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 처방률 공개에 숨겨진 전체주의 그림자

안용항
발행날짜: 2006-02-14 11:36:18
  • 안용항(인천시의사회 기획이사)

들어가며

항생제 남용 병원 공개를 거부하는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참여연대는 공개를 외치며 법정으로 끌고 들어 갔다. 참여연대의 생각은 ‘환자의 알권리를 보장을 통해서 항생제 남용을 막겠다’는 것임이 분명하다. 아무튼 판사는 참여연대의 손을 들어주고 보건복지부는 항소를 포기했다. 그리고 공개를 선언했다.

이번 사건에서 궁금한 점이 생긴다. 1.심평원은 왜 남용 의료기관의 항생제 청구를 삭감 시키지 않았을까? 2.보건복지부의 항생제 남용기준이 정말 옳은 걸까? 3.공개를 상대적 기준으로 하는 것이 옳은 걸까? 4.공개하면 환자의 알권리가 정말 보장이 될까? 5.왜 보건복지부가 처음에는 항생제 남용 병원 공개를 거부 했을까? 하나씩 생각해보자.

심평원은 왜 남용 의료기관의 항생제 청구를 삭감 시키지 않았을까?
모든 세계에 공통으로 사용되는 의학 교과서에서 항생제 사용이 금지된 질병에 항생제를 사용하면 병의원의 약 사용을 평가하는 심평원에서 당연히 삭감시켜야 한다. 그런데 심평원에서는 삭감시키지는 않으면서 항생제 남용 의료기관을 ‘상대적 평가’하여 자료를 만들어 보복부와 해당 의료기관에 보낸다.

너무나 이해가 안되는 상황이다. 부적절한 항생제의 사용은 그 기준에 따라 삭감시키는 것이 심평원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심평원은 삭감시키지 않고 절대 평가도 아닌 상대 평가로 자료를 만들까? 이것은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을지 모른다. 하나는 심평원의 업무 태만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항생제 남용 통계 자료’ 자체의 커다란 문제점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 동안의 심평원의 일하는 모습을 보면 업무태만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 보다는 ‘항생제 남용 통계 자료’의 감추어진 문제점이 있을 것이다.

보건복지부의 항생제 남용기준이 정말 옳은 걸까?
항생제 남용 통계 자료의 문제점을 살펴보려면 제일 먼저 ‘항생제 남용 기준’을 검토해보아야 한다. 심평원에서 병의원에 보내는 자료를 보면 그 기준이 적혀있지 않다. 병의원의 잘못된 처방을 고치려면 삭감시키는 동시에 삭감의 원인을 자세히 알려줘야 한다. 그래야 해당 의료기관이 타당성을 검토하여 남용을 억제하게 되는 것이다. 왜 항생제 남용 기준을 적어 보내지 않을까?

아무튼 본인도 항생제 남용의 기준을 몰라서 의협의 보험담당자와 몇 차례의 통화 끝에 간신히 알게 되었다. 그 기준은 이러하다. (가) 항생제를 사용해서 안되는 병명은 J00-J06까지 이고 (나) 통계의 기준은 주상병명을 기준으로 통계를 만들고 (다) 전체방문 일수를 분모로 하고 (가)의 병명이 주 상병명일 경우에 항생제 사용 일수를 분자로 하여 통계를 만든다고 한다.

먼저 병명 기준을 J00-J06까지로 잡은 것도 의학교과서와는 전혀 다른 기준이다. 한 예를 들면 J020이라는 병명은 사슬알균성인두염(STREPTOCOCCAL PHARYNGITIS)이다. 병명에서 알 수 있듯이 박테리아성 질병으로 당연히 항생제를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심평원의 기준으로는 항생제 사용불가 이다. J030도 그러하다. 급성 축농증 계열은 전부 항생제 사용 금지이다. 항생제 사용불가의 기준조차 엉망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환자를 치료하지 말고 내버려두라는 말일지도 모른다.

다음으로 주상병명을 기준으로 통계를 만드는 것의 문제점이다. 한사람이 5개의 병명으로 치료를 받았을 경우 첫 번째 병명이 주 상병명이다. 만약 3번째 병명에 항생제를 사용해야할 경우라 하더라도 통계에는 항생제 사용 불가의 경우로 잡힌다. 항생제 남용 통계의 치명적 오류이다.

마지막으로 통계 방법이다. 분기별로 통계가 만들어 진다. 만약 환자가 10번의 치료를 받았고 그중에 주 상병이 J00-J06인경우가 2번이고 그중에 한번에 항생제가 사용되었다면 1/10으로 10%의 사용이 된다. 이런 방식으로 항생제 남용 통계가 만들어 진다. 보복부가 통계의 공개를 꺼려해서 참여연대의 자료 공개 요구를 재판까지 끌고 간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하다. 이러한 것이 사실이라면 보복부는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친 것이 될 수도 있다. 즉, 국민의 알권리를 정말 침해한 것이다. 참여연대는 보복부의 사기성 통계를 문제 삼아 다시 한번 재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공개를 상대적 기준으로 하는 것이 옳은 걸까?
이렇게 엉터리 방식으로 만들어진 통계자료는 분기별로 만들어진다. 이 자료는 병의원 별로 해당병원에 몇 건의 남용이 있었다는 절대적 평가 방식이 아니고 다른 병원과의 상대적 평가로 자료를 만들어 낸다. 따라서 그 평가 통계자료를 받은 병원은 자신의 병원에서 얼마나 남용하고 있는지 잘 알 수가 없다.

남용은 절대적 기준으로 평가해야 당연하다. 항생제를 많이 사용한다고 남용이라고 말할 수 없다. 적절하지 못한 병에 항생제를 사용해야 남용이 되는 것이다. 또 항생제 남용을 막기 위해서는 해당 병의원에 구체적으로 지적을 해주어야 한다. 어떤 환자이며 그 환자의 방문 일자에 사용한 항생제는 남용이었음을 상세히 지적해주어야 한다. 그런 식으로 분기별 남용 건수를 자료로 만들어 보내주어야 한다. 병의원은 그것을 확인 대조해보아야 한다. 그래야 통계의 장난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병원과의 상대평가 자료만 보내준다.

100명의 시민이 있다고 하자. 어떤 선을 넘어면 불법이라고 하자. 정부는 어떤 사람이 그 선을 넘었음을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평가 한다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그 선을 넘었는지를 정부만이 지켜본다고 하자. 그리고 그 결과를 발표하여 상위 25% 사람이 불법을 저질렀다고 선언해 보자. 그 선을 넘은 사람들 중에는 잠시 실수로 넘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지나가는 자동차를 피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넘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선을 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넘었다고 정부가 말할 수도 있다. 아무튼 그 사람들 중 25%는 전 국민의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된다. 그 선을 넘는 횟수가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25%의 불법적인 인간이 항상 생겨나기 때문이다.

항생제 남용문제는 상대 평가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절대 평가로 이루어져야 마땅하다. 상대 평가는 아무리 노력해도 25%의 불법적 인간을 만들어 놓기 때문이다. 정확한 의료 지식이 없거나 정보가 없는 기자, 국민들은 25%라는 글자만을 신경을 쓴다. 마치 전체주의 국가에서 자신들의 정치에 필요한 희생양을 만들기 위해서 항상 존재하는 25%를 준비해두는 것과 같은 생각이 든다. 상위 25%가 사라지는 날은 모두가 똑 같은 처방을 하는 날이다. 그 날은 기계가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게 되는 날이어야 가능 할 것이다. 즉,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지고 기계를 향하여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여? ?할지도 모르겠다. 그 기계는 인간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오직 붕어빵만을 찍어 낼 것이다.

공개하면 환자의 알권리가 정말 보장이 될까?
통계 자료가 엉망이면 국민들을 속이는 것이 된다. 엉터리 통계는 독재국가에서 양산되어진다. 국민을 속이기 위해서이다. 정확한 통계야 말로 국민의 알권리를 만족시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엉터리 통계로 의사와 환자사이의 불신감을 높이는 것이 환자의 알권리를 보장해줄 수는 없다.

정확한 통계가 만들어 진다고 해도 인간을 바로 이해하고, 똑 같은 인간이 아니라 존엄성을 가진 개개의 인간으로 진료를 하자면 통계자료 만으로는 충분치않다.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는 진료는 환자와 의사간의 의사소통이 제일 중요하다. 의사의 일방적 치료도 문제이지만 환자의 일방적 요구도 문제이고 의료체계를 감시하는 관료들의 통계자료에만 의존하여 통제하는 것도 문제이다. 인간 존엄성을 높이는 진료는 환자와 의사간에 서로를 존중하고 충분히 의사소통하여 신뢰 속에서 이루어져야한다.

환자의 알권리란 신뢰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제일 좋다. 엉터리 통계자료로 환자와 의사 모두를 속이거나 올바른 자료라고 하더라도 기계처럼 사용하는 자료는 인간 존엄성을 높일 수가 없다. 의료보험제도가 인간 존엄성을 위한 것이라면 좋은 의료보험제도를 생각해야 한다.

왜 보건복지부가 처음에는 항생제 남용 병원 공개를 거부 했을까?
의료체계를 감시하고 통제해온 보건복지부가 왜 항생제 남용 병원 공개를 처음에 거부했을까? 의사들이 너무나 이뻐서 일까? 의사단체가 힘이 너무나 강해서(?) 일까? 이런 것들은 절대로 아닐 것이다. 통계자체의 문제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1-4번까지 읽어온 사람들은 복지부가 왜 공개를 거부했는지 짐작이 올 것이다. 항생제 남용 자료의 문제점이 드러나는 것을 우려해서가 아닐까?

의사들의 25%가 문제가 있다는 언론 플레이를 통해서 의료계의 이미지를 적절하게 훼손하고 그들을 통제하기 쉽게 하기위해서는 아닐까? 이런 의심을 받지 않으려면 상대적 평가를 해서는 안된다. 해당병원에 어떤 환자가 어떤 날짜에 부적절한 항생제 사용을 했다고 직접 알려주어야 한다. 그래야 거짓 통계의 의혹에서 벗어 날수 있을 것이다.

마치며
좋은 의료체계란 환자 개개인의 애환을 들어 줄 수 있는 의료체계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려면 하루에 10명을 보아도 병의원이 운영될 수 있어야 하고 환자는 의사를 신뢰하고 의사는 환자를 친구처럼 여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이런 상황은 꿈에서나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씩 접근 가능하게 제도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좋은 제도는 보건복지부등의 관료들이 통제하는 관리형 의료체제일수가 없다. 관리형 의료체제는 환자를 인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통계속의 숫자로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무조건 풀어놓는 체제도 옳다고 말하기 어렵다. 본인의 생각으로는 최소한의 관리와 최대한의 자율적 형태가 절대적 이상형은 못 되더라도 좀 더 나은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우리의 의료제도는 점점 관료에 의한 관리형 의료체제로 몰아져 간다. 항생제 남용 병원 발표문제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관리형 의료체제는 인간은 없고 통계자료에 따른 붕어빵씩 진료만 남게 된다. 관리를 통한 통제가 심해질 때, 또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싶을 때(가진자라고 비난하고 싶을 때) 통계의 조작도 쉽게 만들어 질수도 있을 것이다 . 이리하여 마침내 전체주의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상대평가는 나쁜 의사 25%를 ‘영원히' 만들어 버린다.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국민들을 속여 25%를 영원한 희생양으로 만들어 버릴 것 같아서 두렵다. 전체주의의 싹은 빨리 잘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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