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이트는 이제 철지난 외투

박경철
발행날짜: 2005-06-13 06:43:05
  • '시골의사' 박경철(신세계 연합클리닉 원장)

태평어람(太平御覽) 권208에는 마치 이솝 우화(寓話)와도 같은 한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주(周)나라 때, 어떤 사나이가 천금(千金)의 가치가 있는 따뜻한 가죽 이불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는 여우 가죽으로 이불을 만들면 가볍고 따뜻하다는 말을 듣고, 곧장 들판으로 나가 여우들과 이 가죽 문제를 상의하였다(與狐謀其皮). 자신들의 가죽을 빌려달라는 말을 듣자마자 여우들은 깜짝 놀라서 모두 깊은 산속으로 도망쳐 버렸다. 얼마 후, 그는 맛좋은 제물(祭物)을 만들어 귀신의 보살핌을 받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에 그는 곧 양들을 찾아가 이 문제를 상의하며, 그들에게 고기를 요구하였다. 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양들은 모두 숲속으로 들어가 숨어 버렸다."

여기서 여고모피(與狐謀皮)라는 말은 후에 여호모피(與虎謀皮)로 바뀌었는데, 이것은 '호랑이에게 가죽을 요구하다' 라는 뜻으로 여우나 호랑이에게 자진해서 가죽을 벗어 내라하고, 양에게 고기를 썰어 내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므로. 아예 근본적으로 이룰 수 없는 일 을 비유한 말로 쓰인다.

지금 의약계와 정부를 중심으로 리베이트 근절 투명사회협약의 체결이 임박했다.

이 협약의 출발은 부패방지위원회 등에서 의약계 리베이트 관행에 대해 상당량의 정보를 축척했고, 또 이를 기반으로 사법기관에서 내사를 시작하자 의약계의 대표들이 복지부장관에서 도움을 요청하였으며, 이에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투명사회협약을 맺을것을 제안함으로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협약을 바라보는 사회일반의 정서는 그리 곱지않다.

먼저 의약계 입장에서는 굳이 투명사회협약이라는 정치적 요식행위가 곱게 보이지 않고, 둘째는 리베이트라는 오랜 관행이 우리사회 일반의 부패구조의 하나라기보다는 의료보험 수가나, 정책등에서 입은 의료계의 일방적 희생을 일정부분 보상하는 기능을 하고 있었다는 점 때문이다.(예를들면 탈세를 감안한 고세율 정책처럼, 리베이트를 감안한 보험과 약무정책이 있었음을 부인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사회나 국민들의 일반적 정서는 입장이 다르다.

일반 사회의 여론은 전문기득권층의( 의료,법조,건설분야 ) 부패가 심각하고, 특히 사건수임이나 전관예우등의 법조비리가 약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건설입찰이나 감리비리가 부실과 부패의 근원이며, 의약계의 리베이트는 약값의 형태로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으로 전가된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이부분에 대해, 그간의 의약계의 리베이트관행은 법조비리나, 건설비리등과는 차원이 다르고 세계적으로도 형태만 다를뿐 공통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일 뿐 아니라, 이경우 외국계나 일부 매이져 제약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제약사가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의약계의 논리는 설득력을 얻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같은 논리로, 공식적인 월급을 적게받으면서 판검사를 하는 이유는 이후에 전관예우가 있기 때문이고, 수주비리가 없다면 중소형 건설사는 전부 쓰러질 것이라는 논리도 합리적이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약계와 사회일반의 이인식차이야 하루이틀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어쨌던 문제는 이 사안이 의약계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폭발력이 강한 사안이라는 점이다.

이미 알려져 있다시피 최근 일부 대형손보사들이 나서서 입원실을 둔 외과계열의 병의원들을 무차별적으로 고발하여 전국적인 자동차보험 수사가 진행중이다.

특히 작년까지만해도 산발적으로 진행되던 조사가 이제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각 시군구마다 상당수의 외과계열 병의원들이 검찰의 압수수색이후 신병처리나, 최소한 검찰수사 후 행정처분을 당하고 있다.

이렇게 알려진 사례외에도 손보사들의 고발전에 추정금액(손보사가 추정한 부당 청구금액)의 서너배의 합의금을 주고,사후에 민형사상의 이의를 제기하지않겠다는 굴욕적인 각서를 써주면서 사전 합의로 마무리 한 사례까지 포함하면 그 피해자 수는 의사사회에서 짐작하는 이상이고, 심지어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이 합의금으로 인해 앞으로 손보사들의 실적이 좋아질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올정도이니 그 규모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만약 그간에 누적된 의약계의 리베이트 문제가 전면에 부상한다면, 이것은 자보문제와는 비교도 되지않는 어마어마한 폭발력을 가지고 있으며, 현행법상 실제 의약계에 미칠 실체적 피해 역시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임이 분명하다.

더구나 사정기관에서는 이미 모든 의료기관의 최근 몇년간의 거래자료를 축척하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리베이트는 문자 그대로 일부의 문제에 지나지 않으므로 방치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관행에 대한 표적사정임을 주장하면서 대대적인 파업이라도 해야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속수무책으로 처분만 기다리는 것이 옳은 일일까?

의약계의 수장들이 주무장관을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하고, 주무장관 입장에서도 사안의 폭발력을 감안하여 "투명성 협약"이라는 정치적 제스츄어를 통해서라도 사회대중의 동의를 구하는 형식을 제안하게 된 이유도 바로 이러한 심각한 상황 인식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의약계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인가? 장관이 제안한 투명성협약을 정치적 요식행위로 조소하면서 과거의 관행을 고집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이일을 계기로 의사사회가 투명해짐으로서 앞으로 외부사회의 간섭으로부터 당당해지는 전기를 마련해야 하는 것일까?

해답은 정해져있다.

그래야만 이번 투명성 협약을 여호모피라는 시각으로 바라보는 일각의 냉소와 의심을 극복할 수 있으며, 현재 의약계에 닥친, 또 앞으로 닥칠 수많은 난제들에 맞서 당당하고 떳떳하게 대응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주장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필자는 돌멩이를 맞을 각오를 하고 이글을 쓰지만, 그래도 리베이트 문제는 여우의 가죽이나, 양의 고기처럼 우리가 지켜야 할 내몸의 일부가 아니라, 좀 힘들더라도 벗어버리면 그만인 철 지난 외투에 지나지 않음을 인정해야한다.

작은 것을 탐하면 반드시 큰 것을 잃게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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