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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질문 던지는 인문학, 의대에서 적극 교육해야

김효찬 학생(전남의대)
발행날짜: 2023-02-13 05:00:00

김효찬 학생(전남의대 본과1학년)

"생명은 왜 소중한가?"

의사라면, 그리고 의사라는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의대생이라면 누구나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생명이 왜 소중한지, 왜 생명을 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과연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의학과 철학이 그리 먼 관계가 아니었다. 많은 철학자는 의학에 대하여 논했고, 고대 의학자들 또한 철학을 등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근대 이후의 사회는 종교를 내치고 이성과 논리를 새로운 신앙으로 삼았다. 그 여파로 의학은 인문학과는 거리를 벌린 채 과학의 한 분야로서 홀로 섰다. 그리고 21세기 대한민국, 의학은 공학과 더불어 가장 응용적이고 실전적인 학문으로 자리 잡아 인문학과는 접점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인문학, 특히 철학 같은 학문 분야가 현대사회에서 등한시되는 데에도 분명한 이유가 있다. 원론적인 탐구와 형이상학적인 담론에는 현실성이 부재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실질적인 파급력과 실효성이 미미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문학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과학과는 명확한 경계선이 그어진 지금, 의학에서의 완전한 부재는 사고를 경직적으로 만드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낳았다. 의학은 더 이상 목적을 질문하지 않는다. 그저 앞으로 나아간다. 더 나은 연구와, 더 앞서나가는 발전, 혁신적인 기술과 효율적인 시스템. 그것들은 물론 중요하다. 특히 생명을 다루는 것에는 촌각을 다투는 경우가 많기에 더더욱. 그러나 우리는 과연 그렇게 열심히 달려가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는 하는가? 우리가 달려 나갈 때마다 남기는 발자국들이 어떤 여파를 남길지에 대하여?

인문학은 이러한 생각을 촉발한다. 본질적인 "왜?"라는 질문을. 왜 생명은 소중한가? 우리는 왜 생명을 중시하고 보호해야 하는가? 종교가 모든 것의 해답이 되지 않는 시대에서 '신이 인간을 소중하게 만들었다'는 신학적 관점은 충분치 못하다. 항상 그래왔으니까, 내가 인간이니까, 같은 표상적인 생각만으로는 답을 찾을 수 없다. 혹자는 인간이야말로 사유의 주체이기 때문에 모든 가치와 소중함을 결정하고 느낄 수 있는 존재이기에 인간과 그의 생명이 소중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누군가는 이성과 논리처럼, 인간이 살아있고 존재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기에 삶이 소중하다고 말할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사회와 생태의 귀중한 부분으로서 인간의 생명이 소중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칸트도, 헤겔도 모두 각기 다른 답을 내놓았다. 사실 이런 질문들에 진리처럼 내릴 수 있는 정답은 없다. 그런데도 정해진 답이 없는 질문들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나의 삶과 나의 목적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니까. 특히 의사, 그리고 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런 고민을 해보아야 한다. 대부분의 의사는 삶과 죽음, 건강이라는, 너무 중요해서 감정적으로 만들기 마련인 영역을 다루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질과 맞닿아 있는 부분을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만큼 그에 대한 고찰도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문학의 탐구, 그리고 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능동적인 사고와 본질적인 고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의과대학에 재학하면서 접해보아야 한다. 물론 의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지식과 실력을 쌓는 것이 물론 가장 중요하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실전적인 수련을 하는 것과 더불어 우리가 하는 것의 목적, 이유, 그리고 의미에 대해 깊게 고민해보는 것 또한 중요하다. 사람의 생명과 건강은 왜 소중한가? 그것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것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정치, 기부 등을 통해 시스템적인 변혁을 꾀하는 것만큼이나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의사가 되었을 때 자신이 할 일의 무게를 깨닫고 그것의 의미를 스스로 세우는 것. 그것을 통해 자신만의 철학이 만들어진다면 그 사람의 말, 행동, 그리고 삶은 근본적으로 물결치듯 변해갈 것이다.

이렇게나 큰 무게를 담고 있는 기회를 바로 의과대학에서 필수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대학교에서 기본교양으로 철학사를 한 학기 듣는 것, 개인으로서 인문학 서적을 읽는 것은 그저 피상적일 따름이다. 의사가 될 사람들이 모여서 사람의 삶과 죽음을 가까이에서 보고 겪은 선배 의사의 이야기와 그 속에 담긴 철학을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생명의 중요함과 사람의 무거움에 대해 진지하게 담론을 펼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래야 의대생으로서 의사가 되었을 때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 생각, 그리고 원론적인 성찰을 해 볼 수 있다. 그러한 고민을 함께 나누고, 먼저 그 길을 걸어본 선배에게 조언을 구하고, 그래서 자신만의 올바름이 생길 수 있도록.

공부양이 많지 않은 예과생 때, 철학과와 의과대학이 함께 수업을 진행하는 필수교양을 개설하여 의대생에게 필요한 철학을 깊이 있게 공부하게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한편으로는 본과생 때도 수강할 수 있는 인문학 강의를 만드는 것도 좋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문학이 그저 수업, 즉 학점을 이수해야 하는 의무로 전락하지 않고, 유의미한 담론이 펼쳐질 수 있게끔 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인문학은 영어로 'Humanities'로 번역된다. 인문학은 그저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관련된 모든 것이라는 말이다. 철학은 비단 어려운 수사학이 아니다. 삶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들의 총체일 뿐이다. 그 어떤 영역도, 학문도 인문학과 철학을 빼놓고 논할 수 없다. 하물며 삶과 죽음을 다루는 의학에서 어떻게 그러겠는가. 의사가 되는 이라면 누구나 읊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마저 의사의 윤리에 대한 고대 그리스인의 철학이 담겨 있다. 인문학은 어디에나 있다. 그것을 끄집어내어 생각을 다시 깨우고 그래서 더 나은 의사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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