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임상순환기학회가 오는 22일 창립학술대회를 연다. 신생 학회인데다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최근 가장 인기있는 비급여 술기 강의도 없고, 연수평점도 없다. 오로지 일차의료 현장에서 다뤄야 할 진료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런데 사전 등록자만 벌써 500명에 가깝다.
"사전등록자를 300명 정도 예상했는데 19일 아침까지 485명이 등록했어요. 그만큼 개원가 선생님들이 일차의료 질 강화에 관심이 높다는 증거죠."
대한임상순환기학회 김한수 초대 회장(분당21세기의원 원장)은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진료가 빼곡한 김한수 회장. 식사 시간조차 빠듯한 그가 없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 뜻이 맞는 의사들과 함께 대한임상순환기학회를 만든 이유가 바로 일차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다.
특히 심뇌혈관 질환의 예방적 관리가 중요해지고 있는 시점에서 국민건강을 위해 일차의료가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
김한수 회장은 "우리나라 사망 원인 1위는 심뇌혈관질환이다"라며 "최근 암 5년 생존율이 높아지면서 혈관 질환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김 회장은 "국내에 심장 관련 여러 훌륭한 학회가 있지만 대부분 하이테크놀러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심장혈관에 스탠트를 어떻게 잘 넣느냐, 항혈전제를 어떻게 쓰느냐, 스탠트가 몇개까지 보험이 되는지, 대동맥판막질환에서 TAVI 보험화 이슈 등이 주를 이룬다"고 설명했다.
질환이 진행됐을 때 치료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는 많지만, 초기 관리에 대해서는 갈 길이 멀다는 주장이다.
김 회장은 "진행된 병에 대한 치료를 연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그러나 초기에 미리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그 역할을 위해 일차의료가 강화돼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학회를 꾸리게 됐다"고 강조했다.
김한수 회장이 대한임상순환기학회를 구상하면서 가장 역점을 둔 부분은 질환의 통합적 관리다.
김 회장은 "당뇨병 환자만 해도 70~80%는 고혈압을 동반하고 있다. 그런데 당뇨병은 내분비내과에서 보고 고혈압과 고지혈증은 순환기내과나 심장내과에서 본다"며 "진료과는 분류가 돼 있는데 환자는 병을 같이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급자 위주로 세분화하다보니 여러 동반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질환별로 다른 병원을 다니는 환자도 있다"며 "환자 위주로 분류 방법을 개선해 일차의료에서 통합적으로 치료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소화기내과는 질환군이 다르지만 순환기, 내분비, 신경과들은 상호 관계가 깊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순환기 질환의 가장 큰 원인이 되는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당뇨병 등을 일차의료에서 통합적으로 예방과 적절한 초기 관리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오는 22일 열리는 대한임상순환기학회 창립학술대회도 같은 맥락에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김한수 회장에 따르면 이날 학회의 메인이라고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은 '부정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위해 대한임상순환기학회는 대한부정맥학회와 함께 세션을 기획했다.
김한수 회장은 "심방세동은 최근 국민 평균 연령 증가에 맞춰 늘고 있는 질환"이라며 "그런데 개원가에서 가장 치료가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부정맥이고 그 중에서도 심방세동"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래서 대한부정맥학회와 프로그램을 공동 주최하게 됐다"며 "학술대회에 대한부정맥학회 김영훈 회장을 비롯해 총무이사 등 임원진이 다 함께 참여해 개원가에서 부정맥을 초기 관리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날 세션을 살펴보면 ▲어떤 부정맥 환자를 상급기관으로 보낼까(고려의대 최종일 교수) ▲부정맥에서 심방세동의 중요성(서울의대 오세일 교수) ▲심방세동의 약물치료-새로운 항응고제를 중심으로(연세의대 정보영 교수) ▲개원가에서 처방할 수 있는 부정맥 약물치료(계명의대 한성욱 교수) 등 국내 부정맥 최고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다음 세션도 심장초음파와 경동맥과 관련해 초급부터 중급까지 단계별로 아우르는 강의를 준비했다.
통합적 관리를 위한 대한임상순환기학회의 의지는 오후 세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세션 제목을 살펴보면 ▲숨이 차요 ▲가슴이 아파요 등 외래에서 환자들이 호소하는 흔한 증상으로 돼 있다.
김한수 회장은 "환자들이 외래를 찾을 때 자신의 심장에 이상이 있는지, 호흡기에 문제가 있는지 모른 채 단순히 숨이 차다고만 이야기 한다"며 "이때 일차의료에서는 호흡기 질환인지 심장 문제인지 감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가슴 통증 역시 마찬가지다. 협심증 때문인지, 위식도질환 때문인지 판단하고 심근경색 환자의 경우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라며 "이런 문제를 개원가에서 관리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도저히 다른 학회에서 할 수 없는 프로그램"이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각 세션마다 강의 후 20~30분의 패널 토의시간을 별도로 마련했다.
그는 "이번 창립학술대회 프로그램에 대해 아주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라며 "특히 일반적 강의에 그치기보다는 개원가에서 필요한 것을 이야기하고 토의함으로써 더 많이 배울 수 있게 했기 때문인 듯"이라고 말했다.
대한임상순환기학회 창립학술대회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비급여 술기 등에 대한 강의가 없다는 것이다. 오로지 일차의료기관 진료의 질을 높이는 교육만 준비했다.
김한수 회장은 "개원가가 어렵다고 해서 비급여 술기에 관심이 높은데 충분히 이해한다"며 "그러나 일차의료의 질을 높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차의료가 활성화 돼야 한다고들 이야기 하는데 과연 일차의료의 품질은 어떤지 이야기하고 싶다"라며 "일차의료가 비급여에 매몰되면 환자들은 어떤 병이 생기든 전부 대학병원으로 갈 것이고 의료의 왜곡이 더 심해질 것이다. 일차의료의 질을 높여야 하는 이유이고 학회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김한수 회장은 일차의료의 질 제고를 위한 학술적 측면 외에도 일차의료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까지 닦을 계획이다.
김 회장은 "심전도 검사만 해도 판독료가 거의 없고 24시간 혈압 검사 등 혈압 관리도 거의 안 되고 있다"며 "기계값이 수가보다 훨씬 비싸다보니 하면 할 수록 손해나는 구조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문제들도 실제 데이터를 근거로 해서 제시하려 한다"며 "수가가 낮다고 주장만 하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얻은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일차의료기관에서 순환기 질환을 관리하고 치료하는 의사들의 권익을 위한 의료정책과 수가 개발에도 적극 나서겠다는 뜻이다.
그는 대한임상순환기학회를 통해 보다 좋은 일차의료 진료환경을 만드는데 매진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김한수 회장은 "대학병원에도 있어보고 개원도 해보니 뭐가 중요하고 필요한지 느끼게 됐다"며 "의료의 왜곡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여러 문제가 많은데 이 문제를 위해 나서는 곳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나는 정치적이고 싶지는 않다. 일차의료기관이 이런 문제와 상관없이 환자들에게 좋은 진료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싶은 것"이라며 "학회를 꾸리게 된 궁극적 이유가 바로 이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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