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27일. 장정결제 부작용으로 장에 천공이 생긴 80대 환자가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사망에 이르렀다.
바로 전날, 이 환자는 대장내시경으로 대장암을 확인하기 위해 장정결제 투여를 받았다. 유족 측은 장정결제 처방을 내린 대학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정 모 씨와 전공의 강 모 씨를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졸지에 형사소송에서 피의자가 된 두 명의 의사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됐다. 1심 법원은 두 사람에게 금고 10개월을 선고했다. 다만, 전공의 강 씨에 대해서는 2년간 형 집행을 유예했다. 반면, 정 교수는 법정구속까지 했다.
당시 의료계는 '선한의도'의 의료 행위에 대한 불의의 결과임에도 법정구속까지 당해야 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며 공분했다. 대한의사협회장이 직접 법원을 항의 방문하는가 하면 구치소 철야농성을 하기도 했다. 정 교수 소속 의대 교수진은 법원 판단에 유감을 표시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연일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2심을 진행한 서울중앙지방법원 제9형사부는 원심을 파기하고 정 교수에 대해서는 금고 1년에 집행유예 3년, 강 전공의는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정 교수에 대한 금고형이 1심보다 오히려 더 길어진 것.
2심 법원은 장정결제 투여를 결정한 그 자체에는 과실이 없지만 장정결제 투여 과정에서 과실이 있었고, 설명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고 있다.
환자가 장폐색 증상을 보이고 있음에도 장정결제 처방을 하면서 환자 상태 또는 소량의 장정결제를 점진적으로 투여하면서 이에 따른 신체 변화인 설사의 유무나 횟수, 배변량, 복부 팽창 유무 등을 수시로 점검해 보고 하도록 하지 않았다. 부작용 발생 가능성 대비 장정결제 투여 중단 등에 대한 주의사항도 처방에 기재하지 않았다. 환자의 상태나 주의사항을 당직의사나 간호사 등에게 전달하지도 않았다.
대법원의 시선, 전공의 판단과 지도교수의 책임
대법원은 최근 원심(2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지도교수와 전공의의 관계에 더 집중한 판단을 내렸다. 두 사람 사이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이지만 같은 '의사'라는 데 더 중점을 둔 것.
장정결제 투여 결정부터 환자 사망까지 교수는 어떤 지도와 지시를 했고 전공의는 어떤 판단을 했을까. 메디칼타임즈는 판결문을 통해 이들 각자의 행위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봤다.
환자는 신경과 진료를 받던 중 복부 엑스레이와 CT 촬영에서 '회맹판을 침범한 상행 대장 종양', '마비성 장폐색, 회맹장판 폐색에 의한 소장 확장' 의심의 영상판독 소견을 받았다.
환자는 2016년 6월 25일, 소화기내과 위장관 파트로 전과됐고 정 교수는 주치의로 지정됐다. 강 전공의는 당시 내과 레지던트 2년차로 정 교수의 지도‧감독하에 환자 진료를 함께 담당하게 됐다.
강 전공의와 정 교수는 각각 다른 시간에 환자 가족에게 대장암 여부를 위해서는 대장내시경을 해야 하는데, 환자 상태를 봐서 결정하겠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그들은 "대장암 여부는 대장내시경 검사를 해봐야 정확히 알 수 있는데, 환자가 고령인 데다 현재 뇌경색 증상이 있으며 혈액 응고 방지제인 아스피린 등을 복용하고 있기 때문에 약을 끊고 기력이 회복되는지 등을 봐가며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어디까지 치료를 받을 것인지 가족이 상의해서 다음날 알려달라고도 했다.
이와 같이 고지한 다음날(26일), 강 전공의는 27일에는 대장내시경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환자에게 복부 팽만이나 압통이 없으며 배변이 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집에 있던 정 교수에게 전화로 이를 알리고 환자와 가족 동의도 받았다고 보고했다.
강 전공의는 정 교수에게 전화 보고를 하기 전 환자와 가족에게 "대장내시경 검사가 아니라 간단한 생체조직 검사를 실시한다"는 취지의 말만 했다. 대장내시경 검사와 장정결제 투여를 하게 된 이유 및 그 필요성, 장정결제 투여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보고를 받은 정 교수는 대장내시경 검사와 장정결제 투여를 승인했다. 이에 강 전공의는 27일 진행할 대장내시경을 위해 장정결제 처방을 내린 후 퇴근했다.
"환자에게 장정결제 2L를 30분 간격으로 4회에 나눠 투여하고, 다시 다음날 새벽 5시경 같은 요령으로 2L를 추가 투여하되, 장정결제 복용 시 환자를 반드시 앉혀서 사레 걸림(aspiration) 되지 않도록 하라"는 게 강 전공의의 처방 내용이다.
강 전공의의 처방전에 따라 간호사 등은 장정결제 투여를 시작했다. 이때 정 교수와 강 전공의는 병원에 없었다.
환자는 이미 장폐색이 있었기 때문에 가스와 장내 분면 등이 제대로 몸 밖으로 배출되지 못한 채 대장 팽압 증가로 장벽이 엷어지면서 장천공이 발생, 장내 분변 등이 체내로 유출됐다. 이에 따라 호흡곤란, 산소포화도 감소 등의 부작용으로 사망에 이르렀다.
즉, 환자에 대한 대장내시경 및 장정결제 투여 결정은 전공의가 했고, 환자 및 보호자에게 설명도 전공의가 했다. 전공의의 판단을 정 교수는 '승인'했다.
2심 법원은 "정 교수는 강 전공의의 임상적인 판단을 섣불리 믿어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을 한 것으로 보인다"라며 "강 전공의는 아직 배우는 과정에 있었다"고 했다. 대법원은 이 부분을 다시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지휘 감독 관계에 있는 다른 의사에게 의료 행위를 위임했을 때, 위임받은 의사의 과실로 환자에게 발생한 악결과에 대한 책임을 위임한 의사에게도 인정할 수 있는지를 쟁점으로 꼽았다.
정 교수 측은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하며 이 부분에 대한 책임을 구했다.
대법원은 "의료행위 위임 당시 구체적인 상황에서 위임의 합리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고, 이를 인식했거나 인식할 수 있었다고 볼 만한 다른 사정이 없는 한 행위를 위임한 의사는 위임받은 의사의 과실로 환자에게 발생한 결과에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설명의 의무 위반을 책임을 위임한 의사에게까지 물으려면 ▲두 의사의 관계 및 지위 ▲위임하는 의료행위의 성격 ▲그 당시 환자 상태와 그에 대한 각자의 인식 내용 ▲위임받은 의사가 의료행위 수행에 필요한 경험과 능력을 보유했는지 등에 비춰 위임의 합리성을 인정하기 어려울 때 가능하다고 했다.
이를 이번 사건에 적용해 정 교수에게도 주의의무 위반에 따른 책임을 물으려면 ▲부분 장폐색 환자에 대한 장정결 시행의 빈도와 처방 내용의 의학적 난이도 ▲내과 2년차 전공의임에도 소화기내과 위장관 부분 업무를 담당한 경험이 미흡했거나 ▲기존 경력에 비췄을 때 적절한 업무 수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심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정 교수가 전공의를 지휘 감독하는 지위에 있다는 사정만으로 직접 수행하지 않은 장정결제 처방과 장정결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에 관한 설명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단정한 원심은 의사의 의료행위 분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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