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택트 렌즈 착용을 생활화하고 있는 기자는 안구건조증 때문에 일회용 점안제를 종종 쓴다. 말이 일회용이지 양쪽 눈에 번갈아 넣어도 약이 남아 있다. 그럴 때 고민한다, 한 번 더 써야 할까 그냥 버려야 할까.
'개봉 후에는 가급적 즉시 사용하고 최초 개봉 후 12시간 이내에 사용하라'는 안내 문구를 떠올리고 조금 더 사용한다. 그러다가도 뚜껑을 한 번 열었다는 찜찜함(?)에 남은 약은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때도 있다.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은 기자뿐이 아니다. 한 지인은 라식 수술 후 안구건조증이 생겨 안과에서 1회용 점안제를 수시로 처방받는다. 1회용이지만 생각날 때마다 양쪽 눈에 넣어주고 두세 번 정도 더 쓴다. 그는 혹시 모를 세균 번식 걱정에 12시간이 지나지 않았어도 그냥 버린다.
그런데 식약처는 이달 초 중앙약사심의위원회를 열고 일회용 점안제 허가사항을 바꾸기로 했다. 일회용 점안제라는 말에 충실해 재사용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문구 하나가 바뀐 것 뿐이지만 그동안 일회용 점안제를 애용해온 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되는 결정이다. 이미 환자들이 알아서 세균 번식 등을 염려해 통제를 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환자를 설득할 충분한 설득 근거가 보이지 않는다.
안구건조증 환자들은 보통 일회용 점안제 30개가 들어있는 박스를 한 박스 처방받는다. 처방전을 들고 약국을 갔을 때 환자가 내야 하는 비용은 약 6000원이다. 건강보험공단의 부담금은 1만4000원이다. 즉 약 값은 총 2만원이라는 소리다. 12시간 이내에 4~5번 나눠 쓸 수 있는 것을 한번만 쓰고 버리면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일회용 점안제 한박스 사용 기간이 단축되는 것은 자명하다. 사용 기간이 단축되는 만큼 의원을 찾는 횟수는 늘어날 것이고, 약 값 부담 역시 증가한다.
앞서 언급했던 기자 지인은 진료비에 일회용 점안제 약값 6000원, 안구건조치료제 값까지 더하면 한 번에 약 3만원 정도가 주머니에서 나간다고 한다. 하루에 일회용 점안제를 평균 2개씩 쓰고 주말에는 쓰지 않는데, 허가사항이 바뀌면 일회용 점안제 지출 금액이 두배로 늘어날 것이다.
전문가 집단인 안과 의사들도 근거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 안과 개원의는 식약처의 일방적 결정이 "황당한 코미디"라고 했다. 10년이 넘도록 유지해온 허가사항을 특별히 부작용 사례가 보고되거나 하지도 않았는데 근거 없이 바꿨다는 것이다.
또 다른 안과 개원의는 "요즘도 여러 번 넣을 수 있는 점안제를 달라는 환자들이 많은 상황에서 일회용 점안제 재사용을 불가하면 기존 일회용 점안제를 쓰던 환자 민원이 이어질 것"이라며 "이를 감당하는 것은 결국 또 의사들의 몫 아닌가.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일회용 점안제를 안 쓰는게 낫지 않겠나"라고 토로했다.
대한안과의사회는 "약 오염도를 줄이겠다는 기본 취지는 동감한다"면서도 "부작용 사례 조사, 세균배양검사 같은 전향적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전문가도 반대하고, 환자가 써야 할 시간과 비용도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일회용 점안제 재사용 불가 방침. 식약처는 누구를 위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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