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학술팀 이인복 기자
국내에서도 코로나 확진자가 연일 하루 10만명을 넘어서며 대유행의 정점에 다다르고 있다. 이에 맞춰 정부의 방역 정책들도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며 대변혁의 시기를 맞는 모습이다.
이러한 변화 중 가장 큰 전환점을 꼽으라면 역시 코로나 검사 시스템을 빼놓을 수 없을 듯 하다. 사실상 정부의 방역 정책 중 가장 큰 변화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는 코로나 대유행이 한창이던 2020년부터 자가검사키트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견지해 왔다. 정확도를 담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신뢰할 수 없는 검사라는 이유였다.
일각에서 확진자가 늘고 있는 상황에 더 이상 모든 검사를 PCR로 유지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왔지만 정책의 변화는 없었다. 오히려 무료로 PCR 검사를 해주는데 왜 자가검사키트가 필요하냐는 반문을 이어갔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정부는 정확도를 담보할 수 없다던 자가검사키트의 신뢰도를 강조하는데 여념이 없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물론 보건복지부까지 나서 국산 자가검사키트의 정확도를 강조하며 민심을 안정시키는데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하루 아침에 이렇게 180도 정책이 뒤짚히면서 의료기기 기업들도 초비상이 걸렸다. 정책이 발표된 후 반사이익이 있을까 내심 뒤에서 웃음을 짓던 기업들도 이제는 얼굴에 분노가 가득하다.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말들이 산업계를 뒤덮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부가 PCR에서 자가검사키트로 검사 시스템을 전환하는 그 시점까지 국내에서 자가검사키트 허가를 받은 기업은 단 두개에 불과했다. 앞서 설명했듯 지금까지는 정확도를 담보할 수 없다며 허가 자체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정부는 기업에 아무런 언질도 없이 급작스럽게 검사 방식의 변경을 발표했다. 이걸 계속 만들어야 하나 싶으면서도 명맥을 유지하던 기업들의 키트 재고는 순식간에 바닥을 보였고 이는 곧 품절 대란으로 이어졌다.
정부는 서둘러 묵혀놨던 허가를 풀기 시작했다. 단 두개 기업밖에 허가를 받지 못하던 자가검사키트는 올해 들어 갑자기 8개사까지 늘었고 제품도 9개 품목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밀려드는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했다.
그러자 정부는 또 다시 특단의 대책을 내놨다. 이른바 공적 자가검사키트가 그것이다. 사실상 조달 물량으로 키트를 돌린 것으로 키트 가격을 6천원으로 제한하고 약국과 편의점에서 인당 5개 이상 구매하지 못하게 하는 정책이다.
그러고도 불안했는지 정부는 국내 체외진단기업들을 대상으로 수출사전심의 제도를 전면 시행했다. 말 그대로 자가검사키트를 수출할려면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 내수로 물량을 돌리기 위해 수출을 일부 제한하겠다는 의지다.
지금까지 정부 말을 믿고 PCR 고도화에 매진하던 기업도, 애써 수출 노선을 닦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찬밥 취급 받던 자가검사키트로 외화 벌이를 하던 기업들도 모두가 멘붕(멘탈 붕괴)에 빠져버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로 인해 이들은 과거 마스크 대란, 체온계 대란 사태를 떠올리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정부가 마스크 가격과 수급을 통제하면서 병목 현상이 일어나다가 폭발적으로 물량이 쏟아져 눈물을 머금고 덤핑을 해야 했던 그 기억.
일선 의료기기 기업에 빠르게 체온계를 생산, 수입하라고 독촉해 대규모 물량을 확보했다가 많게는 수십억원에 달하는 재고 부담을 안았던 그 기억이다.
이러한 가운데 정부는 이번주 국내 체외진단기업들이 이른바 K-헬스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돕겠다며 수백억원의 예산 편성을 발표했다. 빠르게 허가와 심사를 해주겠다는 약속도 덧붙였다.
이미 국내에는 정부가 찬밥 취급하던 자가검사키트로 수천억원대 수출고를 올리는 기업들이 즐비하다. 전세기까지 동원해 한국의 키트를 실어가는 국가도 많다. K-헬스는 오래전부터 현재 진행형이고 국내 체외진단기업들은 이미 세계를 휩쓸고 있다는 의미다. 지금은 그토록 강조하는 K-방역이 발목만 잡지 않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