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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합의해 끝난 줄 알았더니 환자가 의료소송

안창욱
발행날짜: 2012-06-30 06:36:13

서울중앙지법, 김모 원장 6천만원 배상 판결…"위임 증거 없다"

환자의 남편에게 '부제소합의'를 전제로 합의금을 줬다고 해서 의료소송에 휘말리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서울중앙지법 제18민사부는 최근 환자 정 모씨에게 필러를 주입한 김모 원장의 과실을 인정해 6천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정씨는 2009년 10월 김씨가 운영하는 의원에서 필러(CRM DX)를 양쪽 코옆 골주름 부위에 1cc씩, 왼쪽 입꼬리 밑 주름에 0.5cc를 주입해 팔자주름을 없애는 시술을 받았다.

그러나 정씨는 시술을 받은 후 코의 오른쪽 상처부위가 변색되고, 열감이 느껴지며 통증이 멈추지 않았다.

김 원장은 정 씨의 증상이 완화되지 않자 항생제를 투여하고, 상처 부위를 절개해 필러를 제거하는 수술을 했다.

미국 시민권자인 정 씨는 얼마 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는데, 곧 오른쪽 콧구멍 부위에 매우 큰 딱지가 생겼다.

그러나 몇 달 뒤 상처부위의 딱지를 제거한 후 오른쪽 콧구멍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미국의 성요셉병원에서 이마 조직의 일부를 절개해 만든 '이마피판(forehead flap)'을 이용한 코 재건수술을 받아야 했다.

정 씨는 안면부에 길이 11cm, 폭 0.5cm의 선상반흔 1개, 길이 2cm, 폭 0.5cm의 선상반흔 1개, 길이 5cm, 폭 0.6cm의 비후성 반흔 1개가 남게 되자 김 원장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고 나섰다.

그러자 김 원장은 정 씨의 소 제기가 부적합하다고 주장했다.

정 씨의 남편이 2009년 11월 '시술로 입은 피해와 관련해 그 보상 및 합의금으로 517만원을 수령하고, 향후 어떠한 법적 조치 및 추가적인 요구를 하지 않을 것을 확인합니다. 처와 합의사항임'이라고 기재한 확인서를 김 원장에게 교부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김 원장에게 확인서를 교부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지만 정 씨 본인이 작성한 것이라거나 합의서 작성을 위임했다는 증거가 없다"면서 "확인서 내용이 정 씨에게 효력이 미친다고 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이어 재판부는 "김 원장은 정 씨의 남편이 정당한 대리권을 가지고 합의서를 작성했다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합의의 효력이 미친다고 주장하지만 정 씨의 남편에게 대리권이 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특히 재판부는 "비록 합의서의 권리포기조항이 문언상으로는 나머지 일체의 청구권을 포기한다고 명시했더라도 후에 생긴 손해 범위를 현저히 일탈할 정도로 중대하다면 이 조항은 그 후에 발생한 손해에는 미치지 않는다"고 환기시켰다.

다시 말해 정 씨의 남편이 확인서를 작성한 시점은 시술로 인해 우측 콧구멍이 없어진 사실을 알기 전으로, 합의의 효력은 우측 콧구멍 상실을 원인으로 한 이 사건 청구에는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재판부는 김 원장이 필러를 주입하는 과정에서 부주의하게 안면동맥 안으로 필러를 주사한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김 원장은 시술 부위가 괴사될 수 있다는 등 부작용 등에 관해 구체적으로 충분한 설명을 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며,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덧붙였다.

다만 법원은 "정 씨의 뒤늦은 내원이 손해 확대에 어느 정도 기여했을 것이라고 보여 김 원장의 책임비율을 50%로 제한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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