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보건학자인 '정형선'(54) 이라는 이름 뒤에 '의료계 저격수'라는 닉네임이 붙었다. 그는 복지부 관료에서 연세대 교수로 변신한 후 2006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 공익대표 위원으로 위촉돼 2012년말까지 왕성하게 활동했다. 올해 위원 교체로 건정심에서 빠진(?) 정 교수가 느낀 그 동안의 감회와 그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들어봤다. 이번 인터뷰는 지난 25일 보건복지부 규제심사 회의를 마친 그를 계동 청사 지하 카페에서 만나 이뤄졌다. -편집자 주-
올해부터 건정심 위원에서 빠지게 됐다. 3번 연임으로 감회가 남 다를 것 같다.
2006년부터 건정심에 참여해 정책 결정의 핵심에 들어가면서 개인적으로 많은 공부가 됐다. 보건행정학과 학생들에게 업데이트된 정책과 방향을 가르칠 수 있어 큰 도움이 됐다. 또한 의료정책과 건강보험 정책의 경험이 쌓이다 보니, 발언한 내용이 정책에 상당부분 영향을 줬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꼈다.
건정심에 대해 밖에서 느낀 점과 활동하면서 차이점이 있다면.
원래 건정심에 주어진 역할보다 더 많은 것을 하는 것 같다. 복지부 입장에서 상당한 애매한 정책(논란의 여지가 있는 정책)과 책임지기 부담스런 정책도 건정심에 상정, 의결해 정당성을 부여받으려는 경향이 있다.
굳이 안올리고 내부에서 결정해도 되는 것을 건정심에서 의결했다고 언론에 알리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건정심에 들어가기 전에는 중요한 결정을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 정도로 역할이 큰지 기대하지 않았다. 왠만한 것은 다 올라온다고 보면 된다.
건정심에 참여하면서 어떤 역할을 했나.
가입자와 공급자, 정부가 모두 참여해 변화가 쉽지 않다, 복지부가 사전적
으로 조율하지만 큰 변화가 결정되는 게 아니다. 미세한 그러나 중요한 정책이 걸러지는 측면이 있다. 아젠다를 올리는 것은 복지부다. 국회와 같이 한 위원이 안건을 주도해 올리기는 어렵다.
안건이 올라오면 판단해서 발언하는 것인데 공익위원이니까 상대적으로 균형감을 가지고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 경우가 꽤 있다. 팽팽하게 맞설 때 한쪽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면 균형이 움직이니까.
소신과 정부 및 이해단체 사이에서 갈등은 없었나.
공익위원 차원에서 우선적으로 국민의 관점에서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복지부와 일치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고, 공급자 측에서 (공익위원은) 우리 편이 아니다는 불만을 제기한 적이 많았다.
복지부의 거수기 역할을 했다는 의료계 비판도 있다.
비판하는 것은 자유이다. 그런데 안건 심의시 국민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보장성 강화라면 복지부의 정책과 일치되는 면이 많이 있다. 하지만 공급자 입장에서 건정심을 계기로 발언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한다, 복지부가 공급자 입장을 듣고 정책 수립에 참고하기 때문에 건정심은 과거보다 유리한 구조이다.
과거 건정심 없었을 때는 어떻게 정책을 결정했나.
복지부가 그냥 정책을 결정했다. 관련단체에 묻는 정도는 했지만, 정책을 결정하면 그래도 됐지 현재와 같이 하지 않았다. 공급자는 수가 몇 가지만 생각해서 그런데 건정심 전체를 보면 다르다. 일본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곤 공급자들이 공식적으로 발언하는 구조가 없다.
일본은 중앙사회보험노조협의회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가 비슷하지만 후생노동성이 자문하는 정도다. 수가 등 거의 대부분 정책은 후생노동성이 결정한다.
건정심을 구성하게 된 계기는.
과거 건강보험법에는 건보공단 재정위원회에서 보험료 결정하고 수가는 단체별 계약에 의해 했는데, 2002년 건강보험 재정위기가 왔다. 정부는 돈이 들어오는 보험료와 지출하는 쪽이 같은 곳에서 해야 하는데, 균형이 안 맞아 재정위기가 왔다고 판단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차원에서 한 기능을 할 수 있는 건정심을 만든 것이다.
의료계에서 제기하는 건정심 구조의 문제에 대한 견해는.
의사협회 건정심 퇴장 후 언론과 인터뷰한 내용을 중심으로 말하겠다. 자칫 지금 건정심 위원을 그만 뒀다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냐는 오해를 살 수 있다. 지금 구도가 의사들에게 결코 불리하지 않다. 건정심 탈퇴는 과거 가입자들이 많이 했다. 바꾸려면 가입자와 공급자 동수와 추천한 공익위원이 하면 될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현재 발의된 박인숙 의원의 건강보험법 개정안과 같지 않나.
박 의원 법안 발의가 발언 전인지 후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법안은 국회에서 정할 사항이다.
공급자에게 16대 8, 의협과 병협 입장에서는 3대 21 구조라는 주장은.
공단이 공익단체로 들어간 것은 어색하다. 공단은 돈을 내는 보험자이다. 복지부와 기재부는 당연히 공익으로 봐도 될 것이다. 과거 가입자들이 뛰쳐나갈 때 정부를 공급자 편이라고 욕을 했다. 심평원도 보험자 중 하나이다. 돈을 내는 측에서 공익에 있다는 것이 한쪽에서 보면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의료계에서 제기하는 '저수가'라는 주장에 대한 생각은.
수가가 컨트롤 된다는 것은 정부 정책이 잘 되고 있는 것이다. 공급자들은 수가 이외 비급여 등으로 수익을 내고 있다. 우리나라가 수가의 단가는 낮을 수 있으나, 볼륨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체제 아닌가. 한 마디로 박리다매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형병원에서 한 의사가 환자 200명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을 못하는 구조이다. 양면성이다. 의사가 많이 일 한다, 의사 입장에서는 중노동하는 것이다. 질 문제로 연결하는 것은 부정적인 측면이다.
진료시간을 현재보다 늘려야 한다는 것에는 공감한다. 볼륨을 줄이고, 진료시간을 늘리는 만큼 수가가 올라가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다.
의협의 건정심 퇴장과 불참, 그동안 과정에서 느낀 점은.
의사들의 입장, 의사 전체 입장에서 실익이 없는 행동이다. 수가를 올리는 결과도 아니고, 명분도 약했다. 신임 의협 회장 입장에서 가상의 적을 설정해 위기를 만들어야 내부결속이 되니까, 그런 행동을 한 것이라고 본다.
노환규 회장을 토론회에서 만나 보면서 어느 정도 진정성이 느껴진다. 투쟁을 위한 투쟁도 있지만 의료제도를 제대로 개선하겠다는 생각도 있고, 소신도 인정된다. 다만, 공급자적 시각이 강하다. 의사들의 권익에 포커스 맞추다 보니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져 (주장이) 묻히는 것 같다.
의협이 건정심 복귀 명분 찾기에 고민하고 있다. 조언을 한다면.
현 건정심 구도는 공급자도 충분히 의사 개진이 가능하다. 의원급 수가도 미뤄가면서 마지막까지 돌아오라고 했는데. 복지부는 내리는(수가인하) 것을 막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일부 과격하게 얘기한 위원도 있는데, 복지부에서 자극할 것 있느냐며 의료계를 감싸줬다.
복귀 명분으로 토요일 가산 확대가 어렵다면, 건정심 멤버가 바뀌었으니, 새로운 멤버를 기대하면서 들어가겠다고 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가상의 적으로 생각했던 '정형선'도 나갔고.(웃음)
현 수가가 결코 낮지 않다는 발언으로 의료계의 반발을 가져왔다.
수가 증가율이 연 평균 2%로 너무 낮다고 불만을 제기할 수 있지만 사실대로 알고 제기해야 한다. 실제로 수가는 4.1% 올랐다. 다만, 환산지수가 2%이고 상대가치수가를 통해 나머지 2%가 올랐다.
수가는 상대가치점수 곱하기 환산지수이다. 상대가치점수를 반영해 4.1% 오른 것에 대한 불만은 이해하지만 2% 올랐다는 불만은 '팩트'가 틀리다. 의사들이 환산지수만으로 불만을 갖고, 울분을 토하기 보다 증가율은 4%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지난해 11월 공단 국제심포지엄에서 보고한 것이다.
의협에서 성명서를 내는 것은 좋은데, 팩트는 팩트니까 의사들도 알아야 한다. 볼륨(의료행위량) 증가까지 하면 매년 평균 10% 올랐다. 물론, 보장성 강화로 올라간 부분도 있어 이 부분은 볼륨 증가에서 빼야 한다.
의사 수 증원 소신에는 변함 없나.
그렇다. 분석 결과이다. OECD 회원국 패널 분석 결과로 20% 증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의전원까지 합쳐 한해 졸업생이 3058명이다. 이를 3600명인 20% 증가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서울 등 밀집 지역은 많을 수 있으나, 전체를 분석해 얘기한 것이다.
지방과의 균형 문제가 있지만 정책 차원에서 관여할 수 있는 것은 총량 밖에 없다.
의사 수 증원 주장의 근거인 데이터는 뭔가.
OECD 30개국 나라별 의사 수(1천명 당 의사 수)와 GDP, 고령화 등 과거 수 십 년간 패널 데이터를 분석한 기법이다. 여러 국가,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2020년 시점에서 한국의 인구변화를 고려해보면, 2.0% 의사 증가가 적절하다. OECD 평균은 3.0%이다.
한국은 이보다 적게 나왔다. 한국의 2.0% 의사 수 증가는 필요하고 판단해 발표한 것이다.
'의료계 저격수'라는 애칭 부담스럽지 않나.
(웃으면서) 글쎄, 그 부분은 국민이 있으니까.
'정형선'에 대한 오해 중 가장 아쉬운 대목은.
의사가 의료제도의 핵심인 만큼 제대로 역할하려면 기대수준 수입이 가야 하는 것은 맞다. 어떤 형태로 가야 하느냐가 문제인데, 건보(급여) 형태가 작아 보여도, 자본투자를 민간에게 다 맡겨 놨다. 부족한 부분을 비급여와 주차장, 장례식장 등 의료 외 수익으로 조달하는 구조이다. OECD 국가에 비해 의사 수익(GDP 대비)은 낮은 편이 아니다.
의사 수입이 낮다고 얘기한 적 있나.
수가는 수입과 연결된다. 의사가 안 좋게 되는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이 부분은 오해이다. 의사를 위해 좋은 측면을 얘기한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포괄수가제(DRG)의 경우 의료계에서 등을 지고 얘기해서 그렇지, 병원에서 포괄수가제를 하게 되면 의사들의 압박은 줄어들 것이다. CT 등 각종 검사를 해야 한다는 압박 등.
포괄수가제를 총액계약제 전단계라는 주장이 적지 않다.
포괄수가제와 총액계약제는 완전히 별도이다. 총액계약제는 행위별이든 포괄수가이든 총액을 정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수가의 축이 다르다. 서로 다른 축의 개념이다.
또 다른 오해가 있다면.
의사를 타깃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왜 그러겠느냐, 의료체계의 핵심은 의사이다. 다만, 정책적인 면에서 볼 때 불리하게 느낄 수 있다.
건정심 개선할 부분이 있다면.
복지부가 정책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할 부분은 건정심에 올리지 않았으면 한다.
예를 들어 송명근 교수의 카바 수술 상정도 포함되나.
카바 수술도 그런 부분이 있다. 정책적으로 결정할 부분이 보완되는 경우도 있지만 정책 자체가 진행되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일례로, 만성질환관리제는 일정 정도 수가와 연계된 때 올리는 것은 이해하지만 굳이 건정심에서 결정해야 하는 것처럼 꼭 올렸어야 할 사항인지 모르겠다.
인센티브는 올릴 수 있다. 정보를 알리고 의견수렴은 좋은데 때로는 제도 자체가 왜곡되는 경우가 생기더라.
복지부가 의료정책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 건정심을 이용한다는 의미인가.
이용한다는 의미는 뭐하다. 많은 사람의 의견을 취합한다는 명분은 있다. 그런데 논란으로 정책이 움직이지 못할 경우가 생기면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라고 느끼는 경우가 있었다. (웃으면서) 일부 그런 예가 있었다는 것이다.
복지부가 욕 먹을 각오하고 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뜻인가.
그렇다, 정책 만드는 과정에서 입법예고하고 의견수렴 하면 된다.
끝으로 의료계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책과 제도라는 큰 틀을 의사 모두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정책이나 언론기사를 보면서 '나는 괜찮은데 의사를 왜 이렇게 비난하나'라고 느끼는 부분이 있다. 일례로, 리베이트라고 하면 의사 전체를 욕하는 게 아니냐는 피해의식이 강하다.
의사는 최고의 전문가로 부러움의 대상이다. 부분적으로 비난 받는 것을 전체로 과민반응 할 필요가 없다. 개인적으로 의사에 반하는 발언을 한다고 해서, 의사 전체를 매도하려는 하는 것은 아니다.
교수가 정책을 분석하고 판단해서 자기 얘기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이제 건정심에서 나왔으니까 수가정책을 결정할 사람도 아니다. 홀가분하다.
정형선 교수는 서울대 영문과 졸업 후 행정고시(제27회)를 거쳐 복지부에 입사했다. OECD 한국대표 주재관 등을 거쳐 2002년부터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복지부 경력으로 공보과장, 식품진흥과장, OECD 한국 대표부 주재관, OECD 프로젝트 매니저, 복지부 자활지원과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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