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전체주의의 광풍"…사직 1년 배장환 교수가 본 증원 정책
[메디칼타임즈=최선 기자]사직 당시 눈물을 보였던 배장환 교수. 당시엔 그도 상황이 이렇게 오래 지속될 것이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정부의 일방적인 의대 증원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20년 넘게 몸담았던 충북대병원 심장내과 교수직을 내려놓은지 벌써 1년. 지금, 상황은 당시와 많이 다르다.무엇보다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의 원점 재검토를 선언한 것. 지지부진했던 논의도 급물살을 탈 조짐이다. 최근 의대생들이 17개월 만에 전격 복귀를 선언하면서 해묵은 의정 갈등이 해결될 수 있다는 긍정론도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다만 전공의의 미복귀와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을 둘러싼 이견들은 불씨로 남아 섣부른 낙관을 경계하게 만든다. 무리한 정책 추진과 철회에 따른 신뢰 훼손도 풀어야할 숙제. 대학을 떠나 부산 좋은삼선병원에 둥지를 튼 배 전 교수는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그가 기억하는 1년…"전체주의의 광풍, 피해자는 국민"배 전 교수는 "7월 14일로 사직한지 1년을 맞았다"며, 현재는 종합병원에서 진료와 시술 중심의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연구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이고, 교육도 제한적인 상황. "진료는 대학보다 양이 많지만 몸은 고달프지 않고 재미있다"며 "시술도 대학병원에 있을 때만큼 많이 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부산이라는 지역 특성상 종합병원에 환자 의뢰가 꾸준하고, 응급시술도 자주 발생한다고 덧붙였다.정책에 대한 평가로 넘어가자 어조는 단호해졌다. 증원에 반대해 교수직을 내려놓은만큼 어찌보면 정책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그는 "의대 증원 정책의 가장 큰 피해자는 환자와 국민이며, 그다음은 전공의와 의대생"이라며 "본인은 그들의 고통에 비하면 감내할 만한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다만 철썩같이 믿었던 국립대학마저 일사불란하게 '상명하복'식으로 움직인 현실에는 큰 좌절과 배신감을 느꼈다고 했다."국립기관이라는 믿을 만한 논의 구조에 있고, 규정과 예측할 수 있는 범위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신뢰가 있었기에 근거가 부실한 증원 정책에 대학도 목소리를 내줄 것으로 기대했다는 것. 증원 정책의 수립, 수렴에 있어 민주적인 논의 과정이 작동되지 않은 건 정부나 대학이나 마찬가지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사직 1년을 맞은 배장환 전 교수는 의대 증원 정책을 전체주의의 광풍이 몰아치던 시기로 기억했다.배 전 교수는 "의대 증원은 입안부터 진행까지 전 단계가 탈법적이었다"며 "정책을 만드는 데 있어 민주적인 장치들이 작동을 안 했다고 해도, 대학이라면 이에 제동을 걸 수 있어야 하는데 기관장부터 하달받고 움직이듯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는 게 아직도 납득이 안 간다"고 했다.민주적 논의 구조 없이 이뤄진 정책 추진을 '전체주의 광풍'이라고 표현했다. 정부의 의도에 따라 만들어진 위원회는 형식적 절차에 불과했고, 교육부 장관조차 위원회를 단순한 조언 기구로 치부했다고 비판했다. 처음부터 명확한 데이터 없이 증원이라는 답을 내려놓고 근거를 끼워 맞추는 과정에서 숙의와 합의는 배제됐다.그는 "의대 증원 2천 명의 근거를 제시해달라고 문제를 제기해도 의료계가 지속적인 반대를 하기 때문에 논의 자체가 필요가 없다는 게 정부 입장이었다"며 "정부, 정치인이 해야 될 역할 중의 하나가 이해관계자들의 중지를 모으는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그런 고통스러운 논의 과정이 결국 민주주의의 피이고 민주주의의 꽃인데 그런 숙의 과정 자체를 다 부정했다"며 "그렇기 때문에 원점 재검토라는 당연한 귀결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평가했다.■견고한 위원회 정치 시스템…"일방적 정책 언제든 가능"정부가 정책을 철회하는 과정 또한 문제였다. 그는 "정권 지지도가 하락하고 계엄 논란이 겹치자 유야무야된 것일 뿐"이라며 "정책 실패에 대한 사과는커녕, 잘못됐다는 인정조차 없었다"고 지적했다.무엇보다 중요한 보건의료 정책이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좌우되는 현실은 구조적 문제 의식을 드러낸다. 정책 수립과 집행, 평가의 단계를 제어할 장치가 없기 때문에 이같은 상황은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구호에 그치는 '원점 재검토'로는 불씨를 완전히 꺼트릴 수 없다는 경고인 셈.그는 "정부는 원하는 정책이 있으면 위원회를 만들어 소수의 전문가와 다수의 시민단체, 환자단체 등 이해관계자들을 모아 투표로 밀어붙이고 이를 의견 수렴으로 포장한다"며 "이같은 전형적인 위원회 정치 시스템이 여전히 견고하게 작동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사실상 아무 것도 없다"고 단언했다.그는 "결국 의회, 행정부가 작동하지 않은채 정권 지지도가 떨어지고 계엄이 겹치면서 유야무야됐을 뿐"이라며 "민심이 기울고 정치적인 압박이 있어 철회한다는 그런 정책이라면 언제든 재발할 가능성은 항상 있다"고 지적했다.■"돌아오지 않는 전공의들, 원인은 정부 불신"의대 증원 정책이 원점 재검토 국면에 들어섰지만, 전공의 복귀는 여전히 요원하다. 정책이 철회됐지만 정작 현장에선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배 전 교수 역시 같은 진단이다. 그는 "정책이 철회된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춘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그는 전공의들이 여전히 병원으로 돌아오지 않는 배경에 대해 "언제든 다시 불꽃이 켜질 수 있다는 불신과 불안감이 깔려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원 문제를 떠나 필수의료 패키지만 보더라도 문장 하나하나가 직역 단체와 몇 년은 논의해야 할 내용인데, 지금까지도 정부는 아무 설명도 하지 않는다"며 "결국 나갈 때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복귀할 이유를 못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배장환 전 교수는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를 두고 정책의 철회가 아닌 잠시 멈춘 것에 불과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의견이 수렴, 상향식으로 정책이 수립되는 구조적 절차 없이는 일방통행식 정책이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정부의 태도 변화나 공식적인 사과 없이 상황이 개선되길 바라는 건 무리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그는 "정책의 입안자, 특히 (전)대통령이 나서서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2000년 의약분업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사과하고 나서야 의정 협상이 진전됐던 사례를 언급하며, 지금도 그와 같은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누구 하나 책임을 지거나 사과한 이가 없다는 데 더 큰 좌절감을 드러냈다.의료 공백에 대한 불안감이 미복귀 전공의를 향한 비난 여론으로 변질되고 있는 점도 우려를 사는 대목. 그는 정부가 의대생과 전공의에 대한 비판 여론을 방조하거나 유도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정부는 국민들끼리 갈라치기를 하며, 정작 정책 실패의 책임자들은 멀찍이 떨어져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의대생과 전공의는 분명한 피해자이고, 그들을 비난하는 시민들조차 정부의 프레임에 갇힌 또 다른 피해자"라고 했다. 사과 요구를 받아야 하고 비난을 받아야 할 대상은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이라는 것.정책 소통 방식도 비판의 대상이었다. 그는 "현장의 우려를 수렴하겠다는 정부 입장 변화는 체감조차 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특히 여당이던 시절 청문회나 위원회에서 "의료계가 무조건 반대한다"는 식으로 몰아붙였던 정치인들이, 정권이 바뀌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닫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의회도, 행정부도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꼬집었다.충북의대를 떠난 이후, 그가 들은 동료 교수들의 상황 역시 녹록지 않다. 그는 "진료 정상화를 위해 병원 측이 간호 인력 확보에 나서고 있지만, 교수 충원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내과 일부 분과에서는 교수 전원이 사직해 과 자체가 사라지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전했다. 교수당 업무량이 과도하게 증가한 상황에서, 국립대병원 특유의 노사 협의 구조로 인해 업무 재조정도 쉽지 않아 진료 정상화가 더딘 상황이라고 했다.결국 그는 "정부를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전공의 미복귀 사태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겉으로는 정책 방향을 바꿨다지만, 실제 구조나 행정 체계, 정치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는 것. 그는 "의료 정책의 실패보다 더 무서운 건, 그 실패가 반복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