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만 내린 제네릭 정책…재정절감 기대 어려워"
[메디칼타임즈=임수민 기자]정부가 최근 제네릭 약가를 40%대까지 인하하는 약가제도 개편안을 내놓은 가운데, 가격만 낮추고 처방·조제 등 수요 구조를 그대로 둘 경우 오히려 건강보험 재정이 더 불어날 수 있다는 전문가 경고가 나왔다.강제적 일괄 인하가 아니라, 저가 제네릭이 실제로 선택될 수 있는 구조 개편을 전제로 한 시장경쟁 기반의 자발적 인하가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목원대학교 권혜영 보건의료행정학과 교수는 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제네릭 가격정책의 구조 개혁'에 대해 발표했다.목원대학교 권혜영 보건의료행정학과 교수는 5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국민의힘 안상훈 의원이 주최한 '건강보험 재정 효율화와 제약산업 육성을 위한 약가정책 개혁' 토론회에서 이같이 밝혔다.권혜영 교수는 "한국의 제네릭 정책은 명확한 재정절감 목표 없이 가격만 규제하는 방식에 머물러 있으며, 그 결과 재정절감은 실현되지 않고 시장만 팽창했다"고 진단했다.제네릭은 WHO와 FDA 정의 등에 따르면 오리지널과 동일한 효과와 안전성을 갖춘 의약품으로 실제 심혈관질환, 항정신병제, 항고혈압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제네릭과 오리지널 간 임상적 효과 차이가 없다는 다수의 국제 연구 결과가 제시됐다.문제는 '효과는 같은데 가격이 싸야 할' 제네릭이 한국에서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권 교수는 미국과 유럽 사례를 통해 제네릭의 재정 절감 효과가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경우 전체 처방의 약 90%가 제네릭이지만, 약값 지출 비중은 20% 수준에 불과하다. 제네릭 1개 진입 시 가격이 평균 30% 하락하고, 5개 이상 진입하면 85% 이상 급락하는 구조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유럽 또한 유사한 상황이다. 제네릭 약제 사용 비중이 70%에 달하지만, 매출 비중은 19%에 불과하다.반면 한국은 제네릭 시장 점유율은 낮고, 지출 비중은 상대적으로 높다. 권 교수는 "특허가 만료돼도 오리지널 의약품 사용 비중이 여전히 높고, 제네릭 가격 역시 충분히 떨어지지 않는다"며 "이로 인해 제네릭 확산이 재정 절감이 아닌 시장 확장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실제로 국내 약품비는 2007년부터 2017년까지 53.5% 증가했으며, 제네릭 증가에도 불구하고 재정 절감 효과는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았다.실제 우리나라는 특허 만료 후에도 오리지널 사용 비중이 높고 제네릭 가격이 떨어지지 않아 재정절감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권 교수는 한국 제네릭 시장의 구조적 문제로 가격경쟁 부재를 꼽았다. 그는 "일괄 인하 중심의 약가 정책으로 오리지널과 제네릭 간 가격 차별화가 거의 사라졌다"며 "이 구조에서는 제약사도 가격을 내릴 유인이 없고, 의사나 약사도 굳이 저가 제네릭을 선택할 동기가 없다"고 지적했다.이어 "최근 정부가 특허만료 오리지널은 70% 가격을 유지하면서 제네릭은 45%로 인하한다고 밝혔는데 인하율이 40%든 50%든 강제적 인하가 아닌 시장경쟁에 따른 자발적 인하 방향이 바람직하다"며 "제네릭은 공급자가 자발적으로 가격을 10원이라도 인하해야 시장에서 점유율이 커지는데 이러한 가격 차이로 재정절감을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해외와 달리 한국에서는 성분명 처방, 대체조제 의무, 본인부담 차등화 같은 수요 측면 규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산업 측면에서도 구조적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한국은 완제의약품 제조사가 400여 곳에 달하며, 한 성분당 평균 10개 이상의 제네릭이 난립하고 있다. 일부 품목은 100개가 넘는 제네릭이 등재돼 있다.권 교수는 "소규모 제약사가 과도하게 난립하면서 R&D 투자 여력은 떨어지고, 산업 경쟁력은 오히려 약화되고 있다"며 "신약, 제네릭, 바이오시밀러를 구분한 차별화 전략과 함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권 교수는 한국의 약가제도가 나아가야 할 정책 방향으로 ▲제네릭 정책 목표의 명확화 ▲재정절감 실효성의 사후 검증 ▲참조가격제 도입 등 공급 측면 경쟁 유도 ▲대체조제 및 성분명 처방 활성화 ▲의사·약사·환자에 대한 인센티브 설계 등을 제시했다.그는 "제네릭은 단순히 '많이 만드는 약'이 아니라 '싸게 만들고 싸게 쓰게 설계해야 하는 제도적 상품'"이라며 "현재 한국 제네릭 정책은 이 기본 원칙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고 지적했다.이어 "지금처럼 가격만 건드리고 수요 구조를 방치하면 제네릭은 재정을 줄이는 수단이 아니라 재정을 키우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며 정책 전환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국민의힘 안상훈 의원은 5일 '건강보험 재정 효율화와 제약산업 육성을 위한 약가정책 개혁' 토론회를 주최했다.■ 제약업계 "한국은 아직 신약 전환 과도기…약가개편 우려"국내 제네릭 시장의 가격 경쟁이 의사 리베이트 중심의 왜곡된 경쟁으로 변질되면서, 합법·불법을 막론하고 산업 효율성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서울대학교 박성민 보건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는 제네릭 가격 경쟁이 왜곡돼 의사 등에게 이익을 제공하는 리베이트 경쟁으로 나타난다"며 "위법한 리베이트에 대한 제재가 강화되면서 더욱 음성화되고 있는데, 일반 도매상 마진율은 6%인데 CSO 수수료는 40%~50%, 한시적으로는 100%까지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이어 "병원과 경제적 공동체 관계에 있는 도매상을 통해 납품해야 처방이 나오는 병원이 있는데 그런 경우 그 도매상에는 마진을 많이 줘야 하거나 기부금을 내야 한다"며 "처방권자측에 이익을 줘야 제네릭 처방이 나오는 구조"라고 말했다.끝으로 그는 "일부는 위법한 리베이트만 아니면 괜찮지 않냐고 반문하지만 적법한 리베이트를 한다고 해도 회사가 재정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그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손실이나 산업의 비효율성 발생은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한국제약바이오협회 홍정기 상무이사는 "최근 정부가 발표한 약제개편안을 보면 그 전제로 '국내제약사의 혁신역량이 부족하다', '카피약에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책정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며 "이는 실제 산업 성과를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이어 "정부는 일본, 프랑스 등의 사례를 참고해 이번 약가제도 정책을 발표했는데 이러한 국가들은 이미 신약 중심 생태계를 완성하고 각종 세제 혜택이나 산업 육성 정책 등을 다각적으로 실시하고 있다"며 "반면 우리 제약산업은 제네릭 중심에서 신약 중심으로 바뀌는 매우 중요한 과도기로 동일 선상에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주장했다.끝으로, 보건복지부 김연숙 보험약제과장은 "개선방안 검토하면서 약품비 자체를 줄인다거나 단순한 절감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다"며 "큰 줄기에 해당하는 개편은 2012년 이후 상당 기간 이뤄지지 않은 측면이 있어, 현장에서 약가제도가 합리적인가에 대한 의문이 상당했기 때문에 이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