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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할 때마다 100여만원 적자…더 이상 못하겠다"

발행날짜: 2013-10-01 06:22:57

기획비뇨부인과 교수의 한숨…"DRG 시행 이후 존폐 위기"

"솔직히 DRG 시행 이후 환자 진료를 열심히 안한다. 수술할 때마다 적자인데 어떻게 하겠나. 이제 그만 손 놓고 싶다."

#지난 1999년부터 자궁탈출증 수술을 해온 Y대학병원 산부인과 A교수는 비뇨부인과 1세대다. 매일 환자 진료에 보람을 느꼈던 그는 요즘 심각한 회의감에 빠졌다.

당장 외래진료에서부터 바뀌었다. 전에는 상태가 심각한 환자를 어떻게 하면 치료해줄 수 있는지 고민했다. 하지만 이제는 합병증이 우려되거나 중환자실로 갈 것 같은 환자는 꺼려진다.

몇일 전에는 자궁탈출증 증상이 심각했지만 당뇨에 혈압까지 높은 고령의 환자여서 리스크가 높다고 판단해 돌려보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변하게 만든 것일까.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함
DRG제도가 종합병원급 의료기관까지 확대시행된 지 3개월 째. 비뇨부인과가 존폐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그는 DRG시행 전까지만 해도 잘 나가던 의사였다. 자궁탈출증 등 비뇨부인과 분야에서 명성이 높다보니 해당 질환 환자가 전국에서 몰려들었고, 다른 부인과 수술은 아예 손도 안댔다.

하지만 DRG시행 이후 그는 비뇨산부인과 수술을 접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자궁부속기 수술이 DRG수가로 묶이면서 그의 전문분야인 자궁탈출증 수술은 하면 할수록 적자만 늘어나는 구조가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의료진이 시뮬레이션한 결과 자궁탈출증 수술 한건 당 50만~100만원의 적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궁탈출증이란, 70세 이상의 고령환자에게 나타나는 증상으로 자궁 혹은 방광, 직장 등이 질을 통해 빠져나오기 때문에 산부인과 이외 비뇨기과, 외과적인 수술이 요구된다.

즉, 자궁적출술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환자의 증상에 따라 방광은 물론 직장 등 장기 재건수술을 해야할 정도로 복잡하고 고난위도 수술이다.

하지만 이에 적용되는 수가는 자궁적출술 DRG수가에 일부 가산이 적용될 뿐이다.

지금까지는 행위별수가로 각각의 수술에 대해 수가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 모든 의료행위가 DRG수가로 묶이면서 자궁적출 이외 골반 및 방광 등 교정술에 대한 재료대는 물론 의료행위에 대한 수가를 인정받지 못하게 됐다.

또 수술은 잘 끝나도 대부분 고령의 환자들이라 합병증으로 입원기간이 길어지고 중환자실까지 가게되면 DRG수가 이외의 비용이 발생하면 고스란히 적자로 돌아와 의료진 입장에선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게 됐다.

A교수는 "외래 진료를 할 때도 수술 후 합병증이 우려되는 고위험군 환자는 피하게 된다"면서 "조금만 더 하고 손 놓던지 해야지 이 상태로 버티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자궁적출술과 동시에 골반교정 및 방광재건 수술을 실시했지만 앞으로는 이를 분리해서 각각 수술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산과 의료진들은 DRG시행에 반대, 문제점을 제기해왔다.
문제는 자궁탈출증 등 비뇨부인과는 고령화시대 점차 늘어날 수 밖에 없는 질환이라는 점이다.

즉, 몇 년 후 자궁탈출증 환자는 속출하는데 해당 전문의가 없어 수술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닥칠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환자 상당수가 고령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위와 같은 부작용은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A교수는 산과, 부인과와 동등한 비중을 차지하는 미국, 호주와는 달리 한국에서 비뇨부인과는 비중이 낮고 의료진도 소수에 불과해 DRG논의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결과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또 다른 대학병원 비뇨부인과 B교수는 애초에 DRG로 묶이면 안되는 수술이라고 주장하며 이 상태가 지속되면 조만간 비뇨부인과는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수술은 어렵고 시간도 많이 소요되는 반면 수술하는 만큼 적자가 발생하는데 어떤 의료진이 이를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앞으로 젊은 의사들의 비전이 사라진 비뇨부인과를 지원하지 않을 것이고, 의료기관에서도 적자만 발생하는 진료과를 굳이 두려고 하지 않을텐데 어떻게 유지될 수 있겠느냐"고 했다.

그는 또 "아무리 의사라도 병원에 소속된 몸이고 특히 최근에는 교수 한명당 실시간으로 진료실적을 평가하는 시스템에서 수술 건건이 적자가 발생하는데 이를 무시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산부인과학회 신정호 사무총장은 "비뇨부인과 해당 전문의가 워낙 소수여서 일부의 목소리에 그칠 수도 있지만 학문적으로 심각한 위기 상황"이라면서 "의료의 질이 낮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국내 비뇨부인과라는 학문이 자취를 감출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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