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CT·MRI 유지보수시장에 진입한 중소 유지보수사업자를 배제한 행위로 지난 17일 시정명령 및 62억원(잠정) 과징금을 부과 받은 ‘지멘스 헬시니어스’(이하 지멘스)가 이번엔 부당한 대리점 계약 해지 논란에 휘말렸다.
2012년부터 지멘스 DR(디지털 X-ray) 판매영업 대리점으로 유지보수서비스를 제공해온 ‘비앤비헬스케어’(대표이사 정갑섭)는 지멘스가 대리점 및 유지보수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해 막대한 금전적 손실을 입었다고 기자에게 제보했다.
제보에 따르면, 비앤비헬스케어는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지멘스 DR ‘Ysio-2D’를 50대 이상 판매했다.
해당 장비 가격이 3억원에서 3억5000만원임을 감안하면 어림잡아 150억원에 달하는 높은 영업실적을 올린 셈이다.
하지만 대리점인 비앤비헬스케어가 받은 영업수수료는 대당 200만~300만원에 불과했다.
더욱이 장비 10대의 경우 영업수수료도 없이 판매했다는 게 비앤비헬스케어 측 주장.
정갑섭 대표는 “150억원에 달하는 지멘스 DR 장비를 판매했는데 우리가 받은 영업수수료 총액은 약 1억4500만원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3억원이 넘는 장비를 판매하고도 영업수수료가 200~300만원에 불과한 대리점 판매계약을 체결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멘스와 체결한 유지보수서비스 계약을 통해 충분한 기대수익이 가능하다는 셈법이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영업수수료는 적지만 향후 유상 워런티 기간이 도래해 유지보수서비스를 제공하면 영업과정에서의 인적·물적 비용보전은 물론 장기적인 수익 창출 또한 가능할 것으로 판단한 것.
실제로 비앤비헬스케어 임원은 “영업수수료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대신 장비에 대한 유지보수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지멘스와 계약을 맺고 판매영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지멘스 측에서도 판매마진은 최소화하는 대신 유지보수를 통해 많은 수익을 올리면 된다는 식으로 판매영업을 적극 권유했다”고 전했다.
그는 “통상적으로 고가 진단영상장비를 판매하면 제품 가격의 10%를 대리점 영업수수료로 받는다”며 “우리 입장에서는 유지보수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면 비즈니스를 시작할 이유조차 없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양사 파트너십 관계는 지멘스의 일방적인 판매영업 및 유지보수계약 해지 통보로 막대한 피해를 대리점에 전가한 채 파행을 맞았다는 게 비앤비헬스케어 측 주장.
특히 지멘스가 납득하기 어려운 결격사유를 들어 판매영업·기술서비스 용역권을 회수해 그간 장비 영업과 유지보수서비스 제공에 소요된 비용보전은 물론 향후 유지보수서비스 수익 또한 기대할 수 없게 됐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대리점 계약 해지, 회계감사 거부가 사유?
지멘스는 왜 대리점 및 유지보수계약 해지를 결정했을까?
기자가 입수한 비앤비헬스케어와 지멘스 간 이메일·공문·내용증명 등을 종합해보면 발단은 ‘회계감사’에서 촉발된 것으로 파악된다.
지멘스 측 입장은 이렇다.
지멘스는 파트너사의 영업활동 시 법령 준수와 청렴 비즈니스 이행 여부 파악을 위해 2015년 12월 18일 비앤비헬스케어에 감사 협조를 요청했다.
이어 본사 감사팀이 2016년 1월 12일 비앤비헬스케어를 방문했으나 대리점 측 자료제출 거부로 감사를 진행하지 못했다.
감사를 받지 않을 경우 파트너십 유지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음을 통지했고 수차례 협조 요청에도 불구하고 비앤비헬스케어가 2016년 6월 13일까지 구체적인 회신을 하지 않았다는 게 지멘스 측 주장이다.
지멘스는 이후 비앤비헬스케어가 재감사 수용 일정을 알려왔으나 더 이상 파트너십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해 2016년 12월 9일 내용증명 우편을 통해 2012년 4월 26일 체결한 ‘Agency and Distributorship Agreement’ 계약 해지 의사를 대리점에 통보했다.
대리점 계약 해지 통보와 함께 유지보수하도급계약의 경우 이미 체결한 계약에 따라 서비스를 지속 이행할 수 있지만 상호 합의에 따라 조기 종료할 수 있다고 밝혀 유지보수계약 해지 가능성을 언급했다.
지멘스는 이후 2017년 8월 18일 내용증명을 통해 비앤비헬스케어에 대리점 및 유지보수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당시 내용증명을 살펴보면, 지멘스는 “독일 본사 감사팀의 파트너사 감사를 비앤비헬스케어 거부로 이행하지 못했고, 감사 미이행 시 대리점 계약 관계 유지가 어렵다는 점을 알리며 부분 감사를 제안하고 제시 가능한 정보 범위를 알려달라고 수차례 요청했으나 5개월 이상 명확한 회신을 하지 않은 채로 감사를 거부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멘스는 법령 준수를 최우선으로 하는 글로벌기업으로서 부패방지 등 관계 법령 위반 행위 방지를 위해 파트너사 감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는 비앤비헬스케어와 체결한 대리점 계약에도 명시돼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당한 이유 없이 관계 법령 및 정책 준수 여부 확인을 위한 감사를 계속해 거부하는 것은 대리점 계약상 관계 법령 준수 의무 위반을 합리적으로 의심할 수 있는 사정에 해당할 뿐 아니라 대리점 계약을 중대하게 위반하는 것으로서 계약 준수를 합리적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에 해당돼 대리점 계약에 따른 즉시해지 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비앤비헬스케어는 왜 지멘스 감사 요청을 거부했을까?
정갑섭 대표는 “비앤비헬스케어 총 매출에서 지멘스와의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10~15%에 불과하다. 더욱이 민간기업이 협력사를 회계감사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한 뒤 “약 20개 항목에 달하는 회계자료를 공개하라는 요구를 수용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멘스 거래와 관련된 회계자료만 공개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감사 절차가 종료됐다는 형식적인 이유를 들어 지멘스가 이를 묵살했다”고 덧붙였다.
법률대리인 역시 2017년 10월 18일 지멘스에 내용증명을 보내 회계자료 공개 요구가 부당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해당 변호사는 비앤비헬스케어가 회계자료를 지멘스에 모두 공개해야 할 법적인 의무나 합리적인 이유가 전혀 없으며 지멘스 역시 회계자료를 공개하라고 요구할 권리가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덧붙여 지멘스의 회계자료 공개 요구는 경우에 따라 거래상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해 대리점 경영활동을 간섭하는 것에 해당해 관련 법규에 따라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일방적 유지보수계약 해지…막대한 금전적 손실”
비앤비헬스케어는 지멘스로부터 대리점 해지에 이어 유지보수계약 종료 또한 통보받았다.
유지보수계약 해지는 비앤비헬스케어가 고객병원 장비 S/W 업데이트(modification)를 실시하지 않거나 허위로 보고하는 등 8건의 중대한 비위행위로 계약을 위반했다는 게 핵심 요지.
지멘스가 2017년 8월 18일 내용증명을 통해 주장한 바에 따르면, 비앤비헬스케어는 2014년 1월 14일 지멘스에 A병원 장비 S/W 업데이트 시행완료를 보고하고 그 비용까지 청구해 지급받았다.
하지만 지멘스는 2016년 12월 A병원으로부터 3년간 장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컴플레인을 받고 병원을 방문해 원인을 파악하던 중 여전히 구 버전 S/W가 설치된 것을 확인한 후 업데이트를 실시해 문제를 해결했다.
지멘스는 “당시 A병원은 장비 하자를 이유로 식약처 보고(회수 요청), 장비 철거, 손해배상 청구를 고려했다”며 “비앤비헬스케어의 업데이트 미실시로 인해 그간 지멘스가 쌓아온 고객 신뢰와 이미지가 크게 훼손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비앤비헬스케어에 업데이트 실시 여부와 구 버전 S/W 설치 경위 등 확인을 요청했지만 업데이트 실시 후 S/W 재설치 과정에서 구 버전이 설치된 것이라는 구두 설명을 했을 뿐 발생 원인과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문제점을 적시했다.
지멘스는 추후 자체 조사를 통해 추가적으로 4건의 업데이트 미시행 사례도 확인했다.
지멘스는 2017년 2월 2일 비앤비헬스케어와 미팅을 갖고 앞서 5건의 업데이트 미실시 및 허위보고 경위에 대한 확인과 담당 유지보수 장비에 대한 전수 조사를 요청했다.
더불어 대리점 계약 해지 및 종료를 전제로 2017년 1·2월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유지보수하도급 계약 건들에 대한 재계약 보류를 통지했다.
양사는 3월에도 사실관계 확인과 대응방안 마련을 위한 미팅을 가졌다.
비앤비헬스케어는 이 자리에서 앞서 문제가 된 5건을 제외한 나머지 장비의 경우 지멘스가 요청한 시점에 S/W 업데이트를 정상적으로 실시 완료해 보고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멘스는 비앤비헬스케어가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와 함께 업데이트 미실시 경위에 대한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은 물론 관련 자료도 제공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더욱이 해당 미팅에서는 기존 5건 외에 고객에 대한 허위 사실 고지 등 3건의 업데이트 관련 비위행위가 추가로 드러났다.
반면 비앤비헬스케어는 지멘스 측 주장이 사실과 전혀 다르다며 반박하고 나섰다.
정 대표는 “자체 조사 결과 S/W 업데이트를 누락한 사례는 총 264건 중 4건이었으며, 4건에 대해서는 실수를 인정했다”고 밝혔다.
또 “지멘스가 주장하는 S/W 업데이트 미실시는 고객병원 요청으로 시행하지 않았거나 시행은 했지만 기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재설치 과정에서 구 버전이 설치된 것 등 일부에 불과하다”고 해명했다.
한편, 비앤비헬스케어는 대리점·유지보수계약 해지로 막대한 금전적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정갑섭 대표는 “지멘스 대리점 판매영업을 하면서 벌어들인 수입은 약 9억3400만원인 반면 지출은 19억2000만원에 달해 약 9억8500만원의 손실을 입었다”고 밝혔다.
이어 “낮은 영업수수료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장비를 판매한 이유는 향후 유지보수서비스를 통해 손실을 벌충하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간 판매했던 장비들의 무상 보증기간이 끝나고 유상 워런티 계약이 도래하고 있는 시점에서 지멘스가 일방적으로 유지보수계약 해지를 결정한 건 부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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