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를 담은 의료법 개정안이 8월 23일 국회 복지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했고 이제 국회 본회의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 국회 본회를 통과하면 OECD 국가 중 최초로 전국 수술실 CCTV 강제화가 시행되어진다.
수술실내 CCTV 설치는 환자들의 찬성과 의료진의 반대가 명확하게 갈리는 내용이다. 시민단체와 환자들은 폐쇄적인 수술실에서 벌어지는 범죄와 의료분쟁을 신속·공정하게 해결하고 예방하기 위해서 의료현장을 상세히 기록하는 디지털 장치가 필요하므로 수술실내 CCTV 설치는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상당히 그럴듯하고 논리적으로 느껴지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본다면 심각한 문제점들이 많다.
의료는 의료진이 환자를 처치하는 진료의 영역이지만, 의학이라는 학문이 구체화되는 과정으로, 의학과 의료는 동전의 양면처럼 떼어낼 수 없으며 하나로 이어져 있다. 의학이 의료라는 현실로 나타나는 과정은 의료 시스템이라는 사회적 장치가 관여해 구체화된다. 질병의 발생과 치료를 다루는 학문적 의학과 실제적 의료는 매우 자연스러운 것인데 비해, 이 둘을 중재하는 의료 시스템은 부자연스러운 인위적인 과정으로 정치권력의 절대적 영향력 하에 놓여있다,
수술실내 CCTV 설치와 촬영은 환자들이 가져야하는 당연권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발전하는 의학이라는 관점에서 일부 정치인, 시민단체의 주장처럼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의료진이 CCTV를 반대하는 수 많은 이유들이 있다.
수술실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들은 의사외에도 수 많은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이 근무하는데 이들의 사생활 침해, 인권유린은 물론이고 특히 부인과 수술등이나 처치등 환자의 알몸이 노출되는 영상이 인터넷에 떠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
또한 CCTV 화면의 정보가 수술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한 의료진의 모습만 확인되는 등 아주 제한적이어 실제 환자 알권리 차원의 정보를 얻지못하여 소송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기본적 약자인 환자들의 알 권리라는 명분하에 너무 궁색한 변명처럼 느껴진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수술의 적극성을 훼손하는 데 있다. 최선과 차선, 평균과 기본 사이에서 선택이 필연적인 수술 현장에서 통계적으로 의료진의 최선은 대부분 환자의 최선이 될 수 있으나 당장 눈에 보이지 않아 환자나 보호자의 판단이 불가능하고, 의료진이 최선과 차선, 평균과 기본, 그리고 최악 중 어느 것을 선택해도 환자는 알 수 없다.
역설적으로 의료진의 최선은 CCTV 강제화의 결과로 외과의사 본인에게는 추후 악(惡)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가장 높다. 악결과는 소송의 대상이며, 의료진 입장에서 오히려 평균이나 기본적인 진료가 당장의 악결과를 피하는 최선의 방법이 된다. 결국 의료현장에서의 선과 악의 경계가 불분명해진다.
수술실내 CCTV 설치로 인해 위험성을 감수하는 적극적인 수술이 사라질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것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나 의사의 양심을 자극한다고 해결되지 못하는 인간 본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수술실 CCTV 설치법이 통과되고 시행되어도, 당장 바뀌는 것은 없다. 환자들도 만족하고 변호사들도 만족하고 의료진들은 더욱 조심스럽게 대처할 것이며, 법 시행이전과 이후가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리고 5~10년이 지나, 장기간의 수술결과 즉, OECD통계는 말해 줄 것이다. 한국의 의료의 수준이 점점 떨어지고 있음을...
의료인과 법조인 등은 대표적인 전문가 집단이다. 전문가 집단은 자신의 서비스와 활동을 규제하는 데 있어 시장과 국가로부터 상당한 직업적 자율성을 확보한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의료인들이 국가 공인 면허를 통해 획득한 '규범적 권위'는 당연한 것이지만, 그 권위는 특정 상황에서 비전문가와 비교해 뛰어난 통찰력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지적 권위'를 포함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인터넷 공간에서 전문가는 늘 집중적인 폄하와 모욕의 대상이 되지만, 실제로는 각 분야의 전문가 집단이 사실상 사회를 경영하고 있는 현실이 그 권위를 유지하는 힘이 된다.
수술실 CCTV 설치는 직업적 자율성을 침해하고 통찰력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능력을 현저히 깎아먹을 것이고 전문가 자율권을 퇴보시킬 것이다. 권위의 추락은 전문가 집단의 명예를 떨어뜨리고, 퇴보하는 전문가 주의는 의료라는 생태계를 위축시켜 의학이라는 학문도 뒷걸음질 치게 할 것이다. 의학과 의료가 퇴보하는 상황에서 의료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전문가 집단에게 정책의 개입은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할 수 없지만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고 극단의 이념을 추구하는 정책은 전문가집단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고통과 좌절, 패배감에 빠져들게 한다. 수술실 CCTV 설치법은 의료인들을 좌절시키고 패배감에 빠져들게 한다. 아직 코로나 19가 유행중인 현재 의료인들이 소명의식을 발휘해 위기에 대처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하며, 정부의 보편타당한 인식이 요구된다.
이제 국회와 정부는 "세계최초로 모든 수술실에 외과의사 감시장치를 달고 수술환자는 물론이며 수술실에 근무하는 모든 근로자들을 감독하고 있다"는 오명을 벗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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