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복지공단 산하 병원 근로자 298명, 임금 소송 제기 "대기시간도 법정근무"
공단 "당직근무 현저히 경미, 근로자 대부분 자택 등에서 휴식…통상업무 아냐"
병원에서 근무하는 수술실간호사와 임상병당리사, 방사선기사 등의 일명 '콜대기' 등 당직시간까지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에 포함돼야 할까? 이를 두고 사법부의 판단이 엇갈렸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정식 근로시간으로 인정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지만, 대법원은 당직·콜대기시간의 업무 내용을 정확히 따져 통상 근무 내용과 비교해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온콜(ON-CALL) 대기' 등 당직 근무가 많은 병원 근무 특성상 이번 판결은 향후 의료계에 여파가 클 것으로 전망다.
근로복지공단 산하 병원에서 간호사, 임상병리사, 방사선기사 등으로 일한 A 씨 등 298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임금소송의 쟁점을 메디칼타임즈가 짚어봤다.
■ 원심 "당직, 병원 특성상 통상 업무 유사"vs대법원 "세부적 근무내용 기반 재판단해야"
A씨 등을 비롯한 근로복지공단 산하 병원의 근로자들은 당직 및 콜대기 근무시간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에 해당된다고 주장하며, 이를 기반으로 퇴직금을 재산정해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공단 측은 강력 부인하고 나섰다. 이들은 "수술실간호사의 콜대기근무나 임상병리사, 방사선기사, 운전기사, 기계·전기기사 등이 수행한 당직근무는 평상근무와 달리 현저히 경미하기 때문에 법정수당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특히 수술실간호사 및 방사선기사 등은 콜대기수당 또는 당직수당이 지급되는 대부분의 시간을 근무장소가 아닌 자택 등에서 사용자의 지휘, 감독으로부터 해방돼 자유로이 휴식을 취했다"며 "해당시간까지 근로시간에 포함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들은 "공단은 정부의 예산 통제 아래 있는데 추가 법정수당 의무를 지게 되면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으로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 초래된다"며 "당직 근무수당 명목으로 지급된 부분은 통상임금에서 제외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실제 병원 전체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법정수당은 매년 최소 48억~59억원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이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병원 특성상 근로자의 당직 및 콜대기 근무는 정상적인 업무로 취급되지 않는 숙직 등 정도의 업무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1심 재판부는"병원 근로자들의 당직 및 콜대기 근무는 병원이라는 특성상 환자들의 생명을 위해 요구되는 것"이라며 "특히 임상병리사, 방사선기사, 수술실 간호사들의 당직, 콜대기 업무는 방사선 촬영, 병리검사, 투약, 긴급수술의 보조 등으로 통상 업무와 다르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숙직 업무를 통상의 근로제공과 달리 취급하는 이유는 정기적 순찰, 전화와 문서 처리, 비상사태 대비 감시 등 보통의 근로와 내용이 다르기 때문인데 오히려 원고들은 평시의 업무를 반복했다"며 "이들이 당직 및 콜대기 근무시간 도중 휴게시간이 자유롭게 보장됐다고 볼만한 증거 또한 없다"고 강조했다.
2심 재판부 또한 판단은 같았다.
법원은 "일반적인 숙·일직은 정기적 순찰, 전화와 문서의 수수, 시설 내 대기 등으로 노동밀도가 낮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정상근무에 준하는 임금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며 "하지만 숙·일직시 그 업무의 내용이 본래의 업무가 연장된 경우는 초과근무에 대해서는 야간·연장·휴일근로수당 등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병원 근로자들의 당직 및 콜대기 근무는 전체적으로 보아 숙·일직 업무가 아닌 통상적인 근로로 보아야 한다"며 "원고들이 실제로 통상 업무에 종사한 시간뿐만 아니라 당직 및 콜대기 시간 전부가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시간에 포함되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설령 근로자 중 일부가 당직 및 콜대기 시간의 대부분을 병원이 아닌 자택 등에서 보냈다 하더라도, 야간 또는 휴일에 평일 주간에 행하는 본래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상시 대기했기 때문에 근로를 제공했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들은 대기 중 실제로 호출이 오면 곧바로 병원에 도착해 방사선 촬영, 병리검사, 투약, 긴급한 수술의 보조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며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호출에 대비해 자택 등에서 대기한 시간 역시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에 놓여있는 시간이라고 봄이 상당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근로자들이 당직근무 중 수행한 업무 내용이 무엇인지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는 지적이다.
대법원은 "운전기사와 기계․전기기사의 경우 당직근무 중 수행한 업무의 내용이 무엇인지, 통상근무와 차이가 있는지, 당직근무 중 자유롭게 이용할 수 시간이 어느 정도 있었는지 등을 알 수 있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며 "방사선기사와 임상병리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또한 "수술실 간호사, 방사선기사와 임상병리사는 수술실, 영상의학실, 진단검사의학실의 콜 건수 등에 관한 자료가 제출됐으나 이것만으로 이들이 통상근무와 당직 또는 콜대기 근무 사이의 근무 밀도 차이가 어느 정도였는지, 자택에서 당직 또는 콜대기 중 콜을 받으면 몇 분 안에 출근해야 하는지 등을 알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근로자들의 자택에서 당직 또는 콜대기 근무시간 전부를 실질적으로 사용자 지휘․감독 아래에 놓여있는 근로시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기 어렵다"며 "원심 재판부는 근로자의 당직 또는 콜대기 근무가 내용과 질에 있어서 어느정도를 근무시간으로 볼 수 있는지 판단했어야 한다"고 밝히며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했다.
해당 판결은 콜대기 시간이 많은 병원계 근로자 특성상 향후 의료계에 보인다.
의료법학회 관계자는 "보통 당직근무는 호출을 받고 바로 업무를 시작하는 상황이 빈번하다면 근로시간으로 인정되지만, 근로자가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며 호출이 잦지 않으면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며 "이번 판결은 근로자들이 당직근무 중 얼마나 자주 콜을 받고 복귀했는지, 대기 중 즉시 복귀했는지 등이 쟁점으로 보인다"고 견해를 밝혔다.
이어 "병원은 다른 곳과 달리 응급상황 시 당직 근무 중에도 기존의 업무를 이어가는 경우가 많아 이를 모두 근무시간으로 인정한다면 병원 측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대법원이 파기환송한 만큼 향후 사법부 판단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 12월 일괄 지급 '임금 소급 인상분'도 통상임금?…대법원 '인정'
이들은 공단이 12월 임금 협상 후 소급 지급하는 '인상분'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지 여부를 두고도 갈등을 빚었다.
근로자들은 근로복지공단에 '상여금, 급식보조비, 장기근속수당(가산금 포함), 직무수행경비, 맞춤형 복지포인트 임금 소급 인상분' 등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주장하며 퇴직급여 등을 재산정해 차액분을 지급하라고 주장했다.
근로복지공단은 그동안 시간 외, 야간, 휴일, 연차수당 및 퇴직금 산정의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을 정하면서 ▲상여금 ▲급식보조비 ▲장기근속수당 ▲직급보조비와 직책수행경비 ▲맞춤형 복지포인트 ▲임금 소급 인상분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했다.
이에 근로자들은 위 각 수당들을 포함해 재산정된 통상임금을 기초로 퇴직금 등을 재산정해 차액을 지불할 것을 요구했다.
법원은 일관되게 상여금, 급식보조비, 장기근속수당, 직급보조비 등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며 근로자 측 손을 들어줬지만, '임금 소급 인상분'을 두고는 의견이 나뉘었다.
근로복지공단은 노동조합과 매년 12월경 정기적으로 임금협상을 진행해, 1년 단위로 임금 인상률을 합의한 다음 직원들에게 인상된 임금을 소급 지급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통상임금은 근로자에게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소정근로 또는 총 근로에 대해 지급하기로 정한 금액으로 정의하는데, 어떠한 임금이 통상임금에 속하는지 여부는 그 임금이 소정근로의 대가로 지급되는 금폭으로 정기적, 일률적,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것인지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1심 재판부는 임금 소급 인상분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공단 측 주장대로 노사합의 사항이나 지급일 전에 퇴사한 근로자는 인상된 임금 부분을 지급받지 못한다는 명확한 근거가 없다"며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인상된 임금이 소급해 적용되는 부분만 따로 떼어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일 것을 지급요건으로 지정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판단이 달랐다.
법원은 "임금협상에 따라 소급해 지급되는 임금은 근로자가 근로를 제공하면 추가조건 없이 사전에 지급 여부나 지급액이 예정된 임금이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근로자가 임의의 날에 소정근로를 제공한 후 노사간 임금협상이 완료될 때 비로소 당해 연도의 임금을 인상할 것인지, 그 인상분을 소급해 지급할 것인지, 얼마를 지급할 것인지 등이 정해지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2심 재판부는 "따라서 임금 소급 인상분은 통상임금성 판단기준 중 사전예정성, 즉 고정성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며 "또한 사전에 지급 여부 및 지급액이 예정돼 있지 않아 노사가 연장근로 등의 제공 여부를 결정하는 데 아무런 자료가 될 수 없기 때문에 통상임금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또다시 달라졌다. 임금 소급 인상분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근로자와 사용자가 근로가치를 평가해 그에 대한 대가로 정한 이상, 단체협상 지연이라는 우연한 사정으로 소급 적용됐다 해서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볼 수 없다는 것.
대법원은 "임금인상 합의 전까지 인상 여부나 폭이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더라도, 근로자들은 매년 반복된 합의에 따라 임금이 인상되면 임금 소급 인상분을 지급받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며, "노사 간 소급 적용 합의의 효력에 의해 소정근로에 대한 대가가 인상된 기본급을 기준으로 확정됐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즉 노사합의로 소정근로에 대한 추가적인 가치 평가 시점만을 부득이 근로의 제공 이후로 미룬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그럼에도 원심법원은 임금 소급 인상분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는데, 이는 통상임금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