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에서 IT 창업 동아리에 발을 들였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때로부터 고작 두 달. 달력을 몇 장 넘기지도 않은 시간 동안 나는 또다시 실제 서비스 개발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활동을 선택해 빈 페이지를 펼쳤다.
이번 이야기는 보험이라는 낯선 소재로 시작된다. 내가 기획한 프로덕트가 보험 추천 및 커뮤니티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발단은, 단순히 있으면 좋은 서비스가 아닌, ‘진짜 문제’를 해결하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어 했던 나의 강력한 욕구에서 시작된다.
문제다운 문제를 찾던 중, 보험 시장에서 벌어지는 모순된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다. 구매자와 판매자 간의 정보 격차에서 기인하는 불균형이었다. 보험 시장에서 소비자는 돈을 지불하고 구매하는 입장인데도 100퍼센트 본인의 이익에 부합하는 상품을 구매하지 못하거나 상품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한다. 은행 업무, 투자 등 금융의 다른 영역들은 앞다투어 천지개벽한 변화를 맞이하는 와중에 이게 말이 되나 싶었다.
그 문제의식이 이번에 기획한 서비스의 출발점이 됐다. 홀로 도메인 공부와 문제 정의, 가설 설정과 검증 단계를 거쳐, 전반적인 서비스를 기획한 준비 단계. 200명의 메이커(디자이너와 개발자)들 앞에서 서비스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기획 경선. 각기 다른 전공과 경험을 가진 메이커 13명으로 구성된 팀 빌딩. 이후 2주간의 합숙을 포함해 총 5주간 서비스 개발 단계. 그리고 그 여정의 일차 종착역인 데모데이에서 우리가 만든 서비스는 최우수상이라는 보람찬 수확을 맺었다.
그리고 앞서 나열한 모든 과정은 두 달 반 만에 이뤄냈다. ‘어떤 것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라는 수식어가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경험이었다. 이 밀도 높은 경험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하나의 깨달음이었다. 바로 말과 행동이 길을 만든다는 것이다.
서비스 기획 단계에서 내가 가장 힘들었고 쩔쩔맸던 일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Q&A였다. 맞다, 그 Q&A, 내 서비스에 대한 질문 공세에 답하는 일. 서비스를 꿰뚫고 있는 사람이 기획자 본인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어려울 것이 없어야 맞다. 하지만 혼자서 서비스를 구상할 때는 예측하지 못한, 한 번도 접근해 본 적 없는 관점에서 질문이 날아오기도 했다. '이 서비스를 기획한 주체인 내가 사전에 이 질문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 그런 질문들은 피할 수 없이 스스로의 빈틈을 직면하게 되는 순간들을 마주하게 했다. 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얕은 곳에 내가 서 있다는 깨달음은 내게 좌절을 안겼다.
뻔한 이야기지만 결과적으로 질문들은 나를 더 견고하게 만들었다. 예측하지 못한 질문들에 답변하기 위해 자료를 찾고 논리를 세우는 과정에서, 나는 내 서비스에 조금씩 살을 붙여 나갔다. 복잡한 도메인의 특성상 질문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도메인 지식 - 우리 서비스에 제기된 문제 - 현실적 방안 - 장기적 방향성'의 구조로 답변을 짜는 과정에서 오히려 뭉뚱그려 생각했던 내용들이 선명해지기도 했다.
물론 완벽한 답을 준비할 수 없는 질문들도 존재했다. 규제나 시장 상황처럼 현재로서는 불확실한 영역에 대한 질문들이 대표적이었다. 이런 질문들 앞에서는 논리적 근거를 최대한 제시한 후, 나머지는 실행 의지와 문제 해결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채운 답을 내놓아야 했다. '다음과 같은 현실적 제약이 있지만, 방법을 반드시 찾을 겁니다.'라는 다짐으로 답변을 마무리하면서 이게 답변인지 호소인지 스스로도 헷갈렸던 순간이 있었다는 고백을 이제서야 한다.
신기한 건 이렇게 일단 답을 하고 나니 마음가짐 자체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문제를 가능성의 영역이 아니라 해결해야 할 과제의 영역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무조건 해법을 찾는 쪽으로 사고가 전환되었다. 마치 입에서 나온 말이 나를 이끌어나가는 것 같았다. 말뿐만이 아니라 행동 역시 나를 이끌었다. 이 프로젝트를 하기로 했던 것도 마찬가지였다.
이 서비스가 잘 될지 안 될지부터(지금도 모른다), 내 거취가 어떻게 될지, 졸업 후 미래가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었다. 그냥 '이건 진짜 문제다'라는 확신과 이걸 해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덤벼들었는데, 일단 시작하니 길이 이어졌다. 새로운 지식, 새로운 네트워크, 새로운 정보들이 연극에서 막이 하나씩 진행되듯 차례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고, 이야기가 펼쳐졌다.
두 달 반이라는 시간을 돌이켜보니, 가장 중요했던 것은 완벽한 계획이나 철저한 준비가 아니었다. 시작하는 용기였다. 보험이라는 복잡한 영역에 뛰어드는 용기, Q&A에서 불완전한 답변을 내놓는 용기, 13명의 낯선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용기. 그 모든 용기의 시작점은 입 밖으로 내뱉은 한마디였다.
말을 뱉으면 어떻게든 하게 되고, 시작하면 길이 이어진다. 우리는 종종 완벽한 확신을 기다리지만 그 확신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완벽하지 않은 답변이라도 일단 내놓으면 더 나은 답을 찾게 되고, 불확실한 프로젝트라도 일단 선택하면 필요한 자원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연극 무대에서 막이 올라가는 순간 배우들이 등장하듯이.
지금 무언가를 시작하기를 망설이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완벽한 준비를 기다리지 말라. 대신 지금 가진 작은 확신으로 첫 발을 내딛어라. 말하라, 선택하라, 시작하라. 그러면 길은 자연히 이어질 것이다.
두 달 반 전의 나는 보험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서비스 기획도, 팀 프로젝트도 처음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작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발걸음을 떼면 길은 자연히 이어진다. 이것이 두 달 반의 여정이 남긴 가장 소중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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