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 판결,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

허감
발행날짜: 2006-07-03 06:19:25
  • 인제의대 허감 교수(전 영상의학회 이사장)

지난 6월 30일 서울고법은 “CT는 한방의료 영역이 아니다”고 판시했다. 이는 불법의료행위의 위해로부터 국민건강을 지키려는 의료법을 사법부가 올바로 해석한 당연한 결과로 일부 언론에서 부추기고 있는 의사와의 영역다툼으로 표현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은 의료인의 올바른 인식과 그 후속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의료법 제2조는 의사와 한의사로 구분하고 의사는 의료에, 한의사는 한방의료에 종사함을 임무로 규정하고 각기 면허된 이외의 의료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였다. 또한 대법원은 한방의료에 대해 ‘우리나라에서 예로부터 행하여지던 전통적 의료행위’로 규정하여 그 범위를 비교적 명확히 했다.

2004년 12월 21일 서울 행정법원은 CT를 불법으로 사용하다 행정처분을 받은 한방병원의 행정소송에 대한 판결에서 의료법에 의료와 한방의료 행위를 정의하는 구체적인 규제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CT는 한의사가 하는 망진(望診)에 사용될 수 있다고 판단되므로 한의사의 의료영역이 아니라고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한의사도 오감(五感), 의사도 오감을 가지고 진단한다”고 했다. 즉, 한의사가 환자를 바라보고 체질 및 기와 음양의 정도를 진단한다는 망진에 CT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견해다.

과학에 근거하는 의학과 철학에 근거를 둔 한방의료는 질병의 원인에 대한 인식이 달라 동일 질환에 대해 서로 다른 학문을 바탕으로 접근하며 진단과 치료방법이 확연히 다르다. 명칭의 유사성 외에는 그 어떤 분야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이질성을 가지고 있어 이를 쉽게 비유하기조차 어렵다. 오감을 사용하지 않는 전문분야가 세상에 있을까? 지극히 퇴행적 일반화의 논리, 즉 너나 나나 목욕탕 안에서 뭐가 다른가? 라는 식의 표현은 해당분야의 심각한 이해부족과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부정적 사고에서 비롯되거나 논리의 궁핍함에서 온다.

CT는 한마다로 장기 혹은 조직을 이루는 물질의 전자밀도에 따라 방사선 투과정도가 서로 다른 것을 이용한 첨단 의학 장비이다. 암과 염증은 그 조직을 이루는 물질이 변하고 따라서 전자밀도 또한 달라진다. 음양을 다루는 한방진료와는 전혀 무관하며 조금의 의학지식으로도 “도대체 한의사가 CT를 사용하여 무엇을 진단한단 말인가?” 라는 탄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작년 초 의협대강당에서 열린 토론장에서 한 패널로 나온 인사는 “의원과 한의원에 방문해보면 하는 일이 같더라” 라고 말했다. 이 말은 원심에서 있었던 황당한 판결 내용과 더불어 우리나라 의료의 현 주소를 말해준다. 면허된 이외의 의료행위가 버젓이 행해지고 있는데도 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과거 매우 보잘것없었다.


한의사 불법의료 근절 위한 후속조치 필요


우리 모두의 책임으로 그 책임을 일반화 하면 문제를 해결하는데 효율성이 없다. 개개인들은 분노와 못마땅함을 두서없이 표현할 뿐 문제의 핵심을 깊이 이해하고 논리적으로 접근하여 에너지를 모아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책임과 실행자의 구체화가 필요하다. 의료계의 전폭적 지지가 있었지만 이번판결은 대한영상의학회와 의협이 지난 2년간 앞장서 노력한 결과로 책임자와 실행주체를 구체화하여 성과를 거둔 예이다.

이번 판결의 최고 수혜자는 물론 국민이다. 불법의료행위의 근절로 높아지는 의료의 질의 혜택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체적 후속조치가 따르지 못한다면 불법의료행위의 근절은 요원할 것이고 이번 판결의 혜택이 국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이제 또 다른 책임자와 구체적 실행주체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높은 의료수준을 자부하며 의학교육과 실습 및 진료의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대학병원들은 의료에 미치는 실질적 영향력을 고려할 때 한의사들의 불법의료행위에 대해 지금까지 너무나 소극적이었다. 나는 이번 판결의 후속조치의 구체적 책임자와 실행자로 의협과 대학병원에 제시한다. 의협회장은 대학병원원장들과 만나 한의사들의 불법의료행위에 관한 사례 수집과 적극적 홍보 등 구체적 후속 실행 방안을 토의하고 실천에 옮기도록 할 것을 제안한다.

끝으로 서초구 보건소는 이번사건을 종결하는 것이 불법의료행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일임을 인식해야한다. 자존심이나 행정상의 절차를 앞세워 이번판결에 누를 끼쳐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번판결이 문제의 끝이 아니고 또 다른 시작을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제부터는 대학병원들이 의협과 함께 바통을 받아 또 다른 시작의 맨 앞에서 뛰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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