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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수가 강제 적용 시장논리에 역행

이재호
발행날짜: 2012-06-18 06:00:35

대한의사협회 이재호 의무이사

만일 정부에서 물가 상승을 억제한다는 명분으로 전국에 있는 식당의 음식값을 조사해 평균치를 낸 후 전국의 모든 음식점에 메뉴별로 정해진 가격만을 받도록 강제화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정부에서 정한 가격 이상을 받는 식당에 대해 행정조치를 취한다면 국민들은 이러한 정부 정책을 이해할 수 있을까?

누군가 자기 돈 내서 질 좋은 음식을 사 먹을 경우 정해진 가격 이상을 받고 음식을 판 음식점 주인을 처벌한다면 과연 국민들은 동의할까?

아마도 머지 않아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광경을 목격하게 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오는 7월 1일부터 전국 병·의원에서 백내장, 편도, 맹장, 탈장, 치질, 자궁수술, 제왕절개분만 등 7개 질병 군에 대해 포괄수가제가 강제 적용되기 때문이다.

포괄수가제란 제공되는 의료서비스의 양과 진료의 질에 관계 없이 특정질병 혹은 시술에 대한 총 치료비를 미리 정해놓고 지불하는 제도로서, 식당으로 말하면 적게 먹거나 양껏 먹어도 똑같은 비용을 지불하는 뷔페식당과 같은 일종의 입원치료 정액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배가 고플때 주머니에 돈이 있어 질 좋은 음식을 사 먹고 싶어도 정부가 정해준 가격의 음식만 먹으라는 것과 같은 논리다.

행위별수가제는 의료비 상승의 가속화, 진료비 청구심사에 따른 업무과중, 의료인과 보험자간의 마찰, 의료서비스 제공의 왜곡현상 등의 문제점이 있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의 일환으로 포괄수가제를 강제적으로 시행하겠다는 것이 보건복지부의 복안인 것으로 보인다.

포괄수가제 강제 시행은 국민의 건강권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의료산업을 국가 신성장동력으로 활성하겠다는 정부 정책에도 반하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포괄수가제도는 정부에서 정해준 가격 밖에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의료기관에서는 신의료기술을 환자에게 적용할 수 없고 새로운 약이나 치료재료가 나와도 환자에게 적용할 수 없게 된다.

그 동안 의계에서는 포괄수가제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적정수가, 환자 분류작업, 의사 행위료 분리, 진료의 질 모니터링 등 네 가지 사전장치가 준비돼야 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그러나 의료계의 요구사항이 반영되지 않은 채 포괄수가제를 강제 시행함으로서 의료의 질을 떨어뜨리고 이로 인해 국민건강과 행복에 위해를 줄 것은 명약관화하다.

포괄수가제 분류체계는 환자의 상태와 중증도에 따라 달리 적용되는 진료 형태의 차이에 따른 수가를 적정하게 책정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새롭게 개발된 최신의 치료재료, 약제 등에 대한 원가를 적절히 반영하지 못해 결국 의사의 소신진료를 저해하게 된다.

모든 제도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당사자와 정부가 국민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설계가 이루어 질 때 수용성을 극대화 할 수 있다.

하지만 선진국의 1/3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수가 체계하에서 선진국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것을 의사들에게 강요하고 있고 제도 강행에 따른 모든 문제 또한 시술을 담당하는 의사가 지도록 하고 있어 수용성이 많이 결여될 것으로 보인다.

포괄수가제라는 새로운 지불제도를 시행하려면 거기에 맞는 새로운 원가분석 및 평가가 이루어진 후 수가가 산정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현재 사용하고 있는 상대가치 점수를 이용하여 수가를 산정했으며, 현행 상대가치 점수가 저평가 되고 특히 고위험 기술비용, 즉 High risk fee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또한 맹장염 수술에도 다양한 상황이 있는데 각 상황마다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적정 진료인지에 대해 이견이 있다면 혼란이 야기될 수 있으며, 동일 질환이라도 평균적인 기준에서 벗어나는 중증환자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지도 불분명하기 때문에 제도 시행 이전에 의료계의 의견이 수렴된 표준진료지침 등이 마련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대한민국 현실을 보면 줄기차게 시장경제 논리를 부르짖고 있다. 그렇다면 진료행위에 대한 가격 또한 자유시장 경쟁의 원칙에 맞게 진료행위별로 가격이 정해지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작금의 우리나라 의료제도는 전 세계에서 찾기 힘든 값싼 의료수가와 우수한 의료 인력으로 인해 오바마 대통령도 부러워하는 세계적 자랑거리다. 이런 제도를 버리고 의료비가 우리나라의 수십 배에 달하는 유럽의 의료비용 족쇄제도를 시행하려는 것이 과연 올바른 정책일 수 있을까?

포괄수가제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거친 후 국민의 선택을 확인하고 시행하더라도 늦지 않을 것이다. 의료제도의 대변혁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만 한다. 정부의 전향적인 변화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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