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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생들이여! 무한한 호기심 갖고 체험해 봅시다

한희철 이사장
발행날짜: 2022-01-27 05:30:00 업데이트: 2022-01-27 11:34:43

한희철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이사장

사랑하는 의대생 여러분, 코로나19로 어려운 중에도 2022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와 의정갈등으로 인해 의대생 여러분의 일상이 많이 흔들렸습니다. 특히 신입생의 캠퍼스 생활은 이전과 매우 다른 형태로 변하였습니다.

이제는 어떻든 간에 조금은 적응이 되었겠지만, 여전히 예전과는 많이 다른 형태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의학을 배움에 있어서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의대에서 배우는 내용은 바로 환자에게 적용되는 소중한 생명을 다루는 데 꼭 필요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의대생 여러분들은 혹독한(?) 의과대학의 교과과정을 소화해내야 합니다. 따라서 새해를 맞이하며 몇 가지 부탁을 드리고자 합니다.

힘들게만 느껴지는 의대공부, 어떻게 해야 할까? 의학지식의 폭증으로 인해 공부해야 할 양은 매일매일 늘어갑니다. 그러다 보니 조금만 공부가 느슨해지면 불안해집니다. 지난 30년간 생리학을 가르친 경험을 통해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의대생들에게 요구되는 '의학의 기본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의학공부를 나무라고 생각하면 단지 가지가 많아지고 있는 것이지요. 따라서 큰 숲을 먼저 살펴보고 내가 의학이라는 바다 가운데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있다면 흔들리지 않고 공부해 갈 수 있습니다. 너무 세세한 가지에 집착하지 말고 인체 전체를 먼저 분명하게 살펴본 후에 조금씩 안으로 들어간다면 변하지 않는 의학의 근본을 이해하게 될 것이며 자신이 생길 것입니다. 현대의학은 과학과 그 과학에 기초한 술기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기초의학을 다 배운 후에 이에 근거한 임상의학을 배우게 되는데 바로 이러한 의학의 과학적인 면을 보다 잘 이해하고 있으면 의학공부가 무척 재미있어질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생각 정리가 필요합니다

의과대학에서 공부 이외에 다른 생각을 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즉 자신에 대한 생각의 정리가 필요합니다. '나는 왜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는가? 무엇을 하려고 일어나는가?' 라는 질문을 한다면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요? 물론 공부해서 의사 되려고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나는 의사가 되어서 무엇을 하고 싶은 거지?' 라고 질문이 이어진다면 생각이 깊어지게 됩니다. 그럴 때 자신에 대한 사랑과 호기심을 일깨워보세요. '나는 누구인가?' 하며 말입니다. 즉 삶의 보람 혹은 존재의 이유에 대한 답을 구함으로써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보십시오. 그 해답을 찾는다면 당연히 몰입(沒入, flow)을 할 수 있고 어떤 시련이 와도 회복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가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삶의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이지요.

의대생에게 의사가 되는 것은 당연한 목표이지만 미래에 어떤 의사가 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물론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 중요한 이슈이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의사로서 삶의 의미나 보람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해 무엇이든 직접 경험해보기를 권합니다. 머리로 생각만 해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몸으로 체득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장애의 불편함은 생각만으로도 알 수는 있지만, 하루라도 종일 휠체어를 직접 타 본다면 그 불편함은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이처럼 직접 체험해 보려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말처럼 젊은 시절의 자기주도적인 경험은 인생을 바꿀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대생 여러분은 바로 젊음이라는 소중한 자산을 가지고 있기에 자신의 젊음에 소중한 경험을 더하여 진정한 자신을 발견한다면 여러분들의 미래는 더욱 밝고 행복해질 것입니다.

두 가지 직업 경로로 나눠지는 '의사의 역할'

의학은 과학(Science)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술기(art)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의사의 역할은 크게는 두 가지의 직업경로(Career Path)로 나누어집니다.

첫째는 의학이라는 학문을 발전시키는 일을 담당하는 Academic Medicine(학술의학) 직업경로가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기초의학을 하든 임상의학을 하든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의학의 학문적 탐구를 목표로 합니다. 우선 기초의학을 통해 의학적 사고의 방법과 연구에 대한 개념을 배우게 됩니다. 연구는 의학발전의 원동력인데 질병과의 싸움을 전쟁에 비유한다면 전쟁을 수행하는 것은 환자를 돌보는 임상에서 술기를 통하여 이루어지지만, 전쟁의 새로운 전략을 짜고 승리로 이끌 방법은 기초 및 임상 연구를 통한 의학발전을 통해 얻어지므로 질병에 관한 연구야말로 질병과의 전쟁에서 진정한 최전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현재의 의학은 아직도 완벽하지 않아 항상 새로운 관점에서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신경생리학 전공이어서 신경의 전기신호를 기록할 때 주변에서 들어오는 잡파(noise)를 제거하기 위해 촘촘한 구리철망을 사용하는데 하루는 기생충학 교수님께서 제 실험실을 방문하셨다가 구리철망을 보시면서 "(기생충 알을 채취하기 위해서) 그거 참 똥 거르기 좋겠다" 하실 때 관점의 차이가 얼마나 큰 것인지 느낀 바 있습니다.

관점의 차이는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항상 새로운 관점에서 의학적 현상을 바라보며 인체의 생명현상의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때 생명현상의 신비는 풀릴 것이며 현재까지 난치병으로 알려진 질병들의 새로운 치료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로렌조 오일(Lorenzo’s Oil)을 탄생시킨 것은 의사가 아니라 질병에 대한 치료법을 간절하게 찾던 일반인인 환자의 부모였듯이 바로 그러한 간절함이 연구에 새로운 관점을 열어준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일들이 학술의학 직업경로를 걷는 의사들의 존재 이유이며 주로 대학과 대학병원에서 이루어집니다.

의학연구에는 국경이 없으며 기초, 임상의 구분도 없으며 의학연구에서 얻어진 새로운 발견은 전 인류를 대상으로 사용됩니다. 질병과의 진정한 최전선에서 의학을 이끌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타이트한 의대생 시절이지만 연구경험을 위한 도전을 한번 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최근 의대생들의 연구경험을 위해 정부에서도 지원하기 시작하였으니 마음만 먹으면 연구경험을 쉽게 해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의대생들의 연구경험을 장려하는 것은 의대생이야 말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연구경험을 통해 장래 학술의학 직업경로를 택할 경우 미래의학 발전의 주역이 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의학의 술기(art)에 해당하는 진료를 위주로 하는 Practical Medicine(임상 혹은 진료) 직업경로가 있으며 이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의사의 업무를 수행하며 주로 개원가, 병.의원, 중소병원 등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주된 업무는 의학적 지식을 이용한 진료를 통하여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것입니다. 즉 의학의 실천적인 면을 주로 수행하며 국민의 건강을 수호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한 교육과정은 현재 안정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가 지금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으며 이 직업경로가 대부분 의사가 선택하는 길임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한편 위의 두 가지 주요 직업경로 이외에 사회의 여러 가지 분야를 향한 선택도 가능합니다. 미래를 선도할 바이오 산업계에 진출해 질병의 치료를 위한 신약 개발을 목표로 연구소나 제약회사 등에서 근무하면서 약품 개발의 방향성 설정이나 신약의 임상시험 등을 주도할 수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주목받은 백신 개발 분야 등 바이오 산업계에서는 의사들의 적극적 참여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데 이 분야에도 의사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사회와 의료와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언론계, 법조계 등으로 진출하는 길도 있습니다. 현재 의학전문기자로 활동하시는 선도적인 선배들과 법의학을 전공하신 선배들의 사회적 활약상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직업경로는 의료를 좀 더 큰 차원에서 바라보고 사회와 소통하며 의료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의료의 정책실현을 위한 길을 선택할 수도 있는데 이는 국민건강수호의 책임을 지고 있는 정부 부처에서 실질적인 의료정책을 세우고 추진해가는 일을 담당하게 됩니다. 또한 최근 논란이 되었던 공공의료나 지역사회 의료를 실현하기 위해 의료의 사회적 최전선에서 근무하는 것도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현재보다는 좋은 근무환경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정부도 많은 노력을 할 것이므로 향후 보람있는 직업경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에서는 의학의 제3의 축이라 불리는 의료시스템과학(Health Systems Science)을 교과과정에 추가하여 의사 양성과정에서 사회적 책무성을 강화하고자 하는 노력을 시작하였는데 이는 고전적으로 기초와 임상을 통한 질병에 관한 공부 이외에 사회와 더불어 의료를 선도하는데 필요한 사항들을 경험하고 생각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의료의 사회적 요소를 잘 인식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장차 이런 과정을 통해 의사 스스로 먼저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바람직한 방향성을 제시할 때 사회로부터 존경받은 의사가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미처 언급하지 못한 길도 있겠지만 주된 직업경로를 위주로 말씀드렸습니다.

새로운 눈으로, 새로운 경험 해보려는 나만의 노력 시작하자

사랑하는 의대생 여러분, 이제 어떠한 경험을 하든 선택은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경험을 하는 중에는 무한한 호기심을 가지고 새로운 눈으로 체험을 하십시오. 전 세계 아날로그 필름을 한순간에 없애버린 파괴적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의 대표 격인 디지털카메라의 발명자인 스티븐 새슨은 코닥 필름회사를 방문한 어린아이들에게 필름의 개념을 설명하기 어려워 필름을 밥그릇에 비유하다가 "사진을 꼭 필름에만 담아야 하나?"하는 의문이 생겨 고민하다가 반도체라는 새로운 그릇인 디지털 필름을 발명하였습니다.

항상 땅으로 떨어지는 사과를 무심하게 바라보았던 많은 사람과 달리 뉴턴은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중력 현상을 발견합니다. 이처럼 창의성은 새로운 관점을 통해 발휘될 수 있습니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새로운 눈도 새로운 체험도 모두가 내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체험한 후에는 하기 전과는 매우 다른 느낌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새로운 눈을 가지고 새로운 경험을 해보려는 나만의 노력을 시작해 봅시다.

"인생에 있어 가장 위대한 것은 경험이다. 심지어 실수조차도 가치가 있다"라는 포드자동차 창업자인 헨리 포드(Henry Ford)의 말처럼 의대생이라는 젊음에 배우고자 하는 용기를 내어 새로운 경험을 더하여 자신의 속에 숨어있던 진정한 나를 일깨워보기를 바랍니다.

다양한 경험을 추구하는 '메디컬 매버릭스(Medical Mavericks)' 의대생 모임처럼 용감한 의대생 여러분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습니다. 부디 많은 용기를 내어 젊은 학창 시절에 다양한 체험을 통해 의사로서의 존재 이유와 삶의 보람을 찾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이러한 여러분들의 용기가 모여 꽃을 피울 때 우리나라 의료가 우뚝 서고 또한 우리나라 의학이 세계 의학계를 선도할 날이 올 것임을 굳게 믿습니다. 자! 이제 모두 함께 용기를 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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