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위한 의료법 개정 포기해야"

양염승
발행날짜: 2007-03-27 11:02:05
  • 대한가정의학회 보험이사 양염승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후인 2003년 4월 보건복지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병원산업을 육성하라’고 지시하였고, 2005년 2월 취임 2주년 국정연설에서 의료산업을 전략산업으로 육성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이를 위해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대통령 소속의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가 설치되었다.

이러한 노무현 대통령의 의지가 담긴 의료서비스산업 육성대책이 이번 의료법 개정안에 상당부분 전격적으로 반영되었다. 즉, 병원경영지원회사(MSO)에 대한 의료기관의 지분투자를 허용하여 의료기관의 수직적,수평적인 네트워크화를 유도하고, 비영리법인의 인수,합병 근거 및 절차를 신설했고, 비급여 비용에 대해서는 유인,알선,가격할인을 허용하여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다.

의료산업선진화 방안은 기존의 의료체계를 완전히 뒤바꾸는 것으로 긍정적인 면과 더불어 부정적인 효과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조치이다. 하지만 지극히 시장논리 중심으로 입안되어, 의료기관의 경영난 악화와 도산 등의 구조조정을 촉진하고, 자본력이 있는 일부 대형병원과 민간보험회사만을 살찌우는 것으로 재고되어야 마땅하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이 의료분야가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국가성장동력이 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자신의 경제 실정을 만회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의료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인데, 이러한 초조함 때문인지,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에는 시급히 해결해야할 과제가 아니면 이슈화시키지 않는 정부의 관행을 깨고 개정 작업을 밀어 부치고 있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의료법 개정 목적에서 일부 사항에 대해서는 오히려 규제를 강화한다고 밝혔는데, 의원급 의료기관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인력, 시설, 장비 기준을 충족해야한다는 규정을 신설하여, 의원의 개설을 기존의 신고제에서 사실상의 허가제로 전환하였고, 병상이 있는 모든 의료기관에는 당직의료인을 두도록 관리기준을 강화하였다. 이는 의료기관의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조치들로, 시설에 대한 과잉투자와 인력 낭비를 가져올 수 있는 조항이므로 폐기되어야 한다.

노무현 정부는 임기내내 일차의료 육성에 대한 정책을 전혀 제시하지 않은 특이한 정부인데, 이번 의료법 개정은 일차의료를 도외시하는 정책들로 일관하고 있다. 병원과 종합병원 내에 의원의 개설이 가능하도록 했고, 비전속 진료(프리랜서의사 제도)를 허용하는 조항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이는 기존의 의료기관간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의료전달체계를 파괴하는 조항으로 삭제되어야 한다.

개정안은 직종별 업무분담과 조정을 시도하고 있는데 의사의 고유 업무인 투약을 의료행위의 정의에서 삭제하여, ‘약료’라는 미명하에 경질환에 대한 약사의 사실상의 일차의료를 허용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간호진단’이 함의하는 의미는 간호사의 단독 의료행위가 가능하도록 하기 위한 근거를 의료법에 넣으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의료법의 목적조항인 의료법 제1조가 기존의 ‘국민의료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에서 ‘의료인, 의료기관 등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는 것으로 축소 변경된 것과도 관련이 있는데, 의료법이 개정되면 국민의료에 필요한 사항을 의료법이 아닌 타 법령의 제정이나 개정으로 규율할 수 있게 된다. 간호사의 단독개업을 골자로 하는 간호사법의 제정이나, 약사법에 ‘약료’를 규정하는 것 등을 예측해 볼 수 있다. 또한 ‘유사의료행위에 관한 법률’의 제정이 있다.

보건복지부는 공청회에서 개정안에 포함된 유사의료행위 인정조항을 삭제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의료법에 의료가 아닌 유사의료행위에 관한 근거규정을 두는 것이 법률체계상 부합하지 않으므로 삭제하겠다’고 한 것이지 의료법이 아닌 타 법률에다 규율하는 것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의료인이 아닌 자가 행하여도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없는 경우’를 유사의료행위라 정의하고 있는데, 현재 예시되고 있는 것들은 사실상의 (위험도가 낮은) 의료행위에 해당되는 모순이 있다. 따라서 인체에 대한 침습과 특별한 부작용이 없는 행위는 현재와 같이 시장에서 유통되도록 하면 그만이고, 실제 의료행위에 해당되는 것은 무면허의료행위로 단속대상인 것이지 ‘유사의료행위’로 포장하여 허용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의료법 개정이 마치 관련단체가 합의한 것처럼 내세우며 국민을 기만하다가, ‘공청회에 참석해 의견을 개진하지 않으면, 의견이 없는 것과 같다’ ‘개정안 거부하면 의료계 망할 것’ 등의 폭언을 하더니, 급기야 보건복지부내의 ‘구강보건팀’ 해체를 결정하는 등 의료계에 대해 회유와 협박을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월 23일 입법예고한 개정안을 파기하고 2월 27일에 17개 조항을 정정하여 공고하였는데, 이는 ‘입법예고 후 예고내용에 중대한 변경이 발생한 경우는 해당부분에 대한 입법예고를 다시 하여야 한다’는 대통령령(‘법제업무 운영규정’)을 위반한 것이다. 정정공고에도 불구하고, 입법예고안 제51조에서는 ‘병원’, ‘종합병원’이라고 해야 할 것을 ‘병원급 의료기관’, ‘종합병원급 의료기관’이라고 잘못 표기하고 있다. 또한 ‘규제를 신설 또는 강화하고자 할 때에는 규제영향분석서를 작성하여 이를 입법예고기간 동안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통하여 공표해야 한다’는 행정규제기본법 및 시행령을 위반하고 있다는 비난이 일자 입법예고기간 만료 이틀을 앞둔 3월 23일에야 부랴부랴 이를 공표하고 있다. ( 더구나 행정규제기본법 제9조에서는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규제를 신설 또는 강화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공청회, 행정상 입법예고 등의 방법으로 행정기관·민간단체·이해관계인·연구기관·전문가등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핵심 이해관계인이 빠진 공청회를 그것도 규제영향분석서를 공표하지 않은채로 진행하였기에, 이 또한 보건복지부가 법률을 위반한 것이다. ) 이는 이번 의료법 개정 작업이 얼마나 졸속으로 입안, 추진되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의료법 개정 작업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여, 의료법의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인 의료계의 의견을 존중하여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

오피니언 기사

댓글

댓글운영규칙
댓글을 입력해 주세요.
더보기
약관을 동의해주세요.
닫기
댓글운영규칙
댓글은 로그인 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으며 전체 아이디가 노출되지 않습니다.
ex) medi****** 아이디 앞 네자리 표기 이외 * 처리
댓글 삭제기준 다음의 경우 사전 통보없이 삭제하고 아이디 이용정지 또는 영구 가입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1. 저작권・인격권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2. 상용프로그램의 등록과 게재, 배포를 안내하는 게시물
3. 타인 또는 제3자의 저작권 및 기타 권리를 침해한 내용을 담은 게시물
4. 욕설 및 비방, 음란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