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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 돌보며 세상 보는 눈이 달라졌어요"

장종원
발행날짜: 2008-01-04 07:29:07

고근준 공보의 "의사가 도움줘야 할 사람 너무 많아요"

|신년기획|새 희망을 만드는 의사들

2007년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지나고 새 해가 밝았다. 또 새정부 출범을 앞두고 있어 그 어느 해보다 새해에 거는 기대가 높다. 소외된 이들의 곁을 묵묵히 지키는 의사들, 비록 비인기과 의사지만 전공을 포기하지 않고 한 길을 가는 사람들, 이들은 어떤 꿈과 희망을 안고 무자년 새해를 열어가는지 집중 취재했다.[편집자 주]
고근준 공보의(32)의 진료실은 추운 겨울에도 창문이 열려있다. 흰 가운이 아닌 두툼한 점퍼가 가운이다.

고근준 공보의.
서울역 노숙자 진료소에서 일하면서 나름의 '고통'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충분히 이해가 갈만한 상황이지만 "진짜 훌륭한 의사라면, 이런 상황까지 다 극복해야겠죠?"라면서 창문을 여는 것에 미안함을 느낀다.

그는 서울역의 '허준'으로 통한다. 지리한 양한방 논쟁은 여기서는 접어두시라. 그는 공중보건의 2년동안 노숙인과 부대끼는게 일상이었다.

술 먹고 무작정 진료실을 쳐들어오는 노숙인도, 한 번 잡히면 최소 30분은 하소연을 들어줘야 하는 노숙인도, 나이가 많음에도 '형님'이라고 하며 따르는 노숙인도 그에게 어색하지 않다.

"청진기 하나로 하루 80~90명 진료"

26일 오전 10시 컨테이너 2~3개를 붙여 만든 노숙자 진료소는 시끌벅적했다.

9시부터 문을 열지만, 진료는 10시에 시작한다. 오후 5시까지 하루가 지나면 80~90명의 환자가 지나간다. 최근에 정신과 의사가 한 명 들어왔기에 그나마 줄어든 것이다.

고 공보의는 내과전문의이지만, 이 곳에서만은 올라운드 플레이어다. 진료도구라고는 청진기와 혈압계, 소독약 등이 전부인 열악한 상황을 몸으로 때우고 있다.

하루 50~60명을 2차의료기관으로 전원해야 하는 노숙인의 건강상태에 비하면 너무나 부족한 상황. 공중보건의로 처음 배치받았을 시절, 여기저기 중고 장비라도 갖추어달라고 부탁하고 다녔지만, 이제는 포기했단다.

고 공보의는 이렇게 오전에만 40여명의 노숙자 환자를 진료했다. 오늘은 술 먹고 난동 부리는 환자는 다행히도 없었다.

"열악한 노숙자 의료체계 개선되어야"

서울역 컨테이너박스는 전국 최대의 노숙자 진료소이다. 성공회 다시서기센터가 운영하는데 의사 2명, 간호사 3명, 청진기, 혈압기가 전부이지만 최대의 진료소다. 노숙자 진료소가 주간 진료를 맞고, 야간에는 인의협이 거리 진료를 하고 있다.

시립병원 등으로 전원하는 체계가 갖추어져 있긴 하지만, 일차 의료기관으로서 기본적인 진료마저 하기에 너무나 열악한 것이 현실이다.

그는 "제일 큰 노숙자 진료소가 보건지소의 수준이라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이 곳도 커져서 충분히 진료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1차기관도 더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게 새 정부에 대한 바람이란다. 그가 특히 아쉬워 하는 것은 노숙자에 대한 사회뿐 아니라 정부의 관심마저 없다는 점이다.

"대기업은 청소년은 지원해도 노숙인을 지원하는 것은 이미지에 안 좋다고 꺼립니다. 서울시나 복지부는 약값만 지원해줄뿐 장비나 시설 확충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도로를 낸다고 노숙자 진료소를 철거하라는 요구를 받기도 해 시위를 통해 지켜내고 있는 상황이다.

#i4#그는 "노숙자들은 반전을 기대하기 어렵고, 힘을 보여줄 사람도 없다"면서 "하지만 노숙자를 보호해주어야 하고 최소한의 시설은 확충해 줘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노숙인 진료하면서, 세상 보는 눈 달라졌다"

그는 한 달에 한번은 심한 몸살을 겪는다. 피부병도 잦다. 여기서 근무하고 나서의 변화다.

공중보건의 배정받을때만 해도 이런 열악한 상황인지는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는 "여기서 생활하다 보면 세상 보는게 달라진다"면서 "예전에는 의료의 기술이 발전해야 하는 측면을 봤지만, 이제는 의사가 도움으로 주고 보호해 주어야 할 대상이 많다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실패를 하더라도 힘들어하거나 하지 않을 것 같다. 웬만하면 힘들다고 할 수 없다"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느낀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 모두가 느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결국 3년차마저 (옮길 수 있음에도) 서울역 한켠의 컨테이너 박스에 남기로 했다.

"제가 없으면 왠지 안될 것 같습니다. 다른데서 편한게 있는다는 의미가 중요하지 않아요. 환자들과의 '정' 때문이라도 못 떠나겠습니다. 돈은 생각의 범주에서 이미 떠났습니다."

그는 "자신이 3년 채우면 다른 분이 채울 것이다. 한번 발을 들이면 못떠난다. 노숙인이 서울역을 못 떠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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