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최근 윔블던 테니스 중계를 보면서 놀랐는데, 로저 페더러가 8강에서 떨어져서가 아니라, 관중들이 전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다닥다닥 붙어서 경기를 보고 있어서였다! 불과 1달 전 프랑스 오픈에서는 관중들이 듬성듬성 앉아 있고,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참고로 둘다 야외경기이다.
심지어 영국은 최근 델타변이가 증가하고 있지만, 7월19일 정부 주도의 봉쇄를 해제하고 자발적인 방역 체제로 들어간다고 선언했다. 보리스 존슨 총리가 '지금이 아니면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며, '저 분이 저렇게 멋있는 분이었나' 생각했다.
영국은 백신접종률이 올라가면서 확진자 수가 감소하다가, 델타변이가 유행하면서 다시 코로나 확진자 수가 일일 3만명 이상 발생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델타변이종이 우세종으로 확진자의 거의 100%에서 델타변이종이 검출되고 있다. 확진자 수에 근거해서 해석하면 백신 접종이 효과가 없어 보이고, 봉쇄를 다시 강화해야 될 것 같다. 실제 이스라엘은 확진자 수가 늘어나자 봉쇄를 강화했다.
그러나 영국은 달랐다. 확진자 수보다 더 중요한 입원환자 수, 사망자 수에 집중한 것이다. 비록 델타변이 확산으로 확진자 수는 크게 늘었지만, 입원환자 수와 사망자 수는 크게 늘지 않았는데, 최근 입원환자수와 사망자 수는 유사한 확진자 수가 발생했던 지난 1월경에 비하면 1/50 수준이기 때문이다. 즉, 영국은 확진자 수보다 입원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더 중요한 지표로 여기고, 여기에 맞게 정책을 세워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봉쇄 해제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시위도 한몫 하고 있겠지만.
그럼 델타변이가 확산 중인 영국에서 확진자 수에 비해 입원환자 수와 사망자 수가 낮은 이유는 백신 접종 때문일까? 아니면 델타변이 자체의 특성일까? 영국의 높은 백신 접종율, 특히 노령 인구의 높은 접종율이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델타변이 자체가 바이러스의 독성이 약할 가능성도 매우 높다고 추정된다.
왜냐하면 델타변이가 시작된 인도에서 대규모 종교집회와 정치집회를 허용해(이것은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잘못이었다), 우리나라의 신천치 집단감염과는 비교할 수 없이 더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고, 결과적으로 의료시스템이 붕괴됐을 때에도 인도의 확진자 수 대비 사망률은 1% 정도였다. 최근 인도네시아에도 델타변이가 확산돼 의료시스템이 붕괴되고 있는데, 이 곳의 확진자 대비 사망률 또한 2%대이다.
어느 나라든 의료시스템이 붕괴돼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는 사망률이 증가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델타 변이 자체의 치사율이 높다고 추정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도, 인도네시아를 통해 배워야 할 점은 대규모 집단감염을 막아야 한다는 점, 의료시스템이 붕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지, 결코 델타변이 자체에 대한 공포가 아니다.
어떤 상황을 진단할 때 그 상황을 잘 반영할 수 있는 지표를 제대로 선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잘못된 지표를 선정하면 상황 판단을 잘못하게 되고, 혹 그 최종 결과에는 차이가 없더라도 엄청난 비용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런 지표 선정은 임상시험의 유효성 지표를 선정을 할 때도 중요한데 최근 코로나 치료제의 1차 유효성 지표로 RT-PCR 검사의 음전율을 보는 경우가 있었다.
렉키로나주 등 항체치료제들도 그랬고, 최근 피라맥스 2상도 마찬가지였는데 RT-PCR 검사는 민감도와 정확성으로 코로나 진단에는 도움이 되지만, 죽은 바이러스도 검출하는 지나친 민감도로 코로나로부터의 회복을 나타내는 지표로는 매우 부적절하다. 그런데 이 지표의 음전률을 1차 유효성 지표로 설정함으로써 모두 1차 유효성 검증에서 실패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그럼 코로나 바이러스가 각 사람의 건강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지표는 과연 확진자 수일까? 확진 자체가 중대한 임상적 의의를 지닐 때 확진자 수는 적절한 지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에볼라, 메르스 등과 같이 치사율이 높은 질환은 확진자 수가 그 질환이 미치는 영향을 즉각 나타낸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는 치사율이 매우 낮다. 아무도 언급을 안하고 있지만 실제 우리나라의 코로나 확진자 대비 위중증율은 올해 초부터 줄어들기 시작해서 현재까지도 유사하게 150명대 전후를 왔다 갔다 하는 수준이다. 정부는 이를 백신 접종의 효과로 설명했지만, 분명히 언급하건대 이는 백신 접종이 시작되기 전에 일어난 현상이다.
특히 감염에 취약한 동부구치소에서 집단감염으로 천명 이상의 확진자가 발생했지만 사망자는 0.5% 미만으로 매우 낮았다. 이와 같은 현상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감기바이러스 수준으로 약화돼 토착화된 현상으로 추정된다. 델타 변이가 늘어나고 있는 현 상황에서도 위중증 환자는 늘어나고 있지 않다. 물론 위중중환자가 늘지 않으니 사망자 또한 적다. 심지어 그 위중증 환자, 사망자들이 코로나 때문인지 기저질환 때문인지도 알 수 없고 말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확진자 수에 놀아날 것이 아니라, 좀 더 면밀한 분석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확진자의 연령분포, 무증상/경증/중등증/증증 등 말이다. 그저 확진자에 근거해 방역을 하면 코로나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전국의 음압병실은 남아 돌고, 무증상 확진자들을 수용하는 생활치료센터만 미어터지게 생겼다. 이렇게 치사율이 낮은 질환에 대해서 날마다 수만명(곧 수십만명이 될 듯)이 검사를 하고, 확진자 수를 발표하고, 접촉자를 격리하고, 생활패턴을 봉쇄하는데 국가 예산의 수십조(수백조?)를 쓰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정부는 초반에는 전문가 의견을 듣기 위해 코로나 중앙임상위원회를 만드는 듯했으나, 언제부터인가 중앙임상위원회의 의견은 정부 정책에서 사라졌다. 이는 정부가 전문가 위원회를 자기 입맛에 맞으면 활용하고, 그렇지 않으면 팽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정부는 이런 저급한 태도를 버리고 전문가 위원회의 의견을 적극 경청해 공포에 기초한 방역이 아니라 과학에 기초한 방역, 장기적인 안목의 방역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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