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014년 4월 충청남도 소방본부에 배치받아 현재까지 근무하고 있는 공중보건의입니다.
소방본부라는 장소가 과연 어떤 곳일지, 그리고 어떤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일지 보통 사람들은 갸우뚱할겁니다. 저는 응급의학과 전문의지만 저도 이 부서에 배치받고서야 여기서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으니까요.
일단 위치는 충청남도청 내에 위치합니다. 관련 공무원, 부서와 긴밀하게 협조하고,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는 배치입니다. 대부분의 소방본부는 이렇게 중앙 부처 근방에 있습니다.
그 중 제 자리는 소방본부 내 한가운데 위치합니다. 자리에 앉으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것 같은 시설이 펼쳐져 있습니다. 흔히 '재난관리본부'나 '컨트롤타워'를 생각했을 때 떠올리는 풍경입니다.
눈앞으로는 사람 키 몇 배 높이의 대형 스크린이 걸려 있고?현재 교통 상황이나 뉴스, 재난상황이 실시간 중계됩니다. 그 스크린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약 30여 명이 자기 공간에 앉아서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는 업무용 컴퓨터, 전화 수신용 컴퓨터, 교통상황 모니터링과 전화 수신 컴퓨터 등 다섯 개의 화면이 떠 있습니다. 이 모니터를 적절히 이용하면 신고가 들어온 곳의 GPS와 현재 재난 상황을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제 옆에 앉아있는 분들은 전부 소방대원이나 응급상황 관리사입니다. 소방조직에서 로테이션을 해서 수보 대원(전화접수)으로 근무하시는 분들입니다. 흔히 119에 전화를 걸면, 현 위치를 자동으로 파악해 근처 소방서로 전화가 연결되어 소방관이 출동한다고 생각하기 쉽지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업무는 너무 복잡할 겁니다. 각 소방서마다 24시간 동안 누군가가 전화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전문 수보 대원이 소방본부에 모여서 모든 신고를 한 곳에서 접수받습니다.
저희는 충청남도 전역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는 식이지요. 수보 대원이 전화를 받으면 일단 장난전화나 출동하지 않아도 되는 전화를 거릅니다. 그리고, 출동해야 하는 상황에서 재난 규모나 위치를 파악하고, 근처 소방서의 출동 가능한 인력과 장비를 점검하며, 동선을 고려해서 다시 근방 소방서에 지령을 내립니다.
이 방식으로 효율적인 시설과 인력의 배치가 가능하며, 이로써 소방조직은 신속하게 사건과 사고에 대처하고 있습니다.
저도 여기서 전화를 받는 것이 주로 하는 일입니다. 환자를 일절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의사로서 상당히 특이한 부서입니다. (흔히 소방본부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하면, 불을 끄러 간다던지, 현장으로 출동한다고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충청남도 소방조직에 한 명 있는 의사가 현장으로 돌아다니면 업무가 마비될 겁니다.)
저는 여기서 현장의 소방대원에게 전화를 받아 의료지도를 합니다. 소방조직은 24시간 운영되므로, 의료지도 업무도 24시간 운영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공중보건의의 보통 근무 형태에 비추어 스케줄은 상당히 불규칙합니다.
그리고 근무 중에는 협약으로 충청남도, 충청북도, 대전, 세종의 의료지도를 전부 받습니다. 의료지도 내용은 현장에 있는 구급대원이 의료 자문을 구하는 형식입니다. 기본적으로 CPR 상황이나, 중증 질환에 해당하는 환자일 경우 의료 자문을 구해서 적확한 대처를 할 수 있게 하는 전화가 대표적입니다.
저혈당 환자나 아나필락시스가 의심되는 환자에게 포도당 수액을 놓거나 항 히스타민제를 놓을 때 의사의 허락이 필요하기 때문에, 저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현장 상황을 파악한 제가 상기 약물을 쓸 수 있도록 허가하는 전화가 있습니다.
또, 심폐소생술 유보 항목이 있습니다. 환자가 시반이나 강직이 보이거나 부패가 진행되는 등 사망의 징후가 명확할 때, 혹은 유가족이 심폐소생술을 거부했을 때, 저에게 현장 상황을 전달하고 심폐소생술을 유보한 채로 대원들이 병원에 이송할 수 있게 하는 전화입니다.
그 외에 정말 현장 상황이 파악되지 않아서 대처를 묻는 전화나, 환자의 경중을 전달하고 이송 병원의 규모를 묻는 경우도 있습니다. 드물게는 현장에서 주취자나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 혹은 병원에 안 가겠다고 하는 사람의 이송 거부를 컨펌하기도 하고, 의료 지식을 묻는 민원인의 전화를 받기도 합니다. 심정지에서 사람을 구한 대원에게 주는 표창인 '하트 세이버'에 대한 자문을 주는 역할을 합니다.
전화로만 업무가 진행되기 때문에 긴박감이 떨어지거나 의사로서의 행위와 멀어진 것 같다는 느낌은 있습니다. 하지만, 말로만 현장 상황을 전해 듣고 즉시 지시를 내려야 하기 때문에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입니다.
환자를 보지 않고, 전화로만 이루어지는 의사의 업무는 무엇인가, 특별한 느낌은 있습니다. 그게 이곳 공중보건의에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덧붙여서 소방본부 공중보건의는 2017년 4월부터 그 티오가 전국적으로 전부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니 제가 이 소방본부 공중보건의의 마지막 경험자가 될 것 이라는 아릿함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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