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 상품으로 여행을 하다보면 해당지역의 특산품을 판매하는 상점에 들르는 경우가 많다. 이 또한 배움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데린쿠유의 지하도시를 돌아본 일행이 안내된 곳은 하도산 할리 카펫센터(Hadosan hali carpet center)였다. 이곳은 터키에서 가장 큰 카펫판매센터인데, 터키의 민간에서 제작한 카펫을 수집하여 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카페트는 양모, 목화 혹은 비단으로 짜서 바닥에 깔거나 벽에 거는 용도로 사용하는 직물을 말한다. 특히 투르크나 몽골 등 유목민들의 일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지금도 터키, 이란, 아제르바이잔, 우즈베크스틴, 아프가니스탄, 모로코 등에서 좋은 카펫을 생산하고 있다.(1)
현존하는 카펫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1949년 러시아의 고고학자 루덴코(Rudenko)가 시베리아의 알타이산맥의 파지릭 계곡에 있는 스키타이 귀족의 무덤에서 발굴한 파지릭 카펫(Pazyryk Carpet)으로 러시아의 페테르브루그에 있는 에르미타쥬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283x200cm의 크기에 그리핀과 스키타이 양식의 추상적인 도형을 짜 넣은 이 카펫은 방사성동위원소 측정결과 기원전 5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영구동토 속에 얼어 있었기 때문에 조직이 남을 수 있었다.(2) 파지릭 카페트가 누구의 손에서 만들어졌는가 하는 논란이 있다고 하는데, 두 개의 매듭짓기로 만들어진 것을 보면 투르크계통의 장인의 솜씨가 아닐까 싶다.
지금은 카펫을 기계로 짜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옛날에 옷감을 짜는 방식처럼 세로실을 걸고 거기에 가로실을 매듭지어 모양을 만든다. 카펫 매듭을 짓는 방법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어서 터키에서는 매듭을 두 번 짓고, 이란에서는 한 번만 짓는다. 매듭짓는 것이 복잡한 터키카펫은 주로 여성들이 짜는데, 어릴 적부터 카펫짜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여 상업적 카펫제품은 손끝의 감각이 절정기에 있는 18세 부터35세 사이의 여성들이 주로 짠다고 한다.
작품에 따라서는 하나의 카펫을 완성하는데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하도산 할리 카펫센터에서는 터키산 카펫의 특징과 카펫제작과정은 물론 양모와 누에고치로부터 실을 잣는 모습까지 직접 실연해주었기 때문에 제작의 어려움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어서 완성된 카펫제품을 보여주는 방에서는 터키상인들의 집요함을 몸소 체험하는 기회였다. 26명의 일행 앞에 무려 17명의 직원이 등장하여 거의 1:1로 밀착하여 터키카펫의 장점을 설명하면서 구매를 권유하는 것이었다. 사실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우리네에게 카펫은 실용적이라기보다는 과시용(?)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 다양한 카펫제품을 감상하는 정도에서 그쳤지만, 이곳에서 카펫제품을 구매한 한국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떻든 이 분들의 적극적인 자세는 본받을 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불행(?)하게도 우리 일행 가운데 터키 카펫을 구매한 사람이 없어서 제품설명회는 꽤 긴 시간동안 진행되었던 것 같다.
겨우 풀려난 일행은 이 지역에서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일명 항아리 케밥이라고 하는 촙넵 케밥이다. 에브라노스(Evranos)라는 이름의 식당은 야트막한 언덕을 파낸 동굴에 들어서 있어서 뜨거운 햇볕에 달궈진 몸이 금방 식을 정도로 서늘했다. 카파도키아지역에서 경험할 수 있는 동굴체험인 셈이다.
촙넵 케밥은 특히 카파도키아의 명물인데 도자기로 유명한 아바노스 마을이 있기 때문이다. 촙넵 케밥은 황토로 구운 항아리에 구운 고기와 버섯, 감자, 가지, 호박 등 다양한 야채를 넣고 섭씨 80도로 3시간가량 구운 후 항아리를 깨뜨려 먹는다. 조리과정에서 항아리 전체에 열이 고르게 퍼지면서 식재료에 들어있는 물기가 우러나와 진한 육수가 만들어진다.
에브라노스식당의 촙넵 케밥은 같이 나온 스프나 샐러드도 좋았지만 정작 주요리는 기가 막혔다. 항아리 안에서 숙성되어 즙까지 넉넉한 케밥이 찰기 있는 밥에 곁들여져서 싹싹 비벼서 밥알 하나까지 먹어야했다. 다만 아쉬운 것은 항아리를 깨트려 먹는 것이 제대로의 식이라는데 이 날은 항아리의 주둥이를 막은 빵덩어리를 칼로 떼는 것으로 끝난 것이다. 다른 식당에서는 아직도 항아리를 손님이 망치로 직접 항아리를 깨서 먹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항아리를 깨다가 손을 다치기도 하고, 음식에 깨진 항아리 조각이 섞이기도 해서 방식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역시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맛있는 점심으로 배가 불러오니 여유가 생긴다.
다음 일정은 파샤바아(Paşabaĝa) 계곡이다. 이날 오후 일정이 빠듯한 탓에 계곡을 굽어보는 언덕에서 잠시 자유시간을 가진 것이 전부였다. 언덕에서 굽어보면 버섯모양의 바위들이 눈길을 끈다. 바위 위에 송이버섯처럼 생긴 바위가 하나, 둘 혹은 셋까지 올라앉아 있는 모습이 독특하다. 이런 바위의 모습을 보는 순간 젊어서까지 즐겨보던 만화영화 The Smurfs가 떠오른다.
가이드 말로는 스머프의 작가가 이곳을 보고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스머프를 탄생시킨 사람은 필명이 페요(Peyo)로 널리 알려진 벨기에 출신 만화작가 피에르 컬리포드(Pierre Culliford)이다. 벨기에의 만화잡지 스피루지에 연재되면서 인기를 끌면서 1963년부터는 단행본으로 출간되었고, 만화영화는 미국의 NBC를 통하여 1981년 9월 12일부터 1989년 12월 2일까지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원제목은 레 슈트룸프(Les Schtroumpfs)이지만 우리에게는 1983년 KBS에서 영어 이름인 스머프(The smurfs)라는 제목으로 방영하여 인기를 끌었다.
스머프의 모습은 북유럽의 신화에서 등장하는 요정, 트롤의 생김새를 변형시켜 만들었다고 하며, 슈트룸프라는 이름은 페요가 동료 만화가와 같이 식사를 하면서 ‘소금(sel)’이라는 단어가 잠시 생각나지 않아서 “슈트룸프 좀 건네줘(Passe-moi le… Schtroumpf!)”라고 했다는데, 이 때 동료가 “그래, 슈트룸프 다 치고 나면 그 슈트룸프 다시 제자리에 슈트룸프해줘”라고 대꾸한 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4)
만화에서 스머프들은 버섯모양으로 된 집에서 살고 있다. 페요가 이 작품을 그리기 전에 카파도키아의 파샤바아 계곡에 와보았다는 이야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파샤바아계곡이 이 탄생하는데 영감을 주었다고 하기보다는 카파도키아 지역이 여행상품으로 뜨면서 파샤바아 계곡에 스머프의 이미지를 가져온 것이 아닐까 싶다.
유재원 교수는 “이곳은 기기묘묘한 버섯 모양의 바위들이 있어서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에 있으면 마치 스머프의 마을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5)”라고 적었다. 만화영화 를 시청한 세대라서 일 것이다. 아내는 를 보지 못했다고 하니 어쩌면 파샤바아계곡의 신비한 느낌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이곳이 스머프가 사는 마을과 흡사하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버섯처럼 생긴 바위도 한 몫을 하지만, 버섯바위에 구멍을 뚫어 생활공간을 만들고 있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파샤바아는 '수도사의 골짜기‘라고도 부르는데 수도사 시므온이 머물렀기 때문이다. 계곡 깊은 곳에는 그를 기념해서 지은 시므온교회가 폐허가 되어 있다고 한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드나들면서 훼손된 결과라고 한다. 수도사들이 모여 명상과 기도를 하고, 요정이 사는 그런 곳이었던 파샤바아계곡은 더 이상 없는 셈이다. 아쉽다.
참고자료
(1) 나무위키. 카페트.
(2) Wikipedia. Persian Carpet.
(3) Wikipedia. The Smurfs (TV series).
(4) 나무 위키. 스머프.
(5) 유재원 지음. 터키, 1만년의 시간여행 282쪽, 책문,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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