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희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임상심사위원(의사)
의약품/의료기기는 태생적으로 위해성을 가지고 있으나, 환자에 미치는 유익이 위해를 상회할 때 허가를 하게 되며, 따라서 의약품/의료기기의 위해 평가는 언제나 유익과 맞물려서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유익/위해 밸런스(benefit/risk balance)라고 한다. 어떤 의약품/의료기기의 허가를 취소한다는 것은 이 유익/위해 밸런스를 재평가한 결과 유익이 허가 당시보다 작거나, 또는 유익보다 위해가 더 크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유익/위해 밸런스는 정량적인 개념이 아니고 정성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위해를 과소평가하는 경우 환자에게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이 위험에는 사망 이라는 극단적인 경우부터, 설사나 두드러기 같이 일상 생활의 곤란은 있지만 조절 가능한 위험까지 매우 다양하다. 항암제의 경우 약물부작용으로 인한 사망의 위험성이 있더라도 허가를 하는 것은 환자들이 해당 약물을 복용하지 않으면 암으로 인해 사망할 수 밖에 없는 더 큰 위험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다이안느 35와 같이 건강한 사람이 복용하는 피임제의 경우 단 한 건의 발암 사례로도 피임제 적응증이 취소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암이 발생할 수도 있는 피임제를 복용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 약은 유전독성이 있어서 미국과 일본에서는 허가가 나지 않았으며, 규제적인 관점에서 문제가 많은 약물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와 같이 위해 평가에는 여러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있지만, 대원칙은 환자 중심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이 대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과소평가의 위험이 매우 크다. 또한 매우 중요한 점은 환자들에게 미치는 위험을 평가할 때 평균 위험, 평균 빈도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최악의 상황, 즉 최악의 부작용을 경험하는 그 누군가의 환자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유효성은 정량적인 평균을 본다. 그러나 안전성은 최악의 상황을 기준으로 해야만 위해로 인해 치명적인 사례가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필자는 식약처에서 일하면서 임상시험 중 발생하는 예상하지 못한 중대한 약물부작용(SUSAR)을 검토하는 일을 하고 있다. 현재 식약처에서 임상시험을 승인하고 안전성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DSUR(개발 중인 약의 정기적인 안전성 보고)을 검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SUSAR 는 유일한 임상시험의 안전성 모니터링이므로, 매우 중요한 것이다.
필자가 식약처에 들어간지 얼마 안돼 한 항암제 임상시험 중 심장독성으로 인한 사망 건이 SUSAR로 보고돼 검토하게 됐다. 해당 항암제의 국내 임상에서 심장 독성 사례는 총 5건이 보고됐고, 1건은 사망, 그 외 4건은 후유증을 남겼다. 해당 항암제는 이전에도 심장 독성 사례가 보고된 바 있어서 허가상 주의사항에도 2~3개월마다 심장 모니터링을 하도록 기술돼 있었으나, 해당 임상시험은 심장 모니터링이 없이 승인이 됐으므로, 필자는 그 때라도 심장 모니터링을 계획서에 삽입해 안전성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구두로, 메일로 여러 차례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비록 5건이 이 약물을 복용한 전체 환자에 비하면 매우 적은 사례일 수 있다. 그러나 약물 부작용은 대부분의 경우 복불복이기 때문에 어느 환자에게 발생할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으며, 해당 부작용을 경험하는 환자에게는 발생 확률이 100%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전성을 평가할 때는 해당 위해를 경험하는 환자 그 한 사람을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그럴 때 가장 적절한 평가를 할 수 있고, 이에 따라 바람직한 안전성 관리 대책을 세울 수 있다.
위해를 평가할 때 또 한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과대평가이다. 위해 평가에서 과소평가가 가장 위험하다면, 과대평가는 그 다음으로 위험하다. 과대평가를 하는 경우 환자에게 미치는 유익은 거의 없거나 매우 적은 반면 관련 산업에 큰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어떤 의약품의 위해를 과대평가해 허가를 취소한다고 하자. 관련 의약품을 생산하고 관리하는 사람들이 직장을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소 평가를 가장 주의해야 하지만, 과대 평가 또한 주의해야 환자와 제약/의료기기 산업 모두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가장 흔하게 과대 평가를 할 수 있는 부분이 잠재적 위험에 대한 것이다. 위험에는 이미 환자에서의 발병 사례가 입증된 위험(identified risk)이 있고, 아직 발병 사례는 없지만 가능성이 있는 잠재적 위험(potential risk)이 있다. 잠재적 위험에 대해서는 매우 주의깊게 접근해야 한다.
필자가 한 번은 MRI 검사에 사용되는 선형 가돌리늄 조영제에 대한 위해 평가를 한 적이 있다. 이유는 유럽의 규제기관인 EMA 에서 선형 가돌리늄 조영제가 MRI 검사 이후에도 그 조영제 신호가 계속 잔류하는 현상이 있으므로 이에 따른 어떤 위험이 있을 수 있으므로 선제적으로 허가를 취소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필자가 여러 자료를 살펴본 결과 MRI 검사 후 조영제 신호가 잔류하기는 했으나, 어떤 실제적인 관련 증상/증후/질병이 밝혀지지는 않았고, 동물시험에서도 같은 현상이 있었으나 동물의 부검시 뇌에 어떤 병리학적 병변이 관찰되지 않았다.
즉, 잠재적 위험에 해당하는 위험이었고, 환자에게 미치는 위험은 입증되지 않았다. 이 조영제의 처방 상황을 검토해보니, 대부분 국내 제약회사가 제네릭으로 생산하고 있었고, 연간 수십억에 이르는 처방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따라서 과대 평가로 국내 제약회사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점이 있다고 생각됐다. 따라서 허가상 주의사항에 해당 내용(뇌 잔류 현상)을 추가해 의료진들이 주의해 처방하도록 하는 수준의 안전성 관리가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이 건은 중앙약사심의위원회까지 상정돼 같은 결론이 내려졌다. 그러나 잠재적 위험은 언제든지 입증된 위험으로 바뀔 수 있으므로 이후 면밀한 추적이 필요하다. 최근 일련의 안전성 이슈가 있었다. 인보사 사태, 인공유방 사태, 라니티딘 사태, 액상 전자담배 사태 등이 그렇다. 앞으로는 각각의 사례에 대해서 식약처로 대표되는 정부가 위해 평가를 적절하게 했는지에 대해서 의견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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