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대 설립, 의대 정원 확대 문제는 '정치적 사안'으로 변질됐다는 공통된 의견이 나왔다. 전달체계가 무너진 현재 시스템하에서 단순히 의사인력만 늘리는 것은 절대 기대하는 효과를 얻을 수 없을 것이라는 비판도 내놨다.
Q. 공공의대 설립, 의사인력 증원 문제가 다시 등장했다. 이 문제는 사실 상당히 오래된 화두인데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박종훈 병원장=정부 입장에서 공공의대 설립, 의대정원 확대가 필요하다면 아무리 반대를 하더라도 추진하게 돼 있다. 그럼에도 이 정책은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정확한 분석을 통해서 나온 게 아니라 주먹구구식이기 때문이다. 공공의대 설립은 진보진영에서 말하는 공공의료 확충과 맥을 같이 한다. 그 와중에 서남의대가 없어지면서 그 빈자리를 가지고 정치인이 개입한 것이다. 제도의 취지 자체가 엉성하고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에 100% 실패할 것이다.
최재호 학생=의료불균형 문제는 예방의학 교과서에도 나온다. 의사국시에 많이 나오는 단골 문제이기도 하다. 30년 동안 의료가 발전하고 불균형도 커졌겠지만 이동 수단이 함께 발전했다. 그때의 잣대로 현재 의사인력 불균형이 심하다고 얘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김시찬 전임의=사실 이 주제가 단순히 '의료'만의 문제인가 생각이 들었다. 군의료가 대표적인 공공의료인데, 군인 환자들이 민간병원에 갈 수 있는 절차가 활성화되니 일례로 허리가 아프면 비용이 무려인 군 병원에서 MRI를 찍고 치료는 민간 병원에서 받는다. 진료비는 군 의료 예산에서 나간다.
우리나라는 의료접근성이 부족한 나라가 아니다. 지역 불균형이 문제인데 이 문제는 다른 부분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의사 늘려서 지역에 수급한다고 해도 약국은 없다면, 산부인과는 있는데 소아청소년과는 없고 학교도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단순히 의사인력 확충의 문제로 접근할 것은 아니지 않나.
김채원 전공의=의사증원 문제는 도돌이표 같은 문제다. 우리나라는 내가 당장 아픈데 병원, 의사가 부족해서 치료를 못 받는 나라가 아니다. 절대 수가 부족한 게 아니라 국민 생명유지를 위해 꼭 필요하지만 차세대 인력 유입이 안되는, 소위 기피과 인력이 부족한 것이다.
정부는 전문의 자격을 따고도 활용을 못하고 있는 풍부한 인적 자원을 제대로 파악해 이들에게 기꺼이 제대로 된 보상을 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정부는 제시해야 한다. 정부는 의사면허번호를 갖고 있으니 그들의 재직 현황을 파악할 수 있지 않나. 간곡하게 바란다.
박종훈 병원장=의사 숫자가 지금 모자란다 더 뽑자라고 하는 것은 현재 의료가 나름 합리적인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전제를 놓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은 일단 합리적이지 않다.
OECD 평균과 비교했을 때 병상수가 2.5배 더 많고 재원기간도 더 길다. 우리나라는 의료 과잉이 심하고 소모적인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부터 제대로 돌려놔야 한다. 정부는 과감하게 의료전달체계를 제자리로 돌려놔야 한다. 상급종합병원 병상을 반토막으로 만들고 준종합병원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수가도 정상화해야 한다. 모든 시스템을 제대로 만들어 놓은 상황에서 의사 수를 따져봐야 한다.
Q. 그럼에도 정부가 공공의대 설립, 의사증원을 강행한다면 앞으로 의료환경이 어떻게 바뀔것이라고 보나.
김시찬 전임의=질도 질이지만 신뢰도도 떨어질 것이다. 군의관 경험을 계속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데, 군 병원에서 민간병원과 같은 진료를 믿지를 않는다. 그만큼 군 병원에 대한 신뢰가 없는 것이다. 신뢰가 떨어지면 의료의 질 저하로 이어질 것이다.
박종훈 병원장=현재 상황에서 의사 수를 늘린다고 해도 걱정하지 않는다. 정부는 착각하고 있다. 의사는 전문가다. 전문가 집단은 수요를 창출해 낸다. 전문가 집단은 자기가 얻을 수 있는 것을 만들어낼 것이다. 과잉진료가 남발되고 말도 안 되는 의료가 창출될 것이다. 그 피해는 결국 국민이 볼 것이다.
전문가 집단은 컨트롤할 수 없다. 그들의 양심과 이성적 판단을 기대해야 하는데, 양심과 이성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고 있다. 불합리하지 않다고 느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저수가 속에서 희생하고 있는데, 의사는 그런 직업이라고 설득하는 게 통할까.
대학병원들이 수도권 지역에 제2, 제3 병원을 경쟁적으로 만들고 있다. 병상 수는 늘어나고 있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의대의 졸업생 수는 턱없이 모자라다. 이렇게 되면 지방 병원에서는 의사를 보기도 힘들어질 것이다. 정부는 의료 인력을 늘릴 게 아니라 병상을 줄여야 한다.
Q. 10년후 혹은 20년후 먼 미래의 어느날 의료계 총파업이 있다면 다시 나설 생각인가. 만약 파업에 나서게 된다면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일까.
최재호 학생=의사라서, 의대생이라서 파업에 동참한다는 건 앞으로 어렵지 않을까. 소위 말하는 '밥그릇'에 문제가 생길 것 같다. 그러면 당연히 나설 것 같다. 이슈에 따라서 방향은 달라지겠지만 파업까지 할 만한 일이 없는 게 제일 좋을 것 같다.
박종훈 병원장=정부에게도, 국민에게도 '저 의사 집단은 브라이트하고, 많은 생각을 하는 집단'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지금까지, 특히 지난 대한의사협회 집행부는 국민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의 대화를 했다.
우리사 회가 의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곱지 않다. 이 곱지 않은 시선을 바꾸는 게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까지 하는 의사들의 태도가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행동이라는 논리에 대해 국민이 최소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김채원 전공의=지난해 파업에서 전공의들은 구호로 'Do no harm, do right(환자에게 해를 가하지 말고, 올바른 의료행위를 하자)'를 내걸었다. 환자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의료진 안전이 선행돼야 한다. 그런 의사들이 거리로 나간다면 설사 백발이 성성하더라도 기꺼이 동참할 것 같다.
의사는 평범하지 않은 훈련과 교육으로 단련된다. 36시간 연속근무를 하고 새벽 3시에 환자가 안 좋다고 하면 자다가도 바로 뛰어나간다. 표 장사를 하는 정치인보다 내 환자를 지키기 위해 밤잠과 밥을 희생한 존재는 의사이며, 국민이 이런 부분을 알아줬으면 한다. 그런 의사들이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거리에 나선다고 하면 응원해 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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