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야고보성당 입구에 서 있는 평화의 성모상에 작별을 고하고 크로아티아의 코르출라(Korčula)로 향한다. 원래의 일정은 흐바르섬으로 들어가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배편이 맞지 않는 경우에는 일정이 크게 차질을 빚을 수 있어 배를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코르출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오늘 일정은 메주고리예에서 네움으로, 네움에서 코르출라에 갔다가 스톤을 구경하고 다시 네움으로 와서 일박을 할 예정이다. 다음날 네움을 떠나 두브로브니크에 갔다가 다시 네움을 거쳐서 스프리트로 향하게 된다. 이날과 다음날 사이에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를 복잡하게 오가야 한다. 그 이유는 아드리아해안을 따라 펼쳐지는 크로아티아영토의 중간에 보스니아 영토가 끼어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크로아티아 땅이지만 두브로브니크를 중심으로 하는 라구사공화국은 달마티아해안을 장악한 베네치아에 맞서 충돌이 잦았다. 라구사공화국은 묘안을 내어서 베네치아와의 국경지대 일부를 오스만제국에 팔았다고 가이드가 설명했다.
어떻든 1718년 파사로비츠 조약(Treaty of Požarevac)에 따라 달마티아의 대부분이 베네치아 공화국에 속하게 되었고, 라구사공화국과의 사이에 완충지대로 오스만제국의 영토를 끼워 넣었던 것인데, 이렇게 확정된 국경이 유고슬라비아연방의 성립과 해체과정을 겪으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1)
덕분에 보스니아는 21km에 달하는 해안선을 확보하여 내륙국 신세는 벗어났지만, 해안에 이르는 지역이 대부분 험한 산악지대이고, 바닷가에 네움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을 뿐이다.
결국 네움에 가려면 크로아티아를 경유해야 하는 형편이고, 크로아티아 역시 두브로브니크에 가려면 보스니아땅인 네움을 지나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날 스플리트에 가기까지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의 국경을 무려 7번이나 오가야 했다.
메주고리예에서 버스로 2시간 정도 걸리는 네움에서 점심을 먹을 예정이다. 네움에서 사라예보, 모스타르 등 보스니아 내륙으로 통하는 도로가 없어 보스니아에서 크로아티아로 그리고 다시 보스니아로 가야만 한다.
일행이 탄 관광버스가 관련국가에 등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버스에 탄 일행의 여권을 모아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 출입국관리소에 한 차례 신고하는 것으로 출입국수속이 마무리된다하니 편하기는 하다. 필자는 별다른 생각 없이 두 나라의 국경을 넘었지만, 두 나라의 슬픈 역사를 가슴 아파한 여행자도 있다.
"참 쉽다. 카메라 하나 들고 배낭 하나 메고 훌쩍 국경을 넘는다. 지도상의 그 가느다란 '선'을 넓히기 위해 누군가는 가족을 잃고 누군가는 눈물을 흘려야 했을 터. 진실을 밝히고 다시 세우는 일이 지금도 끝나지 않은 곳.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땅에서 가장 슬픈 국경을 너무도 쉽게 넘는다.(2)"라는 느낌을 남긴 백승선과 변해정이 그런 여행자이다.
보스니아에서 크로아티아로 넘어가는 국경에는 두 나라의 출입국관리사무소가 정겹게 마주하고 있다.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으려 했더니 국경에서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중무장되어 있는 국경을 가진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판문점에서도 사진은 비교적 자유롭게 찍을 수 있는데,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네움으로 가는 국경에 못 미쳐 창밖으로 귤밭이 널따랗게 펼쳐진다. 크로아티아 오렌지 생산의 중심지인 오프젠(Opuzen)이다. 모스타르에서 만났던 네레트바강이 아드리아해를 만나면서로 산 사이에 넓은 평야가 펼쳐진다.
오프젠이라는 이름은 라구사공화국과 대치하던 베네치아가 요새(Opus)를 만들었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2013년 기준으로 인구 3천여 명이 사는 이 지역에서는 주로 귤을 경작하는데 귤밭 사이에 넓은 수로를 두고 있어서 오동석은 '마치 밭이 물에 떠있는 듯하다'라고 느낌을 적었다.(3)
하지만 멀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버스로 지나면서 보기에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 싶다. 수로를 좁혀 밭을 넓게 만들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다. 이처럼 수로를 넓게 두면 우선 비가 오지 않아도 걱정할 필요가 없고, 수로에서 만들어지는 영양분을 나무가 바로 빨아들이기 때문에 비료를 줄 필요가 없다고 하니 놀라운 경작방법이 아닐 수 없다.
점심시간에 맞추어 네움에 도착했다. 오늘 우리가 묵을 곳이기도 하다. 욕심에는 두브로브니크에 숙소를 잡으면 시간도 절약되고 저녁시간에는 두브로브니크의 야경도 즐길 수 있을 터이나, 비용을 따지는 여행사 입장을 양해하여 달라는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다. 두부르브니크의 호텔비가 엄청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숙소 부근의 식당에서 케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아무래도 무슬림의 나라 보스니아다운 메뉴이다. 식사후 버스를 타기 전에 보니 오른쪽으로는 우리가 지나온 발칸반도 쪽이고, 왼쪽으로는 코르출라로 가는 뼬예샤츠(Pelješac) 반도가 뻗어있다. 크로아티아 땅인 반도는 길이 65km에 폭이 7km나 된다. 그러니까 네움은 반도와 내륙 사이에 들어와 있는 만의 안쪽에 위치한 셈이다.
멀리 타워크레인이 서있는 것이 보인다. 보스니아땅을 거쳐 두브로브티크로 가는 것이 불편한 크로아티아 정부가 오프젠 쪽에서 바다건너 반도쪽으로 다리를 건설하기 시작했지만, 돈이 없어서 5년째 진척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보면 보스니아 입장에서도 네움에서 모스타르를 지나 사라예보로 가는 길이 없어 크로아티아 땅을 지나야 하는 것도 불편할 듯하다.
쓸만한 항구가 없으니 크로아티아를 경유해서 수출입을 해야 하는 문제도 있을 것 같다. 네움을 항구도시로 개발하고, 바위산에 터널을 뚫어서라도 사라예보로 통하는 도로를 건설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문제는 자금을 마련할 방도가 여의치 않은 모양이다.
네움을 떠나 코르출라로 향하다 보니 다시 보스니아에서 크로아티아로 넘어가는 출입국사무소를 만났는데, 이곳에서는 기사가 뭐라뭐라 하는 것으로 통과다. 창밖으로는 돌산에 키 작은 나무들이 서 있는 모습이다. 상록수인지 아니면 단풍이 아직 내려오지 않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푸른빛이 여전히 싱그럽다.
반대편 창으로는 반도 사이로 골짜기처럼 휘어 들어온 바다가 보이고, 바다 위에는 부표가 떠있는 것을 보니 양식을 하는 모양이다. 알고 보니 굴양식장이라고 한다. 뼬예샤츠 반도는 맛좋은 굴과 와인이 유명하다. 한참을 가다보니 불에 탄 나무들이 앙상한 가지만 남긴 채 서 있다. 지난 해 산불이 크게 났다는 것이다. 일부 나무들은 잘라내어 등걸만 남았다. 불탄 산에 나무가 다시 우거지려면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할지 안타깝다.
네움에서 출발한 버스가 두어 시간쯤 달려 뼬예샤츠 반도 끝에 이르렀나보다. 코르출라섬으로 가는 배를 탈 수 있는 작은 항구 오레비츠(Orebić)에 도착했다. 가이드는 누군가와 통화하면서 배를 타는 곳을 묻는 것 같다. 하지만 점점 험악해지는 날씨 탓인지 배가 어디에 닿을 것인지가 분명치 않았던 모양이다.
일행을 끌고 우왕좌왕하다가 방파제를 넘어오는 파도를 맞는 등 우여곡절 끝에 배를 탔다. 가까운 산위로 시커먼 구름이 몰려들고, 바다는 거칠어지면서 파도가 높아지는 모습에 일행 중 다섯 명은 섬에 들어가지 않겠다면서 버스에 남았다. 넘실대는 파도를 타고 입항하는 배가 일엽편주처럼 못 미더웠던 모양이다.
수영도 못하는 주제이지만 그래도 우리를 안내할 선장이 사지로 몰아넣기야 하겠는가 하는 근거 없는 믿음에 따라 가벼운 마음으로 배에 탔다. 10여명의 일행으로 선실을 가득 채울 정도로 배는 작았다. 그래서 인지 방파제를 나서자마자 크지 않아 보이는 파도에도 휘청거렸다. 20분 정도 파도에 따라 흔들리는 배의 움직임에 몸을 맡기고 즐기다보니 벌써 코르출라섬이다.
참고자료
(1) 위키백과. 네움.
(2) 백승선과 변해정 지음. 행복이 번지는 크로아티아, 쉼 펴냄, 2009년
(3) 오동석 지음. 크로아티아 여행바이블 110-111, 서영,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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