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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번의 암 재발…그는 끝까지 메스를 놓지 않았다

발행날짜: 2013-07-11 06:25:26

절망 속에서 희망을 전한 고 이희대 교수…삶 재조명

|조명| 유방암 명의 고 이희대 교수

국내 최초로 유방 보존술을 도입한 유방암의 대가. 11번에 걸친 암 재발에도 메스를 놓지 않았던 시대의 명의.

지난 5월 16일 별세한 연세의대 이희대 교수를 요약하는 대명사다.

암을 고치는 암환자로 말기 암환자들에게 희망의 아이콘이 됐던 이희대 교수. 고인이 된 지금도 그의 삶이 끝없이 재조명 받으며 살아있는 역사가 되는 이유다.

주목받던 차세대 기수…갑자기 닥쳐온 시련

그가 이렇듯 살아있는 역사가 된 이유는 그의 발자취가 말해준다. 11번이나 재발한 암. 그 절망 속에서도 놓지 않은 희망의 끈이 삶 속에서 배어나오기 때문이다.

故 이희대 교수
1976년 연세의대를 졸업한 그는 미국 국립암연구소와 뉴욕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연수를 받은 촉망받는 외과의사였다.

실제로 그가 1991년 국내 최초로 도입한 유방보존술은 유방암 수술의 큰 획을 그었다. 당시 유방암 환자 중 24%만이 유방을 보존할 수 있었지만 무려 37%로 껑충 뛰었기 때문이다.

또한 1999년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감시 림프절 절제술을 도입해 유방암에 있어 최소침습술의 역사를 열었다.

하지만 2003년 1월 그의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이 생긴다. 대장암 2기 판정을 받은 것이다.

그는 자신이 집필한 '희대의 소망'이라는 전기를 통해 당시의 심정을 이같이 전한다.

"암에 걸렸다는 사실은 덤덤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암 전문가인 내가 내 몸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는 현실이 자존심 상했을 뿐이다."

그가 암을 바라봤던 시선을 느낄 수 있는 하나의 토막이다.

다시 시작된 인생…11전 12기의 삶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나 그는 다시 의사의 삶을 시작한다. 특히 수술 이후 강남세브란스병원 기획조정실장을 맡았고, 1년에 600여건씩 수술을 진행하며 전성기를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또 한번의 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강남세브란스병원에 PET-CT가 도입된 첫날. 새롭게 도입된 장비를 시험하기 위해 의료진이 모인 자리에서 그는 1번 타자로 검사를 자원한다.

환자에게 시험하기 전 자신의 몸으로 시험가동을 해보면 되지 않겠냐며 들어간 기기에서 그는 다발성 전이를 통보받는다. 졸지에 4기 암환자가 된 것이다.

그 후 그는 암과의 긴 싸움에 들어간다. 무려 10번에 걸쳐 일어난 재발. 하지만 암은 그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그는 끝없는 항암치료를 지속하면서도 환자를 치료했고 대한유방암학회 이사장을 맡으며 '암을 치료하는 암환자'로 이름을 날린다.

또한 2006년부터는 핑크리본 걷기 대회를 만들어 주관하며 유방암 예방과 조기 진단의 중요성을 알리는 대국민 활동도 펼쳤다.

이 교수는 암 투병을 하면서 암환자들의 고통을 느낀 것이 의사로서의 삶에 큰 지표가 됐다고 설명했다.

'암을 이기는 의사들'이라는 저서에 그가 쓴 글이다.

"나는 그동안 암환자의 고통을 알지 못했다. 그저 아는 척, 이해하는 척 했을 뿐이다. 암은 내게 진정한 의사가 되는 길을 알려주기 위해 나에게 찾아온 것이 아닌가 싶다."

"4기 암 뒤엔 5기 생명 있다" 그가 부른 희망의 노래

이렇게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신앙의 힘도 컸다. 실제로 그와 함께 유방암센터를 이끌었던 후배 교수들도 대부분 이에 대해 동의한다.

강남세브란스병원 A교수는 "고인이 되신 분이라 혹여 누가 될까 싶어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럽다"면서 "하지만 분명 신앙을 가지시면서 더욱 힘을 내신 것은 맞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발병과 재발 당시 절망과 희망이 공존했다면 신앙을 가지면서 끝없이 희망을 얘기하신 것 같다"며 "진료를 하면서 환자들에게도 신앙을 권유하셨던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이희대 교수 또한 생전 저서 등을 통해 신앙에 대한 많은 글들을 남겼다. '희대의 소망'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 저서에서 그는 "연세대가 기독교 재단이었고 세브란스병원이 선교사가 세운 병원이기에 나는 크리스찬을 연기하며 교수 생활을 해왔다"면서 "하지만 발병 이후 신앙을 가지면서 창조의 권위에 감탄했기에 암이 주는 절망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온몸에 암세포가 퍼진 상태에서도 하루에 50명씩 환자를 진료하며 세상을 등지는 그날까지 의업을 놓지 않았던 이희대 교수.

4기암 뒤에는 생명의 5기가 있다며 끝없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던 그의 밝은 미소와 긍정적인 힘은 후배 의사들과 환자들의 마음속에 영원이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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