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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하고 훤칠한 미녀 찾기'

우봉식
발행날짜: 2008-05-02 08:54:15

우봉식 의료와사회포럼 공동대표

최근 정부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유지하기로 했다는 언론의 보도가 있었다. 특히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30년간 유지돼 온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은 세계가 부러워하고 있다”며 “현행 건강보험체제를 변경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고 한다.

만일 보도된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는 충격이며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당연지정제 유지라는 정부 입장 발표를 보면서 참으로 의아하고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든다. 당연지정제는 보건 의료계의 30년 규제의 상징적인 제도이기 때문에 이 문제만큼은 충분히 토의와 의견 수렴의 절차를 거쳐서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타당하다. 그러나 그 동안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보건의료 관련 현안들에 대한 정부의 입장 정리를 위한 전문가의 의견 조율이나 수렴의 절차가 있었다는 것을 들어본 바가 없다.

당연지정제 완화가 곧바로 건강보험 붕괴로 이어지지 않는 것임을 잘 알고 있을 보건복지가족부장관이 최근 개봉된 민영보험에 관한 영화 한편이 국민 여론을 민영보험 도입을 마치 악으로 규정하고 선악 이분 구도로 왜곡 매도하고 있는 것에 편승하여 오히려 여론을 호도하고 있는 모습이니 참으로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부족한 건강보험료로 인해 재원의 안정적 확보가 불가능한 가운데, 인구고령화와 병원의 초대형화로 나날이 늘어만 가는 건강보험 재정 적자를 의료공급자에 대한 쥐어짜기와 은행 차입으로 근근이 유지해 가고 있는 지속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기형적인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제도를 세계가 부러워하는 것은 ‘공급자에 대한 적절한 보상조치 없이 강압적으로 유지되는 비정상적 상황에 대한 조롱 섞인 칭찬’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30년간 유지되어온 세계가 부러워하는 제도” 운운은 지난 10년 내내 들어온 좌파정권의 포퓰리즘적 선전선동 구호와 똑 같은 내용이니 과연 정권이 교체되긴 된 것인지 어리둥절하기까지 하다.

당연지정제를 유지한 채 의료 산업화를 추구하는 것은 마치 경주마에게 무거운 ‘부담중량(Impost)’을 달고 최상의 기록을 내라고 종용하는 것과 마찬가지 일이다. 의료공급자에 대한 사회계약의 존중으로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요양기관 계약제를 시행하고 있어서 어느 나라도 하지 않는 당연지정제를 무슨 대단한 보물이나 되는 양 자랑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이다.

당연지정제를 완화하더라도 사회보험으로서 국민건강보험 강제 가입만 유지하면 건강보험의 붕괴를 전혀 염려할 필요가 없으며, 그래도 국민들이 걱정한다면 싱가포르에서 비급여 병상 비율을 총 병상 수의 10% 이내로 제한하는 규정을 벤치마킹해서 전체 의료기관의 병상 대비 5~10% 이내의 한정된 범위 내에서 당연지정제 완화를 시행한다면 국민 다수가 건강보험에서 외면 될 것이라는 염려를 충분히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당연지정제의 완화로 인해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고급 병원이 생겨 재화를 창출하고, 거기에 좋은 일자리가 많이 생겨나는 것이 바로 의료 산업화의 핵심적 요체이다. 뿐만 아니라 고급 병원에서 생겨난 이익을 저소득층의 진료를 위한 재정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고급 병원이 부자들만을 위한 병원이 아님을 국민들이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매년 10% 가까운 중소병원 도산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기형적 건강보험 제도는 더 이상 자랑거리가 아니다.

국민들도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 심정’으로 극소수의 고급 병원 출현에 대해 막연한 적대감으로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다양성을 인정할 줄 아는 성숙한 의식을 가져야 한다. 극소수에 불과한 고급 병원의 출현조차 가로막고서 무슨 의료 산업화란 말인가?

당연지정제를 유지한 채 추진하는 의료 산업화는 마치 '아담하고 훤칠한 미녀'를 찾은 일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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