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치료재료) 생산부터 최종 사용에 이르기까지 전주기적 이력추적관리로 환자 안전관리를 실현하는 ‘의료기기 UDI’(Unique Device Identification·고유식별코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환자에게 사용하는 의료기기를 정확하게 식별하고 부작용 발생 시 즉각적인 회수조치는 물론 의료기기 유통구조 투명화를 위해 제품마다 국제 표준화된 UDI를 부착하고 제품·유통정보를 의료기기통합정보센터에 등록하는 시범사업을 오는 8월 시행한다.
시범사업을 거친 본 사업은 2019년 4등급을 시작으로 2022년 1등급 의료기기까지 단계적으로 확대 적용할 방침이다.
하지만 정부는 시범사업을 불과 3개월 앞둔 현재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의료기기업계 역시 정부의 2019년 의료기기 UDI 제도 시행이 계획대로 가능할지 의심어린 눈치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UDI 시행계획을 살펴보면, 일부 내용은 당초 UDI 도입목적과 부합하지 않을 뿐더러 이해당사자들이 자칫 자기만의 잣대로 오해할만한 소지 또한 적지 않다는 것이다.
기자는 2회에 걸쳐 의료기기 UDI 기본 개념과 국제 동향을 살펴보고, 특히 의약품 일련번호 제도 추진과정에서 불거진 문제점을 비교사례로 삼아 성공적인 UDI 도입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의료기기 UDI 도입 국제 동향
의료기기 UDI는 주사기 재사용으로 인한 집단 감염 및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서 해결방안 중 하나로 거론됐다.
이후 2013년부터 시행된 의료기기통합정보시스템을 보완한 국제표준 기반 의료기기 추적관리제도로 시행을 앞두고 있다.
정부와 업계는 의료기기 UDI가 미국 유럽 일본 등 전 세계적 의료기기 추적관리와 환자 안전관리 강화 추세에 동참한다는 점에서 그 필요성과 목적에 공감했다.
식약처가 밝힌 UDI 도입목적은 의료기기 전주기 관리를 통해 유통관리 투명성 확보와 실시간 추적관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지원하는 의료기기통합정보시스템은 제조사로부터 제품 정보와 함께 도·소매로부터 유통정보를 수집해 심평원에 공급내역을 제공하고 관련 실무기관, 의료기기 취급 당사자, 의료기관과 국민들에게 투명한 정보를 제공하게 된다.
정부는 이를 통해 시판 중 의료기기 문제 발생 시 신속한 경고·회수조치와 함께 유통과정뿐 아니라 실제 사용단계까지 이력 추적관리가 가능해 일회용 의료기기 재사용 문제 등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의료기기 UDI는 언제 어떻게 등장하게 됐을까.
의료기기는 전 세계에 유통되며 국가별 규정이 상이한 경우 여러 어려운 점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참조할 수 있는 지침서가 필요했다.
국제의료기기규제당국자포럼(International Medical Device Regulators Forum·IMDRF)은 국가 간 UDI 규정의 국제적 조화를 위해 2013년 12월 UDI 가이던스를 발표했다.
상당수 국가들은 해당 가이던스를 참조해 UDI를 시행하고 있거나 추후 도입을 앞두고 있다.
이 가운데 미국 FDA는 2013년 세계 최초로 UDI 규정을 제정하고 2014년 9월부터 위험성 등급에 따라 단계적 의무화를 시작했다.
EU 역시 2017년 4월 UDI 제도 도입을 결정하고 2021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또 터키 및 일부 중동국가들은 도입을 준비 중이며 일본 또한 권고사항이긴 하지만 UDI 관련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밖에 중국은 IMDRF 권고사항을 수렴한 UDI 제도시행을 위해 막바지 준비를 하고 있다.
의료기기 UDI 시행 핵심 요소와 도입 고려사항
UDI(Unique Device Identification·고유식별코드)는 말 그대로 의료기기를 고유하게 인식할 수 있는 체계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체계가 없던 시절 의료기기제조사들은 제품마다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여러 회사에서 비슷한 이름의 제품을 제조하기도 하고, 또 같은 회사 같은 제품도 모델에 따라 다른 제품이 될 수도 있었다.
심지어 표기 방법에 따라 같은 제품도 조금씩 다르게 보일 수 있어 의료기관에서 제품을 인식하는데 큰 혼란을 겪기고 했다.
따라서 제품마다 고유 코드를 부여해 사용하자는 것이 UDI의 기본 아이디어다.
그런데 이 코드를 부여하는 방법도 표준이 있어야 유일성을 보장할 수 있고, 또 세계적으로도 통용돼야 하기 때문에 민간국제표준기관인 ‘GS1’ 표준을 사용하도록 한 것이다.
UDI 세그먼트는 각각의 의료기기를 식별할 수 있도록 회사명·회사주소·제품 ID를 담고 있는 ‘DI’(Device Identifier)와 로트번호 혹은 배치번호, 일련번호, 유효기간, 제조일자 등 생산 정보를 포함한 ‘PI’(Product Identifier)로 나뉜다.
이처럼 의료기기 표준에 근거해 고유한 인식 번호를 부여하는 것이 UDI의 가장 큰 핵심이다.
더불어 부여된 표준 코드는 기계가 인식할 수 있는 자동인식기술 중 하나인 바코드로 표시하고, 사람 역시 같은 정보를 인식할 수 있도록 가독성 문자와 함께 여러 가지 제품 정보들을 라벨에 표시하는 방법을 표준으로 정했다.
또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자동인식기술은 의료기기 UDI 도입을 앞당겨 현실화했다.
1차원 바코드는 2차원 바코드인 데이터메트릭스로 발전했으며 최근 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 방식의 경우 빠르게 상용화되고 있다.
이와 함께 자동인식기술의 사용 방법 역시 UDI 관련 표준에 지속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자동인식기술과 여러 가독 정보들을 표시하는 라벨링 방법은 바로 UDI의 두 번째 핵심 요소다.
중요한 점은 표준 코드가 정작 의료기기 사용자에게 무의미한 정보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
즉, 고유한 코드를 통해 여러 가지 정보들을 조회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공유 데이터베이스를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제조사는 허가 받은 의료기기 정보를 시판 전 공유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해야 하고 도·소매, 환자, 의료기관, 정부기관 등 사용자들은 라벨에 표시된 고유 번호를 인식한 후 데이터베이스로부터 정보를 조회해 제품에 대해 필요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UDI의 세 번째 핵심 요소다.
주의할 점은 공유 데이터베이스에 저장·조회되는 정보는 생산 또는 유통할 때마다 변화되는 PI가 아닌 DI 정보를 통해 제품 자체에 대한 변하지 않는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다시 말해 유통이력 정보가 아닌 제품 기본 설명과 특성 같은 전자 카탈로그 성격의 정보가 담겨 있어야 한다.
미국에서는 이 공유 데이터베이스를 ‘GUDID’, EU에서는 ‘EUDAMED’라 부른다.
미국·EU의 UDI 규정은 제품 정보를 담고 있는 공유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하는 것까지를 요구하고 유통이력을 추적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요구사항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투명한 유통내역을 이력 추적하고자 하는 것이 UDI의 궁극적인 목표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GS1에서도 EPCIS(EPC Information Service)와 같은 이력추적에 대한 표준 인터페이스 방법을 제안하고 있는 만큼 머지않아 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경우 식약처 의료기기통합정보시스템 구성을 살펴보면, 미국의 GUDID에 해당하는 제품정보뿐 아니라 공급내역 같은 유통정보 역시 수집하고자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해외사례보다 진일보한 제도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UDI 도입을 처음 필요로 했던 위해 의료기기 긴급회수 명령사례와 일회용 주사기 재사용 사례에 대해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정 제조사에서 생산된 의료기기가 제조과정 문제 때문에 긴급회수 해야 할 일이 생겼다고 가정하자.
해당 제품 자체를 허가·취소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특정 제조번호, 즉 로트나 배치번호에 해당하는 제품만을 회수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유통 및 사용 각 단계에서 해당 제품 UDI의 DI·PI를 읽어 회수대상 제품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다시 말해 제조사 및 도·소매는 제품 출하 시 UDI 코드를 읽고 식약처 의료기기통합정보센터에 연동해 출하내역에 대한 보고뿐 아니라 긴급회수 대상 제품인지를 문의해야 한다.
이는 환자에게 사용되는 시점에서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정확한 사전 관리를 위해서는 실시간 통합정보시스템과의 연동이 필수적이다.
식약처로부터 특정 제조번호 제품에 대해 일괄적인 회수명령이 내려온다면 각 사업장에서는 정확한 제조번호별 재고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출고뿐 아니라 입고 시에도 이를 기록 관리해야하고 주기적인 재고 실사 또한 이뤄져야한다.
일회용 주사기 재사용 문제를 살펴보자.
정부는 의료기기 UDI 제도를 도입하면 일회용 주사기 재사용 문제를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주사기를 한번 사용할 때마다 UDI 코드를 읽어 해당 주사기가 사용됐다는 것을 통합정보시스템에서 기록 관리돼야한다.
이는 재사용하려고 할 때 이미 사용된 이력이 있으면 이를 중지하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해당 일회용 주사기에는 포장지가 아닌 주사기 본체에 Direct Marking으로 일련번호를 PI에 기록한 UDI 코드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재사용 문제는 주사기 개별 제품에 대한 관리이기 때문이다.
제품 개별로 일련번호를 부착해 이를 관리하는 것은 제조번호만으로 제품을 관리하는 것에 비해 매우 많은 관리비용이 필요하다.
저렴한 가격의 일회용 주사기에 과연 이런 관리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봐야한다.
또 Direct Marking으로 의료기기에 UDI를 각인하는 것은 더욱 힘든 요구사항 중 하나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재사용 의료기기에 한해 추가적인 유예기간을 두도록 요구하고 있는데 업계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되고 있다.
일회용 주사기가 아니더라도 만일 특정 제품이 어떤 유통 과정을 통해 전달됐는지를 확인하고자한다면 제조번호만으로는 이를 추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유는 똑같은 제조번호의 수많은 제품이 다양한 유통 경로를 거쳐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도 반드시 제품 일련번호가 있어야만 개별 제품의 유통이력을 확인할 수 있다.
IMDRF 가이던스를 보면, UDI를 기반으로 유통·사용 이력정보를 기록 관리하되 고위험군 의료기기의 경우 일련번호를 입력해 관리토록 권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위험군 제품 52종에 대해 추적관리대상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는데 UDI 역시 어떤 제품에 일련번호를 부여해 정확한 이력추적을 해야 할지 명확한 대상을 선정할 필요가 있다.
정부·업계, UDI 시행 가이드라인 공유해야
현재 미국으로 의료기기를 수출하거나 제조위탁을 수행하고 있는 국내 제조사들은 이미 UDI 코드와 라벨링 그리고 GUDID 등록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처음에는 내용을 잘 몰라 힘들었지만 대한상공회의소 유통물류진흥원 등의 도움을 받아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진행하고 있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이는 UDI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라벨링과 제품정보에 대한 공유 데이터베이스 등록만을 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조만간 국내에서 본격 시행될 의료기기 UDI는 업계의 더 많은 준비를 필요로 할 것이다.
만약 업계가 현재 UDI와 관련해 이해하고 있는 수준 이상의 복잡한 일들이 추가적으로 생긴다면 정부에 대한 반발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앞서 정부가 UDI 공급내역 보고를 위해 유통가격 정보 제공을 요구하자 업계가 크게 반발한 것처럼 말이다.
정부 역시 UDI 시행을 앞두고 만에 하나 준비 부족을 이유로 유예기간 또는 제도시행 연장을 요구하는 업계에 끌려갈 경우 환자 안전관리를 실현하는 당초 UDI 도입목적 달성은 요원할 것이다.
정부와 의료기기업계는 의료기기 UDI 시범사업을 3개월 앞둔 시점에서 제도시행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공유하고, 다양한 의견수렴을 통해 문제점과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때다.
업계 준비 부족과 정부의 불명확한 정책 혼선이 맞물려 의료기기 UDI 제도가 표류하다면 그 피해는 결국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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