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의료, 어디로 가나…

심민철
발행날짜: 2008-03-17 07:00:06
  • 심민철 영남대의료원장

병원의 경영난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의사가 빚더미에 허덕이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은 이제 더 이상 뉴스에 오르지도 못할 만큼 자주 발생하고 있으며, 병원마다 전공의 인력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기초의학은 물론이고 생명과 직결된 외과계열에는 전공의 부족 현상이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 힘들고 불투명한 미래와 힘든 수련과정을 이겨내지 못한 전공의들이 하나, 둘 병원에서 도망치듯 사라지고 있다.

지난해 연말 외과학회는 ‘위기의 외과 구하기’란 주제로 정책심포지엄을 열고 “이 땅에서 외과의사로 살아가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될 경우, 향후에는 해외에서 의사인력을 수급해야 할 위기에 봉착하고 있고, 결과적으로 의료 질이 떨어지게 되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 통계를 보면 의사는 학력은 가장 높지만, 작업시간은 가장 긴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시간당 수입은 하위그룹에 속하고 있다.

의사는 선진국처럼 하루에 환자 20∼30명만 보아서는 경상 운영비 충당도 어려워, 인술의 현장에서 박리다매 진료로 수지를 맞추고 있는 실정이다. 아울러 병원 근무자의 임금은 같은 학력의 직업군 중에서 하위에 머물고 있다. 의료업은 재투자를 위한 자본축적이 거의 되지 않고 있으며, 낮은 수가가 대부분 인건비에 전가되고 있는 상황이다.

보건복지부에서는 ‘보편적 진료’란 말로 비싼 돈 들이지 말고 보통방법으로 치료할 것을 권장하고 있으며, 여기서 벗어나면 ‘과잉진료, 부당청구’라 하여 신문기사 거리가 된다. 그런데 문제는 보편적 진료를 하다가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의사와 의료기관에 모든 책임을 떠넘긴다.

고소득자로부터 보험료를 많이 받는 것은 보험공단이고, 의료기관은 상병에 따라 균등한 의료수가만 지급받을 뿐인데, 소득기준에 의한 배상금을 의료기관에 부담시키는 것이다. 수가는 사회보험식인데, 사고가 났을 때 하는 배상은 시장경제식이다.

병원과 의사는 의료사고의 위험과 경영의 어려움에 노출돼 있다. 현재 의료업은 환자진료를 통해 얻는 수입만으로는 대부분의 병원 및 의사가 간신히 생존하는 수준밖에 안 돼 주차장, 영안실, 매점 등 부대시설이 빈약하거나 없는 중소병원, 개원의는 경영환경이 더욱 열악하다.

국민들은 3시간 대기, 3분 진료에 자신의 병명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의료환경을 불신하고 있다. 진료의사를 믿지 못해 걸핏하면 다른 의사를 찾는 의료쇼핑이 일반화되고 있으며, 일부 부유층은 해외원정 진료를 선택하고 있는 현실이다.

지금과 같은 상태가 된 원인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고 있는 것은 건강보험제도이다. 기본적으로 사회주의적 성격을 띤 건강보험이 전 국민에게 확대되고, 저(低)보험료에 따른 건강보험수가 억제로 의료공급형태와 이용형태를 왜곡시켜 결국 의료 질에서 심각한 문제를 남기게 됐다.

이런 상황임에도 올해 병원에 대한 의료수가는 1.5% 인상됐다. 이는 2007년도 원가보상 기준인 11.6%는 물론, 임금 및 물가상승률 4.4%의 절반에도 밑도는 수준이다.

우리나라 진료비는 미국에 비해 10분의 1 수준이며, 보험수가는 원가 이하 수준이라고 보고되고 있다. 또한 의료비 지출은 GDP의 5.6%로 OECD 30개 국가 중에서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지만,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은 여전히 의료비 억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최근에는 우리 사회가 자유시장경제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체계는 역사를 거슬러가는 것 같다.

모든 의료기관을 건강보험요양기관으로 강제 지정하고, 예전엔 지역별, 직장별로 운영하던 건강보험조합을 단일조직으로 통합하며, 민간과 경쟁하는 공공의료기관을 확대하는 등 사회주의화, 국가통제주의화 강화에 의한 하향 평준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한국의료는 규제와 평등이란 틀에 갇혀 의료왜곡이 심화되는 등 기형적인 틀로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오피니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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