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예방·관리·치료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치료목적 FDA 허가 증가세 한국 허가·심사 전무 걸음마 수준…'인허가·보험적용' 그레이존 해소 관건
의약품·의료기기의 병용 보완재 또는 대체재로 약물중독, 불면증·우울증, 조현병 등 질병을 예방·관리·치료하는 ‘디지털 치료제’(Digital Therapeutics).
‘디지털 알약’으로 불리며 1세대 합성신약·2세대 바이오의약품에 이은 ‘3세대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지만 그 개념과 정의는 아직 낯설고 생소하다.
디지털 치료제업계 비영리 이익단체로 2017년 2월 결성된 DTA(Digital Therapeutics Alliance)는 ‘질병을 예방·관리·치료하기 위해 환자에게 근거기반 치료적 개입(evidence-based therapeutic interventions)을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로 디지털 치료제를 정의했다.
이미 디지털 치료제는 질병 예방·관리를 넘어 적응증에 대한 임상적 유효성에 근거한 치료효과를 입증해 의사 처방을 통해 환자에게 사용되고 있다.
현재까지 총 3건의 PDT(Prescription Digital Therapeutics·처방 디지털 치료제)가 치료목적으로 FDA 허가를 받았다.
특히 디지털 치료제는 의약품·의료기기를 보완 또는 대체함으로써 치료제 개발이 어렵거나 미충족 의료 수요를 해결하고 데이터 기반 환자 맞춤의료를 제공해 디지털헬스를 실현하는 세부영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15일 서울 베스트웨스턴 프리미어 서울가든호텔에서 열린 한국에프디시(KFDC)법제학회 추계학술대회 ‘디지털헬스 혁신의료기기의 시장 진입을 위한 규제 개선’ 세미나에서는 디지털 치료제를 조명했다.
이승민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미래산업기획단 연구원은 이 자리에서 디지털 치료제 개념 정의와 최신 동향은 물론 국내 도입 방안과 활성화 선결과제에 대해 발표했다.
이 연구원에 따르면, 디지털 치료제는 의약품·의료기기와 병용하거나 독립적으로 사용하는 모바일 앱·VR·챗봇·인공지능(AI) 등 단독 소프트웨어(Software As a Medical Device·SaMD) 또는 하드웨어에 탑재된 소프트웨어(Software in a Medical Device·SiMD)로 임상근거를 기반으로 질병을 예방·관리·치료하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Software as a Medical Device·SaMD)로 분류된다.
또 지난해 맥킨지(McKinsey)는 디지털 치료제를 ‘대체 디지털 치료제’와 ‘보완 디지털 치료제’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대체 디지털 치료제는 질병에 대한 단독 사용으로 독립적인 치료효과를 가지거나 기존 치료제와 병용해 직접적으로 보완하는 효과가 있다.
반면 보완 디지털 치료제는 질병에 대한 독립적인 치료효과가 없어 단독 사용이 불가능하고 기존 치료제와 병용만 가능해 대체로 만성질환자 복약 순응도 개선을 위한 온라인 복약관리 플랫폼으로 활용된다.
이러한 디지털 치료제는 알츠하이머, 파킨슨, 다발성 경화증, ADHD(주의력결핍 및 과잉행동장애), 자폐증,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같은 중추신경계(Central Nervous System) 등 치료제 개발이 어려운 미충족 의료 수요를 개선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식습관·운동·수면 등 생활습관과 행동변화를 이끌어 당뇨·고혈압·호흡기질환 등 만성질환과 함께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ral Therapy·CBT)를 통한 약물중독·우울증·수면장애 등 신경정신과질환 상담치료 효과를 높이는 활용방안으로 평가받는다.
뿐만 아니라 모바일 기반 디지털 치료제를 통한 온라인 상담서비스는 시공간 제약 없이 실시간 데이터 기반 맞춤치료를 제공해 환자 편의성은 물론 의료서비스 확대와 치료비용 절감에도 효과적이다.
특히 디지털헬스와 헬스케어 접목이 활발해지고 디지털 치료제가 본격 등장하면서 국제의료기기규제당국자포럼(International Medical Device Regulators Forum·IMDRF)과 FDA는 새로운 규제 가이드라인과 인허가 체계를 신설하는 등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
IMDRF는 디지털 치료제를 SaMD의 한 종류로 편입·관리하기 위한 새로운 규제체계를 2013년부터 신설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FDA 주도로 워킹그룹을 구성하고 현재까지 SaMD에 대한 ▲정의 ▲위험도에 따른 등급체계 ▲품질관리체계 ▲임상평가기준 등 총 4개 규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FDA 또한 2017년 7월 ‘Digital Health Innovation Action Plan’을 통해 SaMD 등 소프트웨어 기반 의료기기 특성에 맞춘 간소화된 규제 틀을 제시했다.
그 일환으로 디지털 치료제 기술 혁신을 저해하지 않고 그 혜택이 환자에게 신속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Digital Health Software Pre-Cert 파일럿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이 프로그램은 제품(product)이 아닌 개발사(developer) 단위 인허가 체계로 객관적 평가기준에 따라 업체에 자격을 부여하는 한편 저위험 소프트웨어 허가 및 업데이트 등 의료기기 변경허가 절차를 생략했다.
이와 함께 PMA(Pre-Market Approval·시판 전 승인) 대상 3등급 의료기기는 개발→임상시험→데이터 수집→인허가→출시에서 ‘개발→출시→데이터 수집(Real World Evidence·RWE)→제출’로 허가절차를 간소화했다.
이 때문에 Pear Therapeutics社가 개발한 디지털 치료제 ‘reSET-O’는 마약성 진통제인 오피오이드 중독치료 목적의 혁신의료기기(Breakthrough device)로 지정돼 Software Pre-Cert 파일럿 프로그램을 통해 1년 만에 FDA 허가를 획득할 수 있었다.
디지털 치료제 활성화 ‘인허가·보험적용’ 관건
디지털 치료제는 2017년 9월 FDA가 Pear Therapeutic社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ral Therapy·CBT) 기반 약물중독 치료 의료용 모바일 앱 ‘reSET’을 최초로 허가하면서 본격 등장했다.
reSET는 오피오이드를 제외한 대마초·코카인·알코올 등 약물사용장애(Substance Use Disorder·SUD)에 대한 중독과 의존성 치료를 목적으로 개발됐다.
총 399명 환자 대상 무작위 임상시험 결과, 물질 중독성을 낮추는 치료효과와 함께 외래치료 시작 시 약물사용 환자(non-abstinent)의 reSET 병행 시 금욕비율이 16.1%로 대조군 3.2%에 비해 5배 이상 높게 나타나 유의미한 임상적 유효성을 입증했다.
reSET FDA 허가는 기존 웰니스 또는 질병관리 목적 의료용 앱과 달리 구체적인 적응증 치료를 위한 임상시험·논문 등 임상적 안전성과 유효성을 인정해 의사 처방으로 환자에게 사용 가능한 2등급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최초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017년 9월 reSET 이후 2018년 12월 reSET-O와 2019년 8월 Voluntis社 ‘Oleena’가 치료목적을 명시한 PDT(처방 디지털 치료제)로 FDA 허가를 받았다.
또 ▲알츠하이머 치매 ▲자폐증 ▲ADHD ▲조현병 ▲다발성 경화증 ▲불면증 등 다양한 적응증 치료를 위한 디지털 치료제가 개발과정에 있으며, 일부는 FDA 심사가 진행 중이다.
주목할 점은 질병 예방·관리 또는 치료목적의 디지털 치료제가 민간 및 공보험 적용을 받고 있다는 것.
Omada Health社가 개발한 당뇨병 예방·관리 모바일 앱은 식이·몸무게·활동량 등 라이프로그를 수집하고 이를 활용한 전문가 상담을 통해 맞춤 정보와 생활습관 개선 등 행동교정 가이드를 제공한다.
해당 디지털 치료제는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로부터 당뇨예방 프로그램(Diabetes Prevention Program·DPP)으로 공식 인증을 받아 당뇨 예방 수가를 적용받는다.
또 다른 디지털 치료제 Big Health社 ‘Sleepio’는 인지행동치료(CBT) 기반 수면장애 관리를 위한 개인 맞춤 온라인 대화형 상담과 가이드를 제공한다.
임상시험을 거쳐 효과를 검증받았지만 치료목적을 명시하지 않는, 즉 FDA 허가를 받지 않는 전략을 내세운 Sleepio는 현재 미국 사보험·영국 공보험(NHS) 적용 등을 통해 약 1200만명이 사용 중이다.
혁신의료기기(Breakthrough device) 지정과 Digital Health Software Pre-Cert 프로그램을 통한 인허가 절차 간소화는 물론 비보험 또는 급여화로 시장성을 확보한 업체들이 새로운 제품 파이프라인을 활발히 준비하는 외국 사례와 달리 국내 디지털 치료제시장은 걸음마 수준에 머물러 있다.
디지털 치료제를 표방하고 제품을 개발해 임상을 준비하고 있는 라이프시맨틱스·뉴냅스·웰트와 같은 업체들이 등장했지만 아직까지 디지털 치료제 또는 PDT로 식약처 허가를 받은 사례는 없는 실정.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디지털 치료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의약품·의료기기과 같이 근거기반 임상적 유효성과 비용경제성을 입증한 ‘제3의 치료제’로서의 명확한 개념 정립이 선행돼야한다.
특히 ‘인허가·보험적용’ 단계에서의 그레이존을 해소해 의료현장에서 의사가 디지털 치료제를 처방하고 환자가 일상생활에서 사용 가능한 제도적 정책적 지원이 요구된다.
이밖에 만성질환·신경질환 환자 대상 원격 모니터링과 온라인 상담·조언을 수반하는 디지털 치료제 개발과 상용화를 저해하는 ‘원격의료’ 논란을 해소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도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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