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 5월 공개한 ‘중환자실 적정성 평가’ 결과에서 1등급을 받은 의료기관은 총 11곳.
이중 상급종합병원이 9곳(서울 7곳·경기 1곳·경상 1곳)을 차지했고 종합병원은 2곳(경상)에 불과했다.
서울·경기·경상도를 제외한 전라·충청·강원·제주지역 내 1등급 평가를 받은 중환자실은 전무한 셈이다.
환자 생존율과 사망률이 반비례하는 중환자 관리의 허점이 드러난 대목이다.
의료계는 중환자 관리에 ‘더블 스탠더드’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의료진이 집중되는 주간과 달리 상주인력이 적은 야간·주말에는 중환자 관리 수준이 떨어지고 그만큼 진료 공백도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중환자실 전문의 상주가 ‘필수’가 아닌 ‘인센티브’를 더 받기 위한 선택사항인 현실에서 의사·간호사 등 의료진이 중환자를 1:1 관리하는 시스템 도입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저수가로 중환자실 전담 전문의 확보조차 어려운 실정을 감안할 때 야간·주말에도 의료진이 24시간 상주하는 건 요원한 일이다.
필립스 New Business Development 부문 최기우 상무는 365일 24시간 지속적인 환자 모니터링과 함께 의료진의 신속한 임상결정을 지원하는 ‘eICU’(Electronic Intensive Care Unit)를 효율적인 중환자 관리 대안 중 하나로 제시했다.
eICU는 중환자실 환자감시장치(patient monitor)와 병원 EMR(Electronic Medical Record) 내 환자 데이터를 연동한 정보를 중환자실 의료진에게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중환자 관리 디지털 솔루션’이다.
최기우 상무는 “eICU는 병원 내 DHC(Digital Healthcare Center)팀에서 중환자 모니터링을 하는데 사용하는 ‘플랫폼’으로 DHC센터와 중환자실 병상을 연결하는 것이 기본 콘셉트”라고 설명했다.
중환자 전담 전문의(1명)·임상간호사(2~3명) 및 행정직원으로 꾸려지는 DHC팀은 eICU 연동으로 수집한 환자들의 생체 정보와 주기적인 소변·혈액 등 각종 검사로 획득한 EMR 데이터를 기반으로 중환자 상태를 통합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분석한다.
DHC팀에서 분석한 환자 생체 및 검사 정보는 중환자실 의료진에게 실시간 제공돼 365일 24시간 효율적인 중환자 치료관리가 이뤄진다.
eICU는 또한 중환자실 의료진들의 신속한 임상적 의사 결정과 적합한 치료방법 도출을 지원한다.
환자 생체정보와 EMR 데이터 기반 ‘빅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CDS(Clinical Decision Support) 알고리즘을 구축해 뇌졸중 가능성이나 패혈증 발생 여부 등 환자 상태 변화를 미리 예측해 중환자실 의료진에게 제공하는 것.
최기우 상무는 “CDS 기능에는 많은 알고리즘이 숨어있지만 결론적으로 그 핵심은 빅데이터에 있다”며 “미국에서 15년 동안 축적해온 빅데이터로 전체적인 데이터 변화와 추이를 분석해 환자 상태 예측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eICU는 중환자실 환자 모니터링을 실시할 때 각각의 환자 정보를 스코어로 표시해주고 의료진이 어떤 환자를 우선적으로 봐야할지 리스트를 제공한다”며 “모든 판단을 의료진이 해야 하는 중환자 관리에 있어 효율적인 의사 결정을 돕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eICU는 단일병원은 물론 병원과 병원 또는 여러 병원을 하나로 묶어 중환자실 각각의 통합적인 모니터링도 가능하다.
이는 모든 병원 중환자실에 수준 높은 의료진이 상주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적은 인력으로도 높은 수준의 중환자실 관리가 가능한 필립스 eICU 솔루션의 핵심 가치.
그는 “eICU는 숙련된 중환자 전담 전문의 수가 부족한 국내 실정을 감안할 때 중환자 관리 질적인 측면에서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의료현장 의료진들의 판단”이라고 전했다.
이어 “eICU는 기술적으로 어떤 병원하고든 묶을 수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현 의료체계에서 동일한 시스템을 적용한 계열병원 간 중환자실 통합 관리가 효율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응급실은 있지만 숙련된 의료진이 없거나 부족한 병원을 대상으로 선진화된 병원과의 eICU 구축은 수준 높은 중환자 관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은 정부가 나서 eICU 구축…국내 도입 걸림돌은?
eICU는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솔루션이 아니다. 미국 의료기관은 15년 전부터 중환자 관리에 활용하고 있다.
미국의 eICU 도입은 모든 병원에 숙달된 중환자실 전담 의료진이 상주하기가 쉽지 않은 여건에서 좀 더 효율적인 중환자 관리가 필요하다는 고민에서 비롯됐다.
특히 약 50개 DHC센터가 운영 중인 미국의 경우 관련 학회가 나서 국가 간 eICU 구축까지 현실화됐다.
최기우 상무는 “최근 미국과 호주 병원 내 DHC센터 간 eICU를 구축했다”며 “호주의 경우 면적이 넓어 중환자 관리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두 나라 모두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국가 간 시차가 존재하다보니 상호보완적인 중환자 관리서비스가 가능하다는 판단에서 eICU 구축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미국을 시작으로 영국·호주에 이어 최근 일본의 eICU 도입 결정은 중환자 관리 필요성과 중요성이 커졌다는 것을 방증하는 사례다.
그는 “일본 쇼와대학병원에 eICU를 구축할 예정”이라며 “이는 병원 자체 프로젝트가 아닌 일본 정부가 해외 기업에 최초로 프로젝트를 준 사례”라고 소개했다.
더불어 “일본 역시 미국처럼 중환자 관리 필요성에 대한 똑같은 고민을 했기 때문에 eICU 도입에 자금지원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여타 국가와 마찬가지로 한국 역시 전문인력 부족으로 중환자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eICU 도입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다만 새로운 솔루션 도입은 국내 의료제도와 병원 현실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선행될 때 제대로 정착될 수 있다.
우선 eICU 구축을 위해 요구되는 병원 간 EMR 연동이 가능하냐는 점이다.
이에 대해 최기우 상무는 “국내뿐 아니라 미국도 병원마다 EMR 시스템이 다르다. eICU 구축은 병원 각각의 EMR 데이터를 공통의 언어로 바꿔주는 ‘data normalization’(데이터 일반화) 작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병원마다 EMR 시스템이 다르고 단순히 한 병원만 연결하는 것이 아니어서 각각의 매뉴얼에 근거해 데이터를 일반화해 활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이어 “필립스는 eICU 상에서 각 병원 EMR에서 필요한 데이터만을 가져올 수 있도록 프로그램과 기술 및 맵핑을 제공하기 때문에 병원 간 EMR 시스템 통합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환자 생체정보와 EMR 데이터 관리주체가 병원이 아닌 병원 밖 별도서버를 통해 필립스가 수집·관리·통제하는지 여부 또한 확인이 필요한 부분.
그는 “eICU는 병원 간 연결된 서버 안에서만 이뤄지는 서비스로 클라우드 기반 오픈 플랫폼이 아니다”라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환자 데이터 관련 서버는 병원에 있을 뿐 필립스가 별도 서버를 관리하지 않는다”고 재차 언급했다.
새롭게 등장하는 신기술이 그렇듯 eICU가 병원 인력을 대체할 것이라는 오해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최기우 상무도 이 점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는 “의료계에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무엇을 대체한다는 이야기가 항상 있어왔다”며 “당장 eICU가 오해를 살 수 있는 부분이 의료진 인력 대체 및 비용절감 측면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eICU는 기존 중환자실 시설과 인력은 그대로 활용하되 효율적으로 중환자를 관리하고 의료진의 신속한 임상적 의사 결정을 지원하는 부가적인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덧붙여 “환자들이 큰 병원을 찾는 이유는 치료를 잘 받기 위한 것이고 의사들은 환자를 어떻게 잘 치료할지를 고민한다”며 “이런 점에서 eICU 솔루션은 모든 병원에 수준 높은 중환자 의료서비스를 365일 24시간 제공하는 의료지원팀 역할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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