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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휘두른 칼에 중상 입은 의사 "진료하기 겁난다"

안창욱
발행날짜: 2013-02-14 06:55:21

현장대구 김 원장 피습 충격 "양순한 분이 피습 당하다니"

지난 7일 대구에서 정신건강의학과의원을 개원한 김모(54) 원장이 환자가 휘두른 칼에 찔려 중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하면서 의료계가 또 다시 충격에 휩싸였다.

메디칼타임즈는 13일 입원 치료중인 김 원장을 위로하기 위해 경북대병원을 방문한 의협 노환규 회장을 동행 취재했다.

이날 오후 3시 30분경 경북대병원 본관 10층 소회의실에 도착하자 대구시의사회 김종서 회장, 이재태 부회장(경북대병원 핵의학과 교수), 민복기 공보이사, 경북대병원 조병채 진료처장 등이 노 회장을 맞았다.

이들은 사건 당일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7일 오전 10시 20분경 김 원장의 진료실에 박모(52) 환자가 내원했다. 김 원장은 1991년부터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박 씨를 치료해 왔다.

그런데 박 씨는 상담을 받던 도중 갑자기 등산용 칼을 꺼내 김 원장의 복부를 두차례 찔렀다. 한 곳은 5cm, 또 한 곳은 3cm 좌상을 입었다.

간호사가 진료실 안에서 쿵, 쿵 소리가 나 황급히 들어가 보니 김 원장이 박 씨를 제압한 상태였다고 한다.

대구시의사회 민복기(사진 중앙) 공보이사가 김 원장 피습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
김 원장은 곧바로 119에 실려 경북대병원으로 옮겨졌고, 3시간 넘게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근막 손상이 심했다는 게 의료진의 설명이다.

노환규 회장은 "진료실은 의사가 치료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고, 가장 안전해야 하는데 이런 일이 벌어져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고, 매우 염려스럽다"고 밝혔다.

대구시의사회 김종서 회장은 "김 원장은 워낙 양순하고, 진료할 때 보면 참 자상하다"면서 "그런 분이 피습을 당했다는 연락을 받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대구시의사회 이재태 부회장은 "정신과는 특성상 밀폐된 공간에서 진료할 수밖에 없는데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오자마자 흉기를 꺼내들면 속수무책"이라고 환기시켰다.

이 부회장은 "그러다보니 동료 의사들도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진료하겠나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고 전했다.

화두는 자연스럽게 응급실 폭력 문제로 이어졌다.

경북대병원 조병채 진료처장은 "응급실 난동, 폭력 사건이 한 달에 몇 건씩 발생하는데 경찰에 신고해도 연행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고 아쉬워했다.

대구시의사회 김종서 회장은 "미국은 응급실에서 환자가 진료를 방해하면 경찰이 바로 체포하는데 우리나라 경찰은 현장에 왔다가 그냥 가버린다"면서 "의사들이 오죽 답답하면 경찰을 직무유기로 고발하겠다고 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원장을 피습한 박 씨는 현재 구치소에 수감중이다.

그러나 김 원장은 또다시 이런 사건이 벌어지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소위 외상후 스트레스증후군이다.

김 원장 "가해환자 출소후 또 흉기 휘두를까 걱정"

대구시의사회 민복기 공보이사에 따르면 박 씨는 몇년 전부터 정신질환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박 씨를 돌보던 모친이 치매에 걸렸고, 그의 남동생 역시 형을 돌볼 처지가 아니다보니 오랫동안 약을 복용하지 못해 끔찍한 사건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민 공보이사는 "가장 큰 걱정은 박씨가 출소한 후 적절한 정신과 치료를 받지 못해 또다시 병원에서 흉기를 휘두르지 않을까 하는 것"이라고 걱정했다.

여기에다 김 원장은 사건의 피해자지만 치료비 보상을 받을 길이 없고, 의원을 임시 휴업하면서 막대한 손해까지 감수해야 할 처지다.

노환규 회장과 대구시의사회 관계자들이 김 원장 병실을 방문했다.

김 원장은 "가해자가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병세가 악화되다보니 안타깝기도 하다"고 했다.

의협 노환규 회장이 김 원장이 입원중인 병실을 방문해 위로하고 있다.
김 원장은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솔직히 털어놨다.

그는 "퇴원하면 다시 진료를 해야 하는데 예전처럼 환자들을 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또 그는 "제일 두려운 게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뒤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나머지 이런 사건을 또 저지르지 않을까 하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진료실에 칸막이를 설치할 수는 없고, 전기충격기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피력했다.

의협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의료진 폭행의 심각성을 여론화하고, 대책 마련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노 회장은 "안전한 진료 공간을 만들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면서 "그 중 하나가 의료인 폭행 가중처벌법을 제정하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지난 17대 국회에서 전현희 의원은 의료인을 폭행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지만 시민단체의 반대로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와 함께 노 회장은 "진료실에 CCTV를 달 수 있도록 행정안전부에 요청할 예정"이라면서 "지금까지 환자 프라이버시를 이유로 CCTV 설치를 금지했지만 의사들도 최소한의 방어를 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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