. "위나라 임금이 선생님께 정치를 맡긴다면 당장 무엇부터 하시겠습니까?"

공자가 답했다 "반드시 이름을 바로 잡겠다" 이에 자로가 다시 말했다 "하여간 선생님의 뜬구름 같으신 말씀도 어지간 하십니다. 그걸 어찌 바로 잡겠습니까?"

당시 위나라는 "위령공"이 죽고, 아들인 "괴외"가 외국에 나가 있는 사이 손자인 "첩"이 왕위를 계승한 뒤, 나중에 귀국한 아버지 괴외에게 왕위를 돌려주는 문제로 부자간에 치열한 다툼이 일어나 거의 내전 상태에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공자는 어떻게 수습하겠다는 대안을 내놓는 대신에 한가로이 "이름을 바로잡겠다"고 함으로서 제자인 자로에게 비웃음을 산 것이다.

다시 공자가 말했다.

"말이 거칠다, 자로여! 군자는 자기가 잘 할 수 없는 일은 빈칸으로 남겨두는 법이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이치에 맞징ㄶ고, 말이 이치에 맞지 않으면 일이 이뤄지지 않고,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제도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며,제도가 돌아가지 않으면 형벌이 알맞지 않고 형벌이 알맞지 않으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곳이 없어진다. 그러므로 군자가 이름을 붙이면 반드시 말 할 수 있으며, 반드시 행할 수 있는 것이니, 군자는 그말에서 구차함이 없을 따름이다"

이 대화에 등장하는 공자와 자로의 이야기는 다음의 두가지를 강조하고 있다.

첫째 난세에 "이름을 바로 잡는다"는 원칙론은 제자인 자로조차도 그것이 가능하겠느냐는 반응을 보일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것과, 둘째 어지러운 시절에 "이름을 바로 잡는 일"은 비록 그것이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하더라도, 포기 할 수 없는 원칙이라는 점이다.

지금 의료계는 당시 위나라의 혼란만큼이나 총체적인 위기에 빠져있다.

의사협회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대선에서 모 당의 지구당이 되다시피하고, 요즘 의사협회와 대립하고 있는 모 의료기사 단체는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다른 모당의 진성당원 원서를 들고 다니고, 한의사 협회는 목에는 청진기를 걸고 손에는 메스를 들고 나섰으며, 개원의 협의회는 권한 이양을 요구하며 의사협회에 맞서고, 의사협회는 오히려 법정 단체론을 내세워 징계권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더구나 의사, 한의사,약사, 의료기사가 싸우고, 간호사와 간호 조무사 단체가 서로 멱살을 쥐는 동안, 정부는 소리 소문없이 "귀족의료와 빈민의료"의 이원화를 목표로 한 의료정책의 새로운 틀을 일사천리로 짜나가고 있다.

지금 우리가 각자 서로 이루지도 못 할 어리석고 소모적인 전투에 몰입해 있을 동안, 이 나라의 의료정책과 지형들이 비전문 관료들의 손으로 하나하나 그 모습을 바꿔나가고 있는 것이다.

만약 앞으로도 우리가 태산처럼 놓인 커다란 과제들을 뒤로하고 이전투구만을 계속한다면 앞으로의 의료정책은 모든 이해 당사자들과 전문가들의 의견과 입장을 무시하고, 오로지 경제논리만을 앞세운 관료들의 의도대로 재편되고 말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쯤에서 스스로 상황을 추스리고, 우선 당장의 이해득실보다 좀 더 멀리 내다보는 혜안으로 협력하고 상생을 모색해야 한다.

언제까지 의사협회를 비롯한 모든 의료단체들이 서로의 이익만을 주장하며 끝없는 소모전을 펼칠 것인가? 지금이라도 그동안 쌓인 서로의 앙금을 씻어내고 포용할 것은 포용하고 서로 물러 설 것은 물러서서 대의를 지킴으로서, 좀 더 멀리 있는 큰 적을 물리치기 위한 지혜를 모으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니겠는가?

지금 당장 우리가 몰아내야 할 적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와 당신의 내부에 숨어있는 "관성과 이기심" 이라는 이름의 치명적인 병균이다.

이것이 바로 공자가 수천년의 시공을 넘어 "이름을 세우라"는 가르침을 남긴 교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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