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의 대유행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보건 방역 및 의료 전반에 걸쳐 큰 사회적 혼란을 야기시켰다. 세계보건기구는 재난을 '한 지역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한계를 압도할 만큼의 심각한 생태/사회적 붕괴'로 정의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단위 병원이 가진 자원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를 병원 재난으로 정의할 수 있겠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의료현장을 덮친 지난 몇년을 필자는 감히 '재난'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병원 내 의료진을 포함한 모든 의료자원이 코로나 확진자 및 의사환자를 위해 투입되었지만 아랫돌 빼어 윗돌 괴는 수준의 주먹구구식 대응으로 의료자원은 점점 더 고갈되어 가고 있다. 음압격리실이 없어 입원이 제한되고, 응급실 진료조차 보지 못하고 병원을 전전하는 환자들의 이야기는 이제 흔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2022년 1월, 대한전공의협의회에서는 코로나 진료와 관련한 전공의 실태조사를 시행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수련병원에서 사전고지 및 참여의사 확인 없이 코로나 관련 진료에 전공의를 투입했는데, 전공의 외의 입원전담전문의 등 새로운 의사 인력을 보충했다는 답변은 소수에 불과했다. 전공의들은 이로 인해 본인의 전문과목 수련이 양적, 질적으로 저해되었다고 답했다.
본인의 수련과목과 전혀 관련이 없는 업무를 진행하거나, 전문과목 이수에 필수적인 수련을 받지 못하고 코로나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예를 들어,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어떤 병원에서는 외과계 수련중인 전공의가 본인의 전공과목과 관련없는 코로나 확진자 진료 업무를 맡고 있고, 응급실을 운영하지 않아 응급의학과 수련중인 전공의가 필수 수련을 진행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어떤 대학병원의 내과에서는 코로나 확진자의 증가로 코로나 외의 감염 환자를 받지 않고있어 내과 수련에 필수적인 감염 케이스들을 경험하지 못하고 수련 과정이 끝나기도 한다.
전공의는 근로자 및 피교육자의 이중적 지위를 지니고 있다. 근로자로서 병원의 일원으로 근무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향후 전문의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수련을 받아야 하는 피교육자라는 뜻이다.
전공의를 선발하는 수련병원에서는 체계적인 수련 교과과정을 수립하고 전공의가 충분한 역량의 전문의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코로나 대유행이라는 전대미문의 국가적 재난 속에 비교적 업무 변경이 수월한 전공의들을 의료 현장의 빈자리마다 채워 넣는 식의 운영으로 많은 병원에서 전공의 수련교육 파행이 일어나고 있다.
전공의들은 수련을 받아야 하는 피교육자이니 코로나 관련 진료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면허를 부여받은 의사로서, 감염병 유행 상황에 그 책임을 다하는 것이 마땅하다. 다만, 현재 각 과목의 전문의 육성을 위한 필수적인 수련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결국 수년 후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의료인력 확보에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임을 강조하고 싶다.
전공의특별법 시행 이후 전공의의 근로환경은 이전에 비하여 크게 개선되었으나 아직까지도 많은 병원에서 연차별 수련교육 과정이 확립되어 있지 않거나 지도전문의의 지정 및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등 전공의 수련에 대한 체계가 제대로 잡혀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렇게 체계적인 교육 과정이 없다는 것이 결국 코로나 사태 등을 맞이하면서 상황에 따라 필요한 업무에 전공의가 투입되며 수련 교육 파행을 불러오게 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되었다. 전공의 수련을 담당하는 수련병원들은 전공의를 선발할 수 있는 권한이 사회 초년생의 젊은 의사들을 적은 임금으로 노동시킬 수 있다는 권리가 아닌 전문의 양성을 위해 수련교육을 담당해야 하는 의무를 부여받은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코로나 대유행이 여러번의 굴곡을 거치며 3년차에 접어든 지금, 다양한 전문가들의 예측을 비웃기라도 하듯 상황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고 있다. 앞으로 새로운 감염병의 출현으로 제 2의, 제 3의 코로나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보건당국에서는 충분한 수의 감염병 전담 전문의를 확보하고, 감염병 유행의 반복에 대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각 수련병원에서는 전공의 수련교육 과정을 정상화하여 장기적인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기반을 다져야 할 것이다.
지금 이시간에도 본인의 자리를 지키며 환자를 위해 희생하고 있는 모든 의료진들에게 응원과 격려를 전하며, 하루 빨리 감염병 사태가 진화되고 의료 현장이 정상화 되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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