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는 지난 17일 지역보건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의료계는 도시형 보건지소의 한의사 의무배치, 보건소장 임용 범위를 간호사 및 약사까지 확대하는 내용을 이유로 이 시행령 개정안에 대해 강력 반발하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전국의사총연합은 이 시행령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는 건강생활 지원센터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원격의료에 대한 우려와 지역 내 개원가와의 경쟁 우려 등이 그 이유다. 메디칼타임즈는 지난 23일 전의총 나경섭 공동대표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전의총이 지역보건법 시행령 개정안 중 건강생활 지원센터에 주목한 이유는.
복지부가 입법예고한 지역보건법 시행령 개정안은 표면적으로는 의사 외 나머지 의료인력을 합법적으로 보건소장에 임명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물론 이것도 문제는 있지만 보다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복지부는 개정안 시행령에 건강생활 지원센터를 은근슬쩍 끼워 넣었다. 건강생활 증진센터는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보건복지부와 서울시에서 주장했던 보건소 주도의 만성질환관리제나 도시형 보건지소를 말만 바꾼 것이고 이를 더 강화시키기 위한 현실적 조치인 셈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문제인가.
메르스 사태를 겪었으면 수많은 민간의료기관을 이용하고 현실적으로 더 도와 의료와 관련한 사태를 극복하려는데 관심을 갖는게 결과적으로 당연하다. 그러나 시행령 개정안은 거꾸로 보건소 기능을 더 강화시키려는 목적이 드러나 있다.
또한 주변의 민간 의원들과 경쟁관계에 놓이게 된다는 점도 문제다. 외국과 같이 지역 내 의료기관이 몇개 없거나, 영국같이 정부 주도의 사회주의적 의료시스템에서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만성질환관리제가 변형된 건강생활 증진센터가 지역 의사들과 환자를 놓고 경쟁하게 되는 식이 될 것이다. 특히 보건소는 지자체 소속이기 때문에 복지부의 통제를 받지 않고 지자체장의 개인적인 신념이나 의도에 의해 값싸고 공짜를 가장하는 쪽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숨어있는 더 큰 문제는 원격의료와의 결합이다. 현대적 대세가 인터넷 기반이라는 점에서 장비의 발달에 따라 원격과 관련한 의료시스템이 발전하는 것은 인정한다. 그런데 그것을 굳이 우리나라에서 전국민을 대상으로 시험운용을 해야 하는지, 그럴만한 필요성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국내 의료환경을 보면 지역 내 수많은, 그것도 대부분 전문의로 구성된 의료기관들이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원격의료에 대한 필요성이 있는지 모르겠다.
건강증진센터의 목적은 결국 원격과 결합하는 것이다. 당면해 내세우는 건 건강상의 이유, 비용 절감이겠지만 원격과 관련된 회사들의 로비 하에 환자들은 돈을 내고 원격과 관련한 또 하나의 핸드폰을 갖게 되는 셈이다. 예전 흑백 핸드폰보다 현재 스마트폰이 편리하긴 하지만 가격도 비싸고 요금도 많이 낸다. 이와 같은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고 지역 내 건강증진을 외면할 순 없다. 건강생활 지원센터가 문제라면 그 역할은 누가해야 하나.
지극히 개인적 생각인데, 지역 의사회가 중심이 돼 만성질환관리, 건강증진센터 모델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 것이다. 지역의사회를 중심으로 시설과 장비는 지역 의사들과 지자체 또는 정부 도움을 받아 센터를 만들고 그 센터를 통해 지역의사회의 유능한 전문의와 네트워크를 형성해 관리하고 합당한 운영비와 치료비를 받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모델일 것이다.
지역보건법 시행령 개정안은 약사와 간호사를 보건소장 임용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이미 상당수 의사 보건소장이 있지만 의사이기 때문에 보여줄 수 있는 보건소장으로서의 퍼포먼스는 제한돼 있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보건소장이 어느 정도의 권한을 갖고 있을까에 대해 먼저 생각하고 싶다. 현재 시스템에서 지역 사회 예방과 역학관계, 건강증진을 위한 교육 등에 대해 보건소장이 과연 얼마만큼의 얼만큼 역할과 전권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하다. 결국 몰라서 안 하는게 아니라 하지 못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일 가능성이 높다.
여건이 형성돼 있다고 가정했을 때 의사 출신이 보건소장을 한다면 능력의 차이는 분명히 발휘할 것이다. 역학이 전문은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공부를 했고 의사로서 그걸 체계적으로 짚고 나갈 수 있는 마인드를 갖고 있는 이가 권한을 갖게 될 때의 대처능력을 생각하면 비전문가 출신이 주변의 말과 보건소보다 높은 윗 단계의 지시를 듣고 판단할 때 체계적으로 밟아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메르스 같은 전염병이 돌게 되면 보건소는 탐정이나 수사관 비슷한 역할을 해야 한다. 역학조사는 백스텝을 하나씩 밟아가는 것이다. 그런 걸 하려면 어떤 상황에서 감염의 위험이 있고 전파는 어떻게 되고, 증상은 어떤지 등 의학적 판단이 분명히 필요하다. 역학자들은 암수술이나 정형외과 수술은 하지 않지만 기본적 의료지식을 공부했고 순차적인 프로세스를 밟아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런 능력 발휘하는 것이다.
의사 보건소장의 의미도 비슷한 개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사건 해결은 수사관들이 더 잘하지 옆집 아저씨를 불러 사건을 해결하려 하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지역보건법 시행령도 그렇고 의사들이 의료제도와 정책에서 배제돼 있는 것 같다. 원인과 대안은.
의사 개개인의 잘못보다는 시스템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긴 것이다. 1988년 전국민 의료보험과 2000년 의약분업 사태 등을 거치면서 의료인들의 전문성을 철저하게 깎아 내리는 것을 통해 의료의 비전문가들이 의료정책의 헤게모니를 쥐게 됐다.
우리나라는 자유경제체제지만 의료시스템은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주의적 성격을 갖고 있다. 사회주의 의료시스템 유지를 위한 헤게모니 장악을 목표로 의료 행위 당사자이자 공급자인 의사의 의사들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쪽으로 나머지 이들이 단결했기 때문에 의료정책과 제도에서 의사들이 배제되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해법은 온건적으로 갈지 급진적으로 갈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온건적인 방법을 위해선 의사들의 생각과 의견을 정책을 반영할 수 있도록 투트랙을 형성해야 한다. 하나는 학문과 행정에 관심이 있는 의사들이 행정권 내에 들어가서 국가 의료시스템이라는 문제를 가지고 일을 할 수 있도록 의사회가 발굴, 지원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지역의사회가 지역의 정치인들을 상대로 지속적인 강연이나 설명회 실시하는 방법과 의사들의 정당한 목소리를 수용할 정치인에 대한 조직적 후원 등을 꼽을 수 있다. 의사들이 정책을 좌우하는 게 아니라 의사들의 주장을 무시하지 못할 정도의 배후 지지자가 필요하다.
급진적 해법이라면.
눈다래끼가 생기면 처음엔 간지럽고 붓고 따갑지만 곪으면 터지게 된다.
개인으로 생각할 때 현재 의료계의 40~45% 정도는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갖춘 중년 이상의 의사들이고 나머지 50~55%는 경제력을 갖추고 싶어하는 젊은 의사들이다. 2000년 이후 지금까지 의사들의 대규모 스트라이크가 제대로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이미 경제력을 갖춘 의사의 비율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타협론과 적응론에 의해 대규모 스트라이크 일어나지 않았다고 본다.
그런데 나머지 55%를 차지하고 있는, 경제력을 갖추고 싶어하거나 의사 직업을 통해 사회생활을 실현하고자 하는 젊은 의사들이 국가나 다른 방법에 의해 자신의 욕구와 미래가 억눌린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어느 순간에 악화가 돼 한번은 터지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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