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장병원이라는 사실을 수사기관이 확인했을 때는 해당 요양기관이 청구한 요양급여비의 지급을 보류할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법 47조의2 제1항의 내용이다. 건강보험공단이 의료기관에 대해 요양급여비 지급을 잠시 멈춤 할 수 있는 근거다. 현재 지급 보류 대상은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의료기관을 개설한 경우, 즉 사무장병원을 말한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3일 해당 법 조항 자체가 '헌법불합치'라는 결론을 내렸고, 건보공단은 제도 자체를 잠시 멈춤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다행히 헌재가 법적 공백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내년 말까지 잠정 적용하면서 법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지급보류제도를 규정하고 있는 건보법 47조의2 제1항은 사후에 일어나는 부당이득 환수절차의 한계를 보완하고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이 악화될 위험을 방지하고자 마련된 조항이다. 2014년 11월부터 시행된 법으로 당시 새누리당 문정림 의원이 대표발의했던 법안이 보건복지위원회를 거치면서 현재의 조항으로 확정됐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2014년 제도 시행 이후 2020년까지 총 555건의 지급보류 처분이 이뤄졌고 이 중 25곳은 폐업에 이르렀다. 지급보류 처분을 하면 요양기관은 법원에다 집행정지 처분을 요청하는데 집행정지 인용률은 80%에 달한다.
헌재는 "지급보류 조항은 사무장병원의 개설 운영을 보다 효과적으로 규제해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를 고려하면 지급보류 처분의 요건이 상당히 완화돼 있는 것 자체는 수긍이 가는 측면이 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도 "지급보류 처분은 잠정적 처분이고 이후 사무장병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져 무죄판결의 확정 등 사정 변경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런 변경 사유는 발생하기까지 상당히 긴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봤다.
이어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지급보류 처분의 처분요건뿐만 아니라 사정 변경이 발생할 때 잠정적인 지급보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급보류 처분의 취소에 관해서도 명시적인 규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즉, 지급보류 법 조항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요양기관 개설자의 재산권도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
헌재는 "무죄판결이 확정되기 전이라도 하급심 법원에서 무죄판결이 선고되면 그때부터 일정 부분에 대해 요양급여비를 지급토록 할 필요가 있다"라며 "나아가 사정 변경 사유가 발생했을 때 지급보류 처분이 취소될 수 있도록 한다면 지급보류 기간 동안 의료기관의 개설자가 수인해야 했던 재산권 제한 상황에 대한 적절하고 상당한 보상으로서의 이자나 지연손해금 비율도 정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지급보류 처분이 취소 사유나 지급보류 처분으로 발생한 요양기관 개설자의 재산권 제한 정도를 완화하기 위한 적절하고 상당한 보상으로서의 이자나 지연손해금 등 제도적 대안 등을 어떻게 형성할지에 대서는 입법자에게 폭넓은 재량이 부여돼 있다"고 덧붙였다.
건보공단, 지급보류 취소 규정 어디 담아야 하나 고민
헌재의 판결로 건보공단은 지급보류 처분의 취소 규정 등의 법제화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실제 건보공단은 지난해 초 불법개설 기관 처분(감경) 업무처리 지침을 만들어 급여환수나 지급보류 처분에 적용하고 있다. 2020년 6월, 사무장병원이 불법 개설기관이더라도 요양급여비 환수는 건보공단 재량으로 요양급여 내용과 액수 등을 고려해 환수액을 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건보공단은 급여환수 소송에서 패소하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이에 건보공단은 요양급여비 환수액 감면 규정, 지급보류액 감면 규정을 자체적으로 만들어 운영하게 된 것.
▲의료기관의 최소 운영비 부족 ▲자료 제공 등 협조 및 기타 소명의 적극성 ▲불법개설 중복적발 빛 불법개설 전력자 개입 ▲지급보류 대상 의료기관의 불법개설 기간 ▲인접지역 대체 의료기관 존재 등을 따져 지급보류 금액을 최대 100%까지 감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지급보류 법 조항을 아예 개정하라는 게 아니고 지급보류를 해제하는 기준을 법에 담으라는 게 헌재의 판단인데 이를 건보법에 담을지,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등 하위법령에 담을지 고민하고 있다"라며 "이미 건보공단은 자체적으로 불법개설 기관 처분에 대한 업무처리지침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법제화하는 과정을 거치면 된다"고 말했다.
이와는 별개로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계류 중인 지급보류 제도 강화 법안은 통과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은 지난해 말 지급보류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의 건보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고, 해당법안은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에 머무르고 있다.
계류 중인 건보법 개정안은 요양급여비 지급보류 대상을 비의료인의 의료기관 개설, 1인 1개소법을 위반한 의료인 뿐만 아니라 의료법인 명의를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는 경우(의료법 제33조 10항)까지로 넓히고 있다. 물론 보건복지부와 건보공단 역시 해당 법안에 '찬성'을 표시했다.
다만, 해당 법안이 통과한다고 해도 지급보류 제도 관련 법을 개정하기 전까지는 유명무실해지는 상황이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의료법인이 다른 사람에게 그 법인의 명의를 빌려주는 의료법 위반 사항이 발생했을 때 급여비를 지급보류할 수 있는 근거가 없으니 건보법 개정을 통해 근거를 만드는 것일 뿐"이라며 "지급보류 취소 사유 개정과는 별개로 (개정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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