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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국민)의 이웃이 되자

박경철
발행날짜: 2008-01-10 08:56:46

박경철 의사협회 정책이사

새해는 무자년(戊子年) 쥐의 해다. 동양학에서 쥐는 12간지중에서 지혜를 상징한다. 민첩하게 상황을 잘 판단하고, 어려운 상황도 전화위복으로 만들 수 있는 재능과 명석한 두뇌를 가지지만, 과도하게 욕심을 내면 민첩성이 떨어져 위기를 맞는다는 해석을 하기도 한다. 그점에서 일부 호사가들은 새로운 대통령 당선자를 두고 무자년 ‘쥐의 기운’을 받은 사람이라 칭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쥐의 속성은 양면성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지혜와 덕은 양립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세에 쥐의 덕은 신묘한 치세를 이끌어 내지만, 대신 덕이 부족하여 팍팍하고 온기가 부족한 세상을 만들기가 쉽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주왕복선이 날아다니는 과학의 세기에 설마 간지의 힘이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가 될 리는 만무하다. 간지(干支)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본질은 어디까지나 균형이다. 그점에서 동양학의 기본원리는 늘 ‘기대와 균형’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즉 잘나갈 때 조심하고 어렵다고 좌절하지 않는 균형의 원리를 잊지 말라는 끊임없는 견제가 이안에 담긴 궁극적인 함의(含意)라는 뜻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의료계가 당면한 과제를 살펴보면 실로 극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의료계는 지난 10년간 상당한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 대승적 차원에서 시작된 의약분업의 정신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의료계는 늘 ‘피해자’라는 생각이 저변을 이루었고, 그 결과 상황에 따른 합리적인 대안보다는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대처에만 골몰해왔다. 심판이 있는 경기에서 심판의 마음을 한편으로 이끌지 못하고는 그 어떠한 주장도 인정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국민들은 의료의 전문가가 아니다.

국민은 의료소비자이고 의사 혹은 의료는 의료공급자이다. 그리고 시장원리에서 공급자와 소비자는 늘 팽팽한 긴장을 유지 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시장원리에서 이익을 추구하는 측이라고 해서 소비자들에게 무조건 경원당하지는 않는다. 공급자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존경을 받기도 배척을 당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우리는 심판이자 소비자인 국민들의 마음을 얻는데 실패했다. 국민의 정부이래, 참여정부까지 이어지는 파퓰리즘적 의료정책이 의료의 본질을 뒤흔든 것이 사실이지만, 국민을 설득하는 힘은 정부가 의료계보다 훨씬 우위에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해서는 안된다. 상대가 심판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내 정강이를 찬다고 해서, 심판의 코 앞에서 상대의 뺨을 때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하지만 이일은 힘들고 어렵다.

심판에게 공을 보지 않고, 늘 내 정강이만 바라봐 달라고 요구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일이 반복되면서 의료소비자들은 의사사회에 대해 ‘적개심’에 가까운 불신을 가지게 되었다. 정강이를 차이는 것을 보지 못한 심판은 상대의 뺨을 때리는 나에게 오히려 옐로우카드를 내밀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세상에 의사들이 하는 말이 모두가 밥그릇 싸움이고, 모두가 집단이기주의며, 모두가 생명윤리를 무시하는 것이 아님은 상식적인 것임에도, 실제 눈에는 그렇게 보인 것이다. 그간 의사사회가 외국인 이주가정을 위해, 북한 동포를 위해, 또 공공보건을 위해 엄청난 인적 물적 자원을 들인 사업들을 해나가고 있음에도 공(功)은 보이지 않고, 과(過)만 보이는 일이 지속되면서 우리는 고립무원의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제 이 부분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무조건 해결되리라는 기대는 망상이다.

세상의 어떤정부도 심판의 권위를 거역 할 수 없다, 그들이 심판을 기망할 수는 있을 지언정 심판의 눈을 대신 해주지는 않는다, 그리고 경기는 심판의 휘슬로 끝이 난다. 결국 답은 하나다.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해 온 모든 노력의 백배 천배를 심판의 마음을 사는데 투입해야 한다. 심판이 상대의 반칙을 서슬 퍼렇게 지켜보게 하고, 강하게 휘슬을 불어주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의 일대 혁신이 필요하다.

그것은 정부를 상대로 투쟁하고 타협하는 일도 아니고, 의사사회가 정치세력화하여 정당에 기웃거리거나, 한 두명의 의원을 더 배출하는 일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스스로 한사람 한사람이 마음을 다잡아 먹고 심판의 이웃이 되는 길 뿐이다. 이 지점에서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하다, 다만 가장 쉬운길이 가장 어려운 길일 뿐이다.

당장 무자년 새해가 밝는 아침에 일선의 모든 의사들이 내 병원을 찾는 환자에게 악수를 청하고, 의자에서 일어나는 노인들의 어깨를 부축하며, 그들이 토로하는 고민을 진정성 어린 눈빛으로 들어주는 일, 그거 하나면 족하다. 이일에는 돈도 제도도 필요 없다. 한 일년만, 아니 반년만 모두가 이런 각오로 진료실을 지키고, 의사사회의 가용자원의 거의 대부분을 사회적 약자에게 쏟아 부으면서 묵묵히 우리의 길을 가면 심판의 마음은 저절로 우리를 향하고, 반칙으로 일관한 상대방은 레드카드를 받고 스스로 무너져 갈 것이다.

그리고 심판에게 당당하게 요청하자.

‘저 친구들이 내 정강이를 찼습니다!’ 이렇게 말하자, 그러면 심판은 상처를 입은 내 정강이를 보고 상대를 경멸 할 것이며, 앞으로 내가 하는 말을 혹은 상처를 할리우드 액션으로 여기지 않고, 진심으로 동의하며 다가 설 것이다.

그리고 내부개혁이 필요하다.

지금 청와대의 386 정치인들과 소위 민주화 세력이 몰락한 이유는 시대를 잘못 읽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투쟁과 대립의 시기가 아니며, 설득과 타협의 시대다. 그럼에도 그들은 과거 반독재 투쟁의 연장에서 사물을 대립관계로 보았고, 그 과정에서 강경파를 중심으로 헤게모니를 형성했다. 그것이 바로 저들의 실패의 요인이다.

그점에서 우리에게 반면교사가 된다.

지금 우리는 과거 의약분업의 투쟁의 시기가 아니다. 신랄하게 말하면 의쟁투의 시대는 이미 저물어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과거의 추억을 부여잡고 일관된 투쟁을 부르짖는 우를 범했다. 의사는 민주노총도 정의구현 사제단도 아니다. 의협은 우리가 필요한 일들을 얻기 위해 실용으로 접근하고, 실용으로 설득하는 이익 단체일 뿐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여론을 주도하는 힘은 그렇지 않다.

아직도 붉은 띠를 두르고, 계란을 던지며, 혈서를 쓰는 것이 전부인줄 안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보자, 과연 그 장면을 목격한 정부가 그것을 두려워 하겠는지, 혹은 그것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우호적이겠는지를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차라리 청계천 거리에서 상설 외국인 진료소를 운영하는 것이 그 투쟁의 천배, 만배의 힘이 될 것을 우리는 안타깝게도 역사를 퇴행하고 있다.

투쟁의 시대는 갔다.

우리는 노회한 협상가를 기르고, 항우의 바짓가랭이 밑을 기어들어간 한신의 영민함을 배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사협회의 리더쉽에 대한 관심을, 혹은 이 작은 조직의 헤게모니에 대한 탐욕을, 마치 의료와 의사사회를 위한 거룩한 희생인양 외치는 관행부터 고쳐야 한다. 동료를 배척하고, 폄훼하기 보다는 서로 부축하고, 부추기며 함께 손잡고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위선의 거짓을 버리고, 양심의 거울앞에 서야 한다.

그래야 쥐처럼 영리한 새로운 대통령 당선자를 향해 5년 후에 또 다시 돌을 던져야하는 사태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잊지 말자.

새 당선자가 약사대회를 찾아 ‘ 약사님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 임기중에 성분명처방을 반드시 관철하겠다’ 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에게 유권자는 의사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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