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①| 희미해지는 메르스가 남긴 교훈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은 메르스 사태가 지난 지 불과 2개월째. 메르스가 남긴 교훈은 잊은 채 과거의 병폐가 반복되기 시작했다. <메디칼타임즈>는 대형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그 실태를 점검해봤다. <편집자주>
메르스 감염 확산에 따른 우려로 병원을 떠났던 환자들이 속속 발길을 되돌리고 있다.
메르스 당시 지적된 대형병원 쏠림에 따른 응급실 과밀화 등 고질적 병폐를 고스란히 안고.
<메디칼타임즈>는 지난 17일부터 21일까지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대형 대학병원을 직접 찾아가 메르스 사태 이후 응급실 과밀화 실태를 살펴봤다.
이들 병원은 응급실 출입하는 의료진은 물론 환자 및 보호자에게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응급실 출입구를 통제하고 있었다.
서울아산병원 등 일부 병원은 소아응급실의 경우 응급실 출입한 보호자 명단까지 적어가며 감염관리에 고삐를 단단히 죄느라 분주했다.
삼성서울병원은 여전히 출입구에서 방문객 한명한명 체온을 체크하고 있다.
또 병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방문객을 통제하는 등 응급실 감염관리를 한단계 강화한 듯 했다.
특히 메르스 직격탄을 맞은 삼성서울병원은 응급실 내 환자 보호자 1인으로 제한하고, 병원 전체 출입구마다 출입객 전체를 대상으로 체온을 측정하며 각별히 신경쓰는 모습이었다.
뿐만 아니라 삼성서울병원은 병원 외부에 격리진료구역을 마련, 발열·호흡기 진료소를 설치했다. 게다가 성인과 소아청소년 구역도 구분했다.
구급차를 타고 온 호흡기 질환자는 이 공간을 거쳐 응급실 혹은 병실로 옮겨졌다.
이처럼 메르스로 한차례 홍역을 치른 병원들의 각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형병원의 환자쏠림 및 응급실 과밀화는 여전했다. 다만 얼마 전까지 문을 닫았던 삼성서울병원의 응급실은 한산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실제로 응급실 출입구를 철저하게 통제하는 모습과 달리 응급실 내부로 들어서자 복도에는 메르스 이전과 다름없이 무기한 대기 중인 환자들의 모습이 펼쳐졌다.
환자들은 링거를 꽂고 휠체어에 의존한 채 검사나 시술 순서를 기다렸다.
모 대학병원 응급실 복도에는 베드가 없어 1박 2일째 환자가 대기 중이다.
또 고령의 환자들은 에어컨으로 낮아진 실내온도 탓인지 개인적으로 준비한 이불을 덮거나 그마저도 없는 환자들은 병원 침대 커버를 뒤집어 쓴 채 지쳐가고 있었다.
위의 A대학병원 사례의 환자 보호자는 "우리가 어제 저녁에 왔을 때 본 환자들이 지금 그대로 있는 걸 보면 다들 하루 이틀씩 응급실에서 대기하기 일쑤인가 보다"며 "메르스 이후에 뭔가 달라졌다 싶더니 변한게 없다"고 토로했다.
B대학병원 사례의 환자는 익산의 중소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상태가 악화돼 앰블런스를 타고 응급실로 실려왔지만 1박 2일째 응급실 대기실 의자에서 순서를 기다렸다.
내시경 검사를 앞두고 금식 때문에 기력이 없어진 환자는 링거를 꽂고 대기실 의자에 반쯤 누운 채였다.
C대학병원 응급실을 내원한 80대 여성환자는 "어제 아침에 왔는데 복도에서 하루를 보냈다"며 "응급실에도 침대가 없어서 휠체어에 앉아있다가 수술받으러 가야한다"고 했다.
고령의 환자는 "앉아있기도 힘든 상황에서 하루 종일 휠체어를 타고 있다가 기력이 없어서 수술이나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삼성서울병원은 메르스 이후 병원 외부에 격리진료실을 만들어 호흡기 응급환자는 이곳에서 진료를 하고 있다.
D대학병원에 입원한 환자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썰렁하던 병동이 어느새 가득 찼다"며 "6인실에 입원하려면 1인실에 대기를 해야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병원 측에서도 응급실 공간과 의료진은 한정돼 있는데 환자가 몰려드니 뾰족한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서울대병원 내과 한 의료진은 "메르스 여파로 감소했던 환자 수는 100% 회복했다. 여기에 치료를 미뤘던 환자까지 몰리면서 오히려 환자 수는 110~120%늘었다고 봐야할 것 같다"고 전했다.
삼성서울병원 한 의료진은 "과거에 비해 환자 수 70~80%는 회복한 것 같다. 경영이 정상화되는 것은 다행이지만 한편에선 벌써부터 의료진들 사이에선 달라진 것 없이 과거로 회귀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흘러나오고 있다"고 했다.
격리진료소도 만들고 감염관리도 강화했지만 대형병원 환자쏠림 현상을 막을 근본적인 대책이 나온 게 아닌 이상 언제든지 과거의 문제점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대병원 한 의료진은 "의사도 환자도 놀라울 정도로 메르스 당시의 공포를 잊은 듯하다"며 "다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메르스 당시 한산했던 응급실은 다시 대기환자로 넘쳐나기 시작했고 이 상태라면 메르스가 남긴 교훈은 되새길 틈도 없이 과거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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