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노조의 탄생에 관한 생각

안용항
발행날짜: 2006-05-30 11:25:22
  • 인천부평구의사회 부회장 안용항

전공의노조의 탄생배경

의료계의 구조변화가 일어나는 듯하다. 전공의노조의 출범과 관련된 말들이 많다. 의료계의 구조변화는 2000년부터 서서히 시작된 듯하다. 2000년의 의약분업과 관련된 사태는 의료계 외부의 문제뿐만 아니라 내부의 문제들도 바라보게 되었고 이로 인해서 직역간의 협력과 갈등이 발생하게 된 이유일 것이다.

결국 2000년부터 시작된 보건복지부의 강화된 통제 정책들과 의약분업이 이러한 구조변화를 유발한 결정적 요소로 작용한 듯하다. 이미 병협은 의협으로부터 독립을 법적으로 만들었고 독자적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큰 틀에서 보자면 복지부의 통제의 틀 속에서 생존하기위한 몸부림으로 보인다. 전공의들 또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는데 이는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병원 경영자들과의 마찰이 불가피함을 예상할 수가 있다.

전공의들은 전공의협의회라는 이름으로 법적인 인정을 받는 조직은 아니지만 의료계 내부의 공식적인 단체로 인정으로 받아왔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관철시키기 위한 통로로는 너무나 비좁다고 느끼는 듯하다. 또한 법적인 배경이 없어서 자칫하면 불법적인 활동으로 곤경에 처하기 쉬운 상태이다. 병협의 입장에서 보면 노동자로서의 법적인 위치를 보장 받을 수 있는 전공의노조는 또 다른 병원내의 노조의 탄생으로 머리가 아플 것임이 분명하다. 복지부의 통제 공간 안에서 병원을 운영하려면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한데 그동안 전공의의 커다란 희생이 그 바탕이 되어왔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전공의와 전임의의 희생은 보건노조의 이익으로 전환된 점이 있다는 것도 분명할 것이다.

병원의 총수입의 커다란 변화는 복지부의 손에 달려 있다. 복지부의 통제로 진료 숫가가 제한되면, 병원 측으로서는 제일 쉬운 방법은 인권비의 절약일 것이다. 하지만 이미 노조가 결성된 ‘의사들 이외의 직원’들은 법적으로 보장된 노조활동으로 점차 자신들의 이익을 얻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는 길이 있는 반면에 전공의와 전임의들은 교육생이면서 노동자라는 측면 때문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데에 자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제 이들의 인내심이 한계에 온듯하다. 이것이 전공의협의회에서 전공의노조라는 법적보호를 받는 조직으로 변화를 유발시키고 있는 것이다.

전공의노조의 탄생 이후 노조활동 방향에 대한 생각

전공의는 피교육생이면서도 노동자이기도하다. 하지만 전공의는 영원한 노동자로 있는 것이 아니라 수련 후에는 또 다른 경영자로 자리를 잡게 되는 경우가 많다. 전공의의 최종 자리는 전공의가 아니라 ‘수련을 끝낸 의사’가 된다.

의사는 ‘전문가’로 사회에 위치하게 된다. 전문가로서 삶을 살다가 마치기를 대부분의 의사들은 원하고 있을 것이다. 전문가란 고도의 지식을 가지고 자율적 직업의식으로 사회와 자신을 적절하게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다. 만약 전문가가 전문적 지식을 상실하거나 자율적이 아닌 타율적 존재로 추락한다면 이미 전문가가 아닌 평범한 ‘기술자’로 인정되어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좋지 않은 상황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보면 전공의노조의 방향은 민노총이나 한노총의 방향과는 다른 방향을 선택해야함이 분명해진다. 전공의노조의 방향은 전문가로서의 ‘적절한 훈련’을 받을 시설과 준전문가(일반인의 입장에서 보면 전공의는 이미 전문가의 입장이다. 하지만 수련 후의 의사들과의 입장 차이를 이렇게 표현해본다.)로서의 대우를 요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민노총의 전체적 방향은 맑시즘적 입장이다. 물론 민노총의 각 노동단체가 전부 그러한 방향으로 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전체적 흐름은 맑스의 이상사회를 추구하는 방향인 듯하다. 이론적 맑시즘은 탈분업화를 추구함으로 분업화의 산물인 전문가의 위치를 인정하기가 어렵다. 일반 노동자와 다른 사회 각계의 전문가의 입장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래서 의사라고 특별대접을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같은 노동자가 되어야 된다고 주장해야하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고도로 분업화 되어야 발전한다. 현실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의 붕괴 예를 보면 탈분업화는 맑스와 같은 이상주의자가 갖는 망상일 뿐임을 잘 증명하고 있다. 이런 점을 생각해보면 전공의노조가 탄생한다면 일반적인 노동자의 입장만을 고수해서는 안 되는 이유일 것이다.

전공의노조의 방향은 전문주의의 실현으로 그 방향을 정하는 것이 사회를 위해서나 개인을 위해서나 세상의 흐름이라는 측면에서 봐도 그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문주의적 방향이 왜 필요한지는 언급을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아무튼 전공의노조의 방향이 노동자의 입장만을 강조하는 맑시즘적 방향을 추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는 배경은 전공의노조의 지도부가 지속적으로 노조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4-5년 후면 바뀐다는 점에서 전문주의적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나아가기에는 한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이다. 그를 경우 민노총 등과 연합하는 과정에서 전문가의 입장을 버리고 맑시즘적 입장을 선택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협의 입장과 전공의를 고용한 병원의 입장에 관한 생각

전공의를 고용한 병원은 전공의노조가 탄생된다면 전공의의 법적 근무시간의 조정을 당장 해야 한다. 그 결과 지금의 전공의수의 1.5-2배정도의 인원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물론 인권비도 그 정도로 상승할 것이다. 너무나 커다란 변화이다. 그러나 이것은 겨우 시작에 불과한 문제이다. 수많은 감추어진 갈등들이 밖으로 노출되고 새로운 갈등이 생길 것이다. 지금까지 전공의들을 가부장적 입장에서 바라보던 시각에서 경영자와 노동자의 갈등이라는 시각으로 바뀌게 되는 상황이다. 만약 전공의 노조가 병원과의 갈등 과정에서 병원노조와 힘을 합치게 되면 엄청난 폭발력이 생길 것이 분명하다.

수련병원의 문제 속에 감추어진 또 다른 문제도 있다. 교수들의 문제이다. 의대교수는 학생을 가르친다는 역할과 함께 병원의 수입에 공헌해야하는 입장에 있다. 어떤 병원의 경영자들은 수입이 저조한 의대교수들에게 간접적 압력도 가한다고도 한다. 미국의 교수들이 하루에 5-10명의 환자를 보고 나머지 시간에 강의와 연구에 몰두한다는 언론보도는 우리나라 교수에게서는 공상에 불과한 것이다. 저수가의 의료체계에서는 상상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다. 교수들은 병원경영자와 전공의들 사이에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된다.

전공의들은 의협에 자신들의 입장을 호소한다. 전공의노조 탄생이 어쩔 수 없음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의협은 전공의를 지지하든 병원들의 입장을 지지하든 선택의 기로에 서있는 것이다. 이것은 의협의 구조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다. 만약 전공의노조가 전문주의적 입장을 취하지 않고 맑시즘적 입장을 취하게 된다면 의료계는 근원적 정체성이 양분되어서 커다란 고통을 받게 될 것이고 심지어 양분되는 상황으로도 진행할 수 있음을 생각할 수 있다. 그 지점에 도달하면 의협은 대표성을 상실하게 될지도 모른다.

복지부의 통제 문제와 전문직의 정체성 확립에 관련하여

병원의 입장에서는 전공의들이 노조를 설립하기 전에 전공의협회라는 모임의 상태에서 전공의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이상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복지부의 통제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병원들도 막다른 골목으로 나아가기가 쉽다. 전공의들의 근무시간이 일반노동자의 군무시간처럼 줄어드는 순간 2배의 전공의들이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병원들은 이른 문제들을 전공의의 요구를 무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보다는 복지부의 통제문제와 저수가로 인한 병원경영 문제를 언급해야한다. 어쩌면 전공의들은 노동단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다른 병원 노동자들과 같은 근무시간을 요구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병원들은 문제의 해결을 병원 안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병원 밖에서 찾아야할 것이다. 의협도 마찬가지이다. 전문가로서의 정체성 상실을 가져올 수 있는 문제는 심각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전공의노조 문제는 전문가의 정체성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의협은 병원과 전공의의 문제를 내부조율로 해결하려기보다는 복지부의 통제 정책이라는 문제유발의 원인에서 해결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의료의 발전을 위해서 '전문가적 정신'을 확립하고 나아가는 것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의료는 앞으로 개척해나가는 학문이다. 해결되지 않은 질병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적 입장 고수보다는 전문가적 정체성이 절실히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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