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가 성모병원의 임의비급여 혐의에 대해 28억원 환수, 141억원 과징금 처분을 내린지 한 달이 지났다. 사상초유의 행정처분을 받은 성모병원. 이제 한달이 지난 시점에서 의사와 환자의 신뢰관계는 정상화된 것일까. 성모병원 의료진들은 불법진료(?)를 포기하고 건강보험법령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정상진료를 하고 있을까. 성모병원에서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심층취재했다.[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상)산자도 죽은자도 환급민원 “환자 못믿는다” (중)합법진료 굴레에 고통받은 의사와 환자들
(하)임의비급여의 굴레, 누가 돌을 맞아야 하나
과징금 처분을 예고 받은지 한달이 지난 성모병원. 현 시점에서 임의비급여 처방에 어떤 변화가 있을까.
성모병원 A교수는 “임의비급여사태 이후 병원에서는 가급적 급여인정기준을 벗어난 약제를 처방하지 말라고 주문하고 있다”면서 “여간해선 문제가 될 수 있는 약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약제 가운데 하나가 ‘마일로타그주’다. 이 주사제는 다른 세포독성화학요법제로 치료가 적절하지 않은 60세 이상 환자에서 처음으로 재발한 CD33 양성의 급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로 식약청 허가를 받은 비급여약제다.
성모병원은 이 주사제가 소아 백혈병환자에게 효과가 있다는 임상적 근거에 따라 몇 년 전부터 백혈병이 재발한 소아환자에게 투여해 왔지만 과징금 처분 이후 투여를 중단했다.
지난해 복지부 실사에서 60세 이하 환자에게 이 약제를 임의비급여한 사실이 적발돼 환수 및 과징금 처분 대상에 포함된 때문이다.
조혈모세포이식 이전 고용량의 항암제나 방사선요법을 받는 환자는 하루에도 수차례 오심, 구토를 하지만 요양급여기준상 항구토제는 사용이 제한돼 있다.
성모병원 의료진들은 항구토제 처방을 하지 않으면 환자들이 심한 고통을 겪는다는 것을 뻔히 알지만 비급여 사태 이전과 달리 요즘에는 함부로 쓰지 않는다.
심평원에 급여신청하면 삭감되고, 임의비급여로 환자에게 비용을 청구하면 진료비 환급 민원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백혈병이나 림프종, 고형암 등에 사용되는 약제인 ‘아이다루비신’. 이 약제는 다른 약제에 비해 심장독성이 상대적으로 적고 외국의 경우 1차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2차 항암제로 분류돼 있다.
B교수는 “이 약은 다른 것과 비교할 때 심장독성이 적어 많이 사용했는데 환급이다 과징금이다 해서 독성이 높지만 대체 가능한 싼 약으로 바꾸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와 함께 모교수는 골수이형성증후군 환자에게 수혈 대신 면역억제제인 ‘사이폴엔’을 처방하던 것도 중단하고, 과거로 돌아가 환자들에게 수혈을 권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보험급여가 허용되는 약제를 중심으로 치료하면 환자들의 본인부담금은 확연히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도 성모병원에서 외래든, 입원이든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은 임의비급여사태 이전에 비해 보다 나은 진료환경을 보장받고 있는 것일까.
임의비급여사태 이전과 이후 달라진 것 중의 하나는 백혈병환자들이 진료비를 전액 부담해도 좋으니 임의비급여 처방을 허용해 달라고 복지부에 탄원을 올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환자 보호자가 기존의 임의비급여이던 약 처방을 중단하자 병원 직원의 멱살을 잡고 약을 내놓으라고 난동을 부린 사건도 일어났다.
건강보험의 범위 안에서 진료를 받기를 희망하는 환자도 적지 않을 것이다.
반면 ‘마일로타거주’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성모병원을 찾아온 소아환자나, 보다 덜 고통스럽게 병마와 싸우고 싶은 환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임의비급여사태로 인한 약 처방 중단은 가혹한 형벌과 다름 아니다.
A교수는 “과거에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비싸더라도 심각한 부작용이 적은 비급여약제를 투여해야 할 때가 있었지만 이젠 어쩔 수 없이 싸지만 부작용이 상대적으로 심한 약을 투여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보호자 중에는 이를 지켜보다 못해 임의비급여약을 달라고 울면서 애원하지만 줄 수가 없는 게 안타깝기만 하다”고 덧붙였다.
#i4#이보다 더 아이러니한 것이 있다.
성모병원이 170여억원에 달하는 행정처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교수들은 여전히 임의비급여 약이나 치료재료를 중단하지 못한채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B교수는 “의사는 보험이 되냐 되지않느냐를 잣대로 진료하지 않는다”면서 “대체 가능한 수단이 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과징금이 아니라 어떤 불이익을 받더라도 쓸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약이 항암제다.
메디칼타임즈(8월 30일자)가 보도한 바와 같이 성모병원의 모교수는 임의비급여 파문이 터지자 골수이식후 재발한 환자에게 항암제인 ‘마일로타그주’ 투여를 중단했지만 하루 만에 재개했다.
이 교수는 환자 보호자의 요청을 뿌리칠 수 없기도 했지만 이 약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C교수는 “예를 들어 고열이 나는 환자에게 14일까지만 급여를 인정하는 약이 있는데 100일 이상 39˚ 이상 고열이 나는 사례도 있다”면서 “삭감이 무서워 약 처방을 중단하면 환자는 죽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지난 7월부터 혈액암환자에 대해서도 전액 본인부담방식으로 투여가 허용된 ‘카디옥산’도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
이 약제는 유방암환자의 심장독성 방지에 투여할 때에만 급여로 인정하면서 지난해 암환자들의 진료비 환급 민원 가운데 환급액 비중이 가장 높은 대표적 약제라는 게 심평원의 설명이다.
항암제 독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심부전, 부정맥 등을 사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유일한 약제이다보니 불가피하게 투여를 하도고 진료비 환급을 피하기 어려웠던 셈이다.
C교수는 “백혈병환자가 심장이 망가지면 죽는데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이 약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숱하게 급여확대를 요청해도 모른 채 하더니 환급사태가 터지니까 어쩔 수 없이 학계의 의견을 수용한 것”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지난 7월 복지부는 이런 사례들까지 모두 환수 및 과징금 처분을 내렸지만 의학적 임의비급여까지 철퇴를 내려야 하는지 의문이다.
불가피한 임의비급여 처방을 계속하고 있지만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환자에게 비용부담을 함부로 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성모병원 임의비급여 논란이 일 때마다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골수검사 바늘.
잘 알려진 것처럼 골수검사 수가는 3만원이며, 재료대를 별도 산정하거나 환자에게 받을 수 없다. 요양급여기준상 골수검사 바늘은 재활용해야 한다.
하지만 성모병원은 임의비급여사태 이전이나 이후에나 재활용바늘(성모병원에서는 이를 대못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을 사용하지 않고 1회용 바늘을 고집하고 있다.
C교수는 “1회용 바늘을 사용하는 것은 에이즈 등의 감염을 예방하자는 차원”이라면서 “아무리 소독한다 하더라도 부주의로 인해 감염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데 다른 사람의 골수를 뽑았던 바늘을 다시 사용하면 기분이 좋겠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1회용으로 바꾼 게 올바른 판단인데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고 해서 옳지 않은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며 “이는 돈 문제가 아니라 의사의 윤리적인 판단”이라고 못 박았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1회용 바늘 구입비 5만여원을 환자에게 부담시키지도 않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심평원에 1회용 바늘 재료대를 급여청구 하면 100% 삭감될 게 뻔하지만 무조건 보낸다”고 전했다. 실제 심평원은 이 비용을 삭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관계자는 “차라리 삭감되는 게 나은 편”이라고 하소연했다.
임의비급여 비용을 환자에게 청구했다가 나중에 민원이 제기돼 환급해주고, 과징금 맞느니 적지 않은 비용이지만 삭감되는 게 손해가 덜하다는 뜻이다.
D교수는 “악성종양이나 혈액환자들은 현행 보험급여기준만으로는 보다 앞선 치료를 할 수 없는데 과징금처분이 내려지고 나니 솔직히 고난이도환자나 재발환자는 진료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합병증 생기거나 하면 보험기준을 초과하기 일쑤이고, 병원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임의비급여를 해야 하는 게 건강보험의 현주소이지만 이를 정당하지 않은 부당진료로 몰아가고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보험급여와 비급여의 사각지대에 놓은 임의비급여.
성모병원 의료진들은 부당진료로 매도되지 않기 위해 그 사각지대에서 한쪽 발을 빼긴 했지만 ‘돈 보다 생명’이라는 가톨릭정신을 실천하고 있다는 진실을 국민들이 알아주길 묵묵히 기다리며 차마 다른 한 발은 빼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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