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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산업화의 이원적 접근

선 경
발행날짜: 2005-04-28 07:51:53

선경 (고대의대 흉부외과 교수)

최근 들어 의료시장 개방 논의에 더하여 ‘의료의 산업화’라는 화두가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 두 가지만 살펴보자.

첫 번째는, 금년 1월 7일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경제장관 간담회를 통해 이해대립이 심한 교육-법률-의료 등 사회서비스업의 고부가가치화를 위해 시장을 개방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 내용을 보면 “최근 고소득층의 국내 소비는 급감하는 반면 해외소비가 늘고 있는 것은 국내 서비스산업의 발달이 지연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따라서 개방과 경쟁을 통해 국내 서비스업을 고급화·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의료와 교육 등 사회서비스 부문의 개방을 위해서는 이원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공공적 측면 즉 국민의 기본적인 수요를 충족해주어야 하는 부분은 국가가 확실히 보장해주는 반면, 경제적 측면에서 접근할 부분은 경쟁촉진을 위해 과감하게 개방할 필요가 있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주목할 내용은, 공공적인 측면은 국가가 보장하고 반면에 경제적인 측면은 경쟁촉진을 위해 개방하겠다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의료의 공공적인 측면은 무엇이고 경제적인 측면은 무엇인가?

의료의 공공적인 측면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 삶을 연장시키는 것에 있다면, 국가가 나서서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해 준다는 측면에서 참으로 좋은 일이다.

즉, 병에 걸렸을 때 돈 없어서 죽는 일이 없도록 앞으로도 의료수가를 정부가 계속 통제해 준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특히 삶의 질을 다루는 의료보다는 삶의 양을 다루는 생명의료 분야에 더욱 해당될 것이다.

치료의학의 백미라고 하는 심장수술의 경우 의사 6명 그리고 간호사 4명이 하루 종일 난리치고 나면, 병원은 50만원 전후의 수술비를 벌게 된다.

혹시라도 흉부외과 의사들 중에 의료시장이 개방되면 미국처럼 심장수술비가 500-600만원으로 오를 것이라고 착각한 사람이 있다면 차제에 그런 얄팍한 기대는 접어도 될 것 같다.

그런 것은 국민들에게 정부가 확실히 보장해 줄 의료의 공공성에 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료의 경제적인 측면은 무엇일까? 그걸 알아야 지금부터 거기에 투자할 수 있을 텐데.

두 번째는, 지난 3월 18일 보건복지부 김근태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건복지 산업을 신성장 동력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정책목표를 보고하였다.

세부 이행과제는 “BT 중심의 차세대 보건산업 육성, 의료서비스 산업화 촉진, 한의약 산업 활성화, 고령친화산업 육성 기반 구축, 보건복지분야 일자리 창출” 등이다.

참으로 획기적인 제안으로, 그동안 의료를 복지수단으로만 접근해 온 참여정부가 ‘의료산업’이라는 개념을 수용한 것이다.

앞으로 BT 분야를 IT분야처럼 발전시키고, 의사들이 앞장서서 한국경제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데 의료의 산업화란 무슨 말인가?

‘의료산업’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의료산업이란 의료기계 및 설비의 생산, 제약, 병원경영 등을 산업의 한 부문으로 분류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그것 참, 요령부득한 단어들의 나열에 불과한 사전적 의미는 오히려 이해를 더 방해하는 것 같다.

혹시 의료의 경제적인 측면이나 산업화라는 것이 장례예식장이나 주차장, 음식점, 매점사업 같은 것을 활성화해서 키우자는 것일까?

글쎄... 아무리 작금의 병원들이 그런 걸로 먹고산다고는 하지만,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책목표라고 대통령에게 보고했을 것 같지는 않다.

의료에서 산업화 할 수 있는 경제적 요소가 무얼까 혼자 고민해 보았다.

전 세계 의료산업의 중심이라고 하는 미국을 비롯하여 의료선진국과 우리의 차이를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내린 결론은, 의료의 산업화는 ‘신의료기술 개발 (新醫療技術 開發)’을 통해 경제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신의료기술이란 신치료기술을 중심으로 신진단기술, 신예방기술, 신재활기술 등이 포함된다고 하겠다.

일전에 누군가가 대한민국 임상 의료는 카피에 불과하다고 혹평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다시 말해 외국에서 배워온 의료지식을 그대로 모방하면서 선진국의 치료성적에 근접하려고 노력할 뿐이라는 말이다.

필자가 전공하는 심장수술을 예로 들면서, 한국 환자의 특성에 따라 수술테크닉에서 약간의 변형은 있었을지 몰라도 인공심폐나 심장수술의 기본개념을 그대로 모방할 뿐이라는 것이었다.

오히려 요즘 의사들에게 공격을 받고 있는 한방 의료는, 중국에서 수입하여 한때는 우리 고유의 의학체계로 발전시켜 역수출했던 경력이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의대교수 입장에서 매우 듣기 고약한 발언이었지만, 말씀하신 분의 의도가 바로 우리가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여 의료 사대주의를 벗어나자는 뜻이었기에 참고들을 수 있었다.

의료산업이 국가경제에 기여하는 방법을 신의료기술 개발을 통한 산업화에 둔다면, 그 바탕에는 반드시 국가의 바이오 R&D 투자가 받쳐주어야 한다.

이때 주의할 것은, 기술개발 연구 자체는 산업화 성공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능이 확인되면 즉시 산업화가 가능한 IT 기술과 달리, 의료를 포함한 BT 기술은 그 결과물이 사람에게 적용된다는 특징으로 인해 핵심기술 개발 이후 임상시험 단계가 더 복잡하고 비용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거쳐 안정성 인증을 받더라도, 국내 바이오 제품이 실제 시장에서 살아남아 산업화에 성공한 경우는 극히 찾아보기 어렵다.

개중에는 주식시장의 거품으로 돈을 버는 경우도 있었지만, 의료산업화라는 주제와는 조금 다르기에 논외로 치기로 하자.

보건복지부는 오랜 동안 엄청난 액수의 국책연구비를 투자해서 많은 바이오 연구개발과제를 지원해 왔다.

그 결과 국내 바이오 기반기술은 가히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하였다. 그런데 그 중에 산업화에 성공한 것이 몇 개나 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차제에 보건복지부가 연구부문에 치우쳐 있던 것에서 임상시험센터나 임상시험제도 정비와 같은 인프라 구축에 눈을 돌린 것은 매우 고무적인 사실이다.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신의료기술이 개발되고, 그 중 경쟁력을 가진 요소에 민간기업이 투자를 시작하여 제품화에 성공하면 현실적인 의료산업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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