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취재|명절 앞둔 제약사 영업사원의 하루
전날 기록적인 폭설이 내린 탓일까. 4일 만난 A사 영업사원은 오늘 일정이 걱정되는 눈치였다. 차에 탑승하자마자 반사적으로 질문이 나왔다. 이런 날에 영업이 가능하냐고. 그는 애써 웃으며 답했다. "그래도 이게 직업인데 어쩌겠어요."
그의 일과는 이렇게 시작됐다.
A사 영업사원이 명절 선물을 들고 의원을 방문하고 있다.
그는 먼저 택배를 찾으러 가야 한다고 했다. 알고보니 병의원에 줄 설날 선물이었다. 집에서 직접 파는 곶감과 제주도산 천혜향이었다. 10상자 정도를 준비했다고 했다.
"명절만 되면 저같은 영업사원들은 가슴이 답답합니다. 거래처 원장 모두에게 선물을 돌릴 수 없기에 선별 작업부터 고민에 빠지죠. 곤욕이라고 표현해도 되겠네요.
정부는 명절 선물도 리베이트라고 합니다. 하지만 현장은 적어도 성의 표시는 해야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합니다. 남들 하는데 안하면 뭔가 찜찜하기 때문이죠."
선물은 순전히 자비다. 명절마다 보통 40만원 정도를 투자한다고 했다. 많이 하는 사람은 100만원을 훌쩍 넘긴다며 자기는 적게 하는 편이라고 귀띔했다.
그리고 농담을 던졌다. 만약 내 연봉이 3000만원이면 실제는 2900만원이다. 두 번의 명절 선물비를 빼야하기 때문이라고. 우스갯소리였지만 뭔가 모를 착잡함이 느껴졌다.
택배가 도착했다. 차 트렁크에 선물을 실었다. 본격적인 선물 돌리기 시간이다. 차를 타고 가다 홈플러스가 보인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명절 선물에 대한 팁 몇 가지를 던졌다.
"병의원과 가까운 곳에서 선물 구입은 가급적 피해야 해요. 그렇게 되면 성의가 없어보일 수 있어요. '병원 오는 길에 그냥 하나 사서 왔구나'라는 인상을 주면 안되죠. 주고도 욕 먹을 수 있습니다. 아! 또 한가지. 환자 많은 월요일은 방문을 자제하세요."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메디컬 타운이었다. 한 눈에 봐도 병의원들이 빼곡했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병원 입구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는 정문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이유를 물으니 손가락으로 약국을 가르킨다. 그리고 조용히 웃으면서 말했다.
"저 약국도 거래처예요. 근데 선물은 안 주려고요. 그래서 눈치채지 않게 몰래 들어가야 합니다."
설령 본다해도 '누군 주고 누군 안주냐'고 하진 않겠지만 사람이라는 게 괜한 것에 빈정 상하는 법이라며 이런 일을 애초에 만들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내 돈 들여 선물까지 주는데 이렇게 눈치까지 봐야 하냐며 쓴웃음을 짓는다.
선물을 전달하고 나온 그는 한마디 내뱉었다.
"국내사는 발품 영업밖에 없어요. 친분이 곧 처방으로 연결되니까요. 혹자는 말하죠. 명절선물 하지 말라면 안하면 되지 않느냐고. 우리도 그러면 좋아요. 누가 자비 들여서 하고 싶겠어요."
이어 그는 "하지만 그건 현실을 모르는 소리죠. 나만 안하다가 불이익 받으면 누가 책임지겠어요. 명절을 앞둔 전국의 모든 영업사원들이 저 같은 마음 아닐까요"라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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