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원 프린팅과 같은 디지털 트윈이 4차 산업 핵심기술로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의료 분야에서 이를 적극 접목하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메디칼타임즈가 최근 이를 의료 3D 프린팅에 접목해 국제표준을 선도하고 있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심규원 소아신경외과 교수를 만나봤다.
■의료 3D 프린팅 국제표준 만든 심 교수…과정과 성과는
과거 의료용 3D 프린팅은 모델링 과정에서부터 난관이 있었다. 매번 CT·MRI 등으로 환자를 촬영해 3D 모델을 만든 뒤, 수술용 임플란트를 설계해야 했기 때문이다.
임플란트를 3D 프린팅한 뒤에도 후처리가 필요했고, 이를 수술로 환자에게 적용하는 일련의 과정이 자동화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수술용 임플란트 설계에만 24시간 이상 소요됐으며, 이를 다른 의료영상 데이터로 활용하는 것도 어려웠다.
심규원 교수가 의료용 3D 프린팅 모델 국제표준을 개발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2012년부터 관련 분야를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 있던 해외 의료영상 소프트웨어 업체 제품의 단점이 컸던 탓이다. 영상 자체는 그럴싸했지만, 실제 인체와의 괴리가 컸던 것.
이후 그는 2013년 11월 3D 프린팅 두개골 임플란트 업체와의 협업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했다. 이렇게 개발한 국내 최초 3D 프린팅 두개골 임플란트로 첫 수술을 시행하는 한편, 관련 제작 방법에 대한 2건의 특허를 등록했다. 이듬해엔 이 임플란트가 국민건강보험 진료재료에 등재되기도 했다.
2015년부턴 국제표준 관련 정부 국내위원회 및 정보기술(IT)분야 국제표준화회의(ISO/IEC JTC 1) 등 국제위원회 활동을 시작해, 2020년부터 국제표준 개발에 돌입했다.
그리고 2023년 의료 3D 프린팅을 위한 영상 기반 모델링 국제표준인 'ISO/IEC 3532-1', 'ISO/IEC 3532-2'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는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기사로 게재되며 "이 표준을 널리 사용하면 모범 사례를 권장하고, 기술 전반에 대한 언어를 조화롭게 사용할 수 있어 기술이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규원 교수는 이 국제표준이 제품의 설계도를 만드는데 필요한 규격을 정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임플란트를 만들기 위한 설계도인 인체 이미지를 더 완성도 있게 구현하기 위한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또 그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으면서 ISO/IEC JTC 1 '3D 프린팅 및 스캐닝 실무그룹 위원장'에 오르게 됐고, 최근 산업통상자원부 유공자 포상을 받았다.
이와 관련 심 교수는 "의료 3D 프린팅과 산업용 3D 프린팅은 다르다. 설계도에서 시작하는 공산품과 다르게 인체는 원본이 있다. 이 인체를 얼마만큼 완성도 있는 이미지로 만드느냐가 의료 3D 프린팅의 관건"이라며 "이를 위해 인체를 촬영해 원본을 얻고, 이를 3D로 구성해 설계하는 과정에 대한 국제표준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체는 흔히 보이는 사진들처럼 정형화되지 않고 환자마다 제각각이다. 이 때문에 임플란트를 만들려면 환자 맞춤형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라며 "하지만 CT 영상을 3D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많은 오류가 발생한다. 오류를 최소화하지 않으면 임플란트가 중구난방이 되는데 이를 위한 표준을 만든 것"이라고 전했다.
■녹록지 않았던 12년…정부 지원 부재에 해외 기업 견제까지
심 교수는 일련의 과정이 마냥 녹록지는 않았다고 회상했다. 특히 국제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1년 6번씩 해외 출장을 나가야 했는데 이에 대한 경비 지원은 전무했다. 이렇다 할 정부 지원도 없어 사비로 일정을 소화했어야 함에도, 그 성과를 정부가 가져가는 듯한 모습에 허탈감을 느끼기도 했다고.
실제 심 교수를 포함한 한국 대표단은 2023년 11월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된 제46차 ISO/IEC JTC 1 총회에 참석해, 2024년 예정된 제48차 총회를 국내 유치한 바 있다. 하지만 관련 보도자료가 본인도 모르게 정부발로 나가면서, 마치 정부가 이를 주도한 것처럼 다뤄졌다.
국제표준의 윤곽이 나오면서 이해관계가 얽힌 해외 사업자·국가들의 견제도 있었다. 심지어 심 교수가 소속된 실무그룹을 해체해야 한다는 요구까지 나왔는데, 지난 12년간 일하며 파트너십을 쌓은 인사들의 도움으로 이를 막을 수 있었다.
이와 관련 그는 "지원 없이 일하는 데서 오는 인한 어려움도 있지만, 정부 재정이 투입되지 않아 기술 경쟁에서 밀리는 것에 대한 우려가 크다. 전문 연구조직들도 연구비가 없다고 호소하는 실정인데, 겨우 받는 예산은 경쟁으로 국가사업을 따야 하는 식"이라며 "이슈가 있어야만 연구개발 예산을 편성하는 게 아니라 국가 기술력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대형 3D 프린트 장비 등 하드웨어는 이미 해외 기업이 독점하는 수준이어서, 우리나라가 이를 뛰어넘을 장비를 개발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다만 심 교수는 소프트웨어 측면에서의 국내 의료 3D 프린팅 기술은, 해외에 절대 밀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해외 하드웨어 기업들도 소프트웨어 측면에선 여전히 문제가 많은데, 관련 국제표준이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만큼 이를 선도할 여건이 된다는 것. 3D 프린팅 관련 정부 예산이 장비·소재에 집중돼 소프트웨어 개발 여건이 열악했던 상황에서 이룬 쾌거다.
■확장성 기대되는 의료 3D 프린팅 "적절한 정부 지원 있어야"
특히 그는 디지털 헬스케어 시대가 오면서 이런 소프트웨어의 확장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물건과 달리 시시각각 변하는 인체의 특성을 고려하면, 디지털 트윈을 만든 이후에도 지속적인 업데이트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소프트웨어의 정확도다. 만약 기술 고도화로 의료 3D 프린팅이 임플란트를 넘어 장기를 출력하는 수준으로 올라간다면, 정확도는 더욱 그 중요해진다.
이와 관련 심 교수는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내가 똑같은 상태일 수 없다. 의료에서의 디지털 트윈은 단순히 나를 복제하는 게 아니라 미래의 나를 계속 업데이트해나가는 것이다"라며 "예기치 않게 사고가 나거나 질병에 걸렸을 때, 그 이전의 상태를 알 수 있는 청사진을 만드는 개념"이라고 말했다.
이어 "디지털 트윈에는 골격뿐만 아니라 DNA 정보나 심장 박동 등 생체 정보가 모두 들어가고 기술이 발달하면서 그 가짓수가 더욱 많아질 것이다"라며 "아직은 꿈같은 얘기지만, 이런 디지털 트윈을 현실로 불러오는 것이 의료 3D 프린팅"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심 교수는 다음 단계로 의료 3D 프린팅 국제표준에 대한 영상 처리 평가지침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또 대한민국이 이런 의료 기술을 선도할 수 있도록 적절한 정부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어렵고 힘들이지만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밀리지 않고 난 한국 사람이다. 나 같은 사람이 많아야 한국의 위상이 올라가고, 산업이 발전한다는 생각이다"라며 "기술에서 중요한 게 국제표준이고 당연히 한국인은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표준을 쓰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어 "어떻게 보면 이런 표준을 만들기 위해 행정가처럼 일하는 것 같다"며 "큰 연구비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계속 보람된 성과가 나오니 계속 이 일을 하는 것일 뿐이다. 적어도 이런 일에 대한 경비 정도는 지원되길 바랄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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